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의 행정을 책임지는 용산구청이 참사 당일 지상파 방송사와 함께 시민들의 무질서를 지적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구정 홍보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뉴스타파가 이태원 핼러윈데이 참사 직전 용산구청이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확인했다.
▲ 참사 발생 하루 전인 2022년 10월 28일, 용산구청 홍보담당관실에서 작성한 ‘동향보고’ 문건
“구청에서 할 역할은 다했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무책임한 발언에 이어, 시민의 안전에 손을 놓았던 용산구청이 오히려 다수가 밀집한 핼러윈 이태원의 상황을 구정 홍보에 이용하려 한 사실까지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 이태원 참사 이틀 뒤인 지난 달 31일,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의 책임을 회피했다. (출처: MBC)
참사 직후 뉴스타파는 이태원 핼러윈과 관련해 용산구청이 생산한 공문서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서 용산구청이 어떤 행정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확보한 공문서 중에는 참사 발생 하루 전인 10월 28일, 용산구청 홍보담당관실이 작성한 ‘동향보고’ 문건도 있다.
‘동향보고’ 문건에는 지상파 방송사 아침 뉴스 프로그램(‘SBS 모닝와이드’)의 핼러윈데이 이태원 현장 취재에 대한 용산구청의 지원 계획이 들어있다.
용산구청은 참사가 일어난 ‘10월 29일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또 그 다음 날인 30일 오전 9시부터’ 이렇게 이틀 동안 구청 직원들의 ‘소음과 주차 단속, 청소’ 모습 등을 SBS 취재진이 촬영할 수 있게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취재 지원 장소는 ‘이태원관광특구, 세계음식거리, 이태원로’ 등 참사 현장인 해밀톤 호텔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실제 10월 29일 밤, 참사가 진행되던 바로 그 시각에 용산구청 공무원들은 참사 현장 근처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소음과 주차 단속을 벌였다.
▲ ‘동향보고’ 문건에는 지상파 방송사 아침 뉴스 프로그램(‘SBS 모닝와이드’)의 핼러윈 이태원 현장 취재와 관련한 용산구청의 지원 계획이 들어있다
핼러윈데이 인파로 북적이는 이태원에서 주차와 소음을 단속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통해 제작하려 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뭐였을까? 용산구청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두 가지다. ‘핼러윈데이 시민의식 부재 현장’, 그리고 ‘시민의식 이제는 달라져야’.
▲ 용산구청의 ‘동향보고’ 문건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 기획의도
문건에 언급된 내용처럼 북새통인 이태원에서 구청 공무원들은 소음과 주차 등을 단속하고 이를 촬영한 장면이 ‘시민의식 부재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TV에 나왔다면 시민들과 용산구청은 각각 어떤 이미지로 비쳐졌을까.
이태원 핼러윈의 무질서는 오직 시민의식이 부족한 젊은이들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시민의식의 부재를 계도하는 용산구청 공무원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용산구청이 많은 인파가 몰린 핼러윈 상황을 구정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구나 용산구청은 이번 핼러윈데이에 대비한 안전 대책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특히 박희영 구청장은 야유회와 바자회에 간다며 참사 이틀 전 용산구청이 경찰과 소방 등 유관 기관들과 개최한 핼러윈 대책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문건을 만든 용산구청 홍보담당관실은 “방송사로부터 먼저 촬영 협조 요청이 와서 지원을 결정했을 뿐 구정 홍보와 연계해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예정대로라면 용산구청이 협조한 뉴스 프로그램은 ‘11월 2일 아침 7시 45분’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참사가 일어나면서 취소됐다.
▲ 용산구청 ‘동향보고’ 문건을 보면 수신처로 구청장 비서실이 지정되어 있다.
취재진은 ‘핼러윈의 무질서를 이용해 용산구청을 홍보하기로 한 계획을 구청장이 직접 승인했는지’, ‘시민의 안전 계획은 세우지 않고서 혼잡 상황을 시민의식의 부재로 몰아가는 방송의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묻기 위해 박희영 구청장에게 연락했다.
먼저 ‘용산구청장 핫라인’으로 전화했다. 참사 직후 박희영 구청장이 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용산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한 번호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이는 구청장이 아닌 비서실 직원이었고 “박희영 구청장이 회의 중이라 연결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 이태원 참사 직후 박희영 구청장이 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용산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한 ‘핫라인’.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용산구청장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구청장실로 찾아갔지만 청사 관리 인력이 취재진을 막아섰고 출입을 제지당했다. 취재진은 청사 내 구청장 전용 주차장에서 기다렸지만 박 구청장을 만날 수 없었다.
참사 이틀 뒤인 10월 31일 박희영 구청장은 “관할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면서 이태원 핼러윈을 “지방자치단체의 축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한다”며 자신과 구청에는 참사의 책임도, 잘못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박희영 구청장은 개인 SNS를 폐쇄했고 구청 홈페이지 ‘구청장이 바란다’ 코너의 운영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