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⑩ 정부는 피해자 '2차 가해' 왜 방치했나

2024년 09월 27일 10시 00분

2024년 09월 27일 10시 00분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8명이 거리 위에서 사망하고, 334명이 부상 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10대 생존자 1명이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약 1년 10개월이 흘렀지만, 아직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파편적으로만 드러났다. 참사 직후 한 달여 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일부분만 다뤘다. 일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재판에 넘겼으나, 책임자들의 '개인적·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참사를 일으킨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곧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된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각 기관의 관행과 책임, 구조적 한계, 시스템과 법령의 부재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 만에야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은 무엇일까. 뉴스타파와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 기록과 책임자들의 형사재판 기록, 별도 입수한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해 특조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을 추출했다. 그 과제들을 연재기사로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이후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2차 가해'에 노출됐다.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라는 비난이 대표적이었다.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정쟁 수단'이라며 낙인 찍는 목소리도 있었다. 참사 후 2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2차 가해 대응은 매우 수동적이었다. 참사 직후,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인터넷 게시글·댓글 등에 대한 경찰 수사와 삭제 조치가 반짝 있었을 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피해자가 직접 경찰·방심위 등에 수사나 삭제를 요청해야 했다.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리나 메시지, 종합 대책, 법률 검토 등은 없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2차 가해에 관한 사항도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적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재난 피해자를 향한 혐오를 멈추려면, 특조위의 면밀한 조사와 대책 마련 요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의 유형은 다음과 같았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정보 유포 ▲'순수한 유가족다움' 강요 ▲노골적인 조롱·혐오 표현 ▲성희롱 및 욕설 등이었다. 
이런 다양한 유형의 2차 가해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했다. 온라인에서는 각종 기사 댓글과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했다. '놀다 죽었다',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다', '정부 지원금이 아깝다'는 등의 비난과 함께 여성 피해자를 향한 성희롱도 많았다. 한 이태원 참사 목격자는 "참사 직후 희생자들의 시신이 이태원 거리에 놓여 있는 사진과 영상들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그 아래에 바로 성희롱성 댓글이 달렸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의 2차 가해는 한 극우단체(신자유연대)가 참사 현장 부근에 설치됐던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 농성장을 세우며 시작됐다. 이 단체는 유가족과 희생자를 향해 막말을 했고, 분향소를 카메라로 비추며 '조롱성' 생방송도 진행했다. 이후 다른 극우단체들이 피해자들의 집회·행사장 근처에서 맞불 집회를 여는 경우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약 2달 후인 2022년 12월 30일, 극우 유튜버 등이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 집회를 열고, 확성기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도 아닌데, 왜 희생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라고 소리쳤다. 분향소 근처에서는 이런 2차 가해가 매일 일어났다.
2022년 12월 1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바로 옆에 설치된 극우단체 농성장을 방문한 한 시민이 분향소를 향해 "뭘 기억하느냐, 이태원 (참사)가 뭔데 기억하느냐"고 소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2차 가해는 참사 발생 직후에만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가 나오거나 유가족 활동이 있을 때마다 2차 가해가 따라붙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참사 후 1년 동안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댓글 약 230만 건 중 악의적 평가나 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이 약 69만 건, 전체의 30%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혐오 표현의 비율은 참사 직후나 1년 후나 거의 비슷했다. 2022년 11월 31.1%였던 혐오 표현 비율은 지난해 3월 30.1%, 5월 28.7%, 8월 35%, 9월 29.3%였다. (관련기사 : 이태원 참사 댓글 69만 건이 악플과 혐오... 삭제, 차단은 584건 뿐)
뉴스타파가 분석해보니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의 댓글 중 혐오표현의 비율은 참사 직후나 1년 후나 거의 비슷했다. 
참사 후 약 2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 관련 기사, 이달 중순 특조위 출범 관련 기사에는 여전히 2차 가해성 댓글이 여럿 달렸다. 역시 "나라 지켰냐", "놀다 죽었다", "지겹다", "단순한 사고다", "왜 세금으로 지원하냐" 등으로 참사 직후 나온 2차 가해 발언들과 내용과 수위 측면에서 매우 유사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회적 참사를 폄훼하고, 재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자를 '특혜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2차 가해의 습성은 여전했다.

2차 가해라는 '재난', 그리고 159번째 희생자 

2차 가해는 피해자들의 회복에 악영향을 끼쳤다. 참사 경험만으로도 막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았다.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생존자·목격자에 대한 정부 지원 심리상담은 지난 5월 31일 기준, 4795건에 달한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참사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잊고, 상실했던 사회에 대한 신뢰, 연대감 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바로 치료다. 그런데 (2차 가해는) 여기에 대고 무의미한 죽음인데 왜 목소리를 내느냐 비난하고, 듣기 귀찮다고 하는 거다. 몇년 간의 치유 노력도 이런 근거 없는 비난 앞에서 하루 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경험에 비춰보면, 2차 가해는 스스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식당 TV에서 참사 관련 뉴스가 나오면 '이미 보상받고 끝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참사 관련 후속조치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기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직장을 다니는데 갑자기 동료 중 하나가 커피를 마시다 이태원 얘기를 꺼내며 유가족을 비난하기도 했다. 동호회에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자 막말이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2차 가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덮칠지 모르는 또 다른 재난과 같았다. 2차 가해를 피하라는 말은 '세상과 단절돼라', '이태원 참사를 잊어라'는 말과 똑같았다. 모두 불가능했다. 
2차 가해라는 게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걔(희생자의 동생)도 분명히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대학교 가서도 친구들한테는 말 안 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도 2차 가해는 계속 이루어지잖아요. 댓글을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어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 2023.5.15.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
이러한 참사가 있을 줄 알고 죽으려고 이태원에 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태원은 핼러윈 때 매년 사람이 몰리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중략) 만약 저희 언니가 참사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저희 언니가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을 겁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무차별적인 인격 모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뉴스도, 인터넷 댓글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털과 SNS를 보지 않아도 2차 가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 2023.5.15.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
2차 가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공론화되지 못하도록 억압했다. 그동안 취재진이 접촉한 여러 유가족·생존자 중에는 언론 인터뷰가 2차 가해나 '신상 털기'의 빌미로 작용할까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이태원 참사 생존자 중 절대다수인 학생·사회초년생이 느끼는 두려움은 더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비 지원을 받은 생존자 244명 중 10대~30대는 232명으로 전체의 95.1%에 달한다(지난해 8월 기준).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인터뷰를 거절했던 한 생존자는 "그때의 고통을 다시 떠올리기도 힘들다. 만약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나를 욕하거나 탓하는 소리를 또 듣게 된다면, 견디지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제 뉴스를 딱 보는데 어떤 보수단체 회원분이 유가족분들 앞에서 저희는 북한에서 온 세력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빨갱이에요? 저희는 그냥 단지 또 다른 사람들이 저희와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건데. (중략) 참사 이후에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진짜 많이 했었어요. '누군가 내 뒤에서 칼로 날 찔러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몇 번 했던 것 같고. 심장을 아예 그냥 칼로 도려내서 완전히 빼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저의 아픔을 이해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는 거의 없겠구나.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 모 씨 / 2023.9.3. 뉴스타파 인터뷰
'이태원 참사' 159번쨰 희생자인 고 이재현 군의 영정 사진.
159번째 참사 희생자인 이재현 군(당시 16살)은 2차 가해로 인한 고통에 괴로워 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참사 현장에서 친구 2명을 잃고 스스로도 큰 부상을 입었던 재현 군은 퇴원 이후 트라우마와 우울감에 시달렸다.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겹쳤다. 어머니 송해진 씨에 따르면, 재현 군은 '죽고 싶다', '차도에 뛰어들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이런 재현 군에게 2차 가해는 치명적이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자주 찾아봤던 재현 군은 혐오 댓글도 자주 봐야 했다. 재현 군은 2022년 11월 초 이태원 참사를 다룬 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의 유튜브 영상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 자신의 피해 사실과 감정 등을 상세히 적었다. 그 아래에는 여러 비난 댓글이 달렸다. '너네들이 놀러가서 그렇게 된 거다'라며 재현 군과 떠난 친구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재현 군의 아버지 이경희 씨는 지난해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재현이가 댓글로 싸우다가 어느 순간 (댓글을) 안 달았다. 아마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을 달아봐야 소용없다고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자기가 당한 일이기 때문에 (참사 관련) 기사가 뜨면 클릭할 거고, 기사 밑에는 2차 가해하는 댓글이 계속 있었을 거다. 재현이를 2차 가해에서 단절시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재현 군은 2022년 12월 12일 사망했다. 재현 군이 사망 직전 받은 심리검사 결과지에는 '극심한 혼란 상태', '자살 고위험'이라고 적혀 있었다. 
몇 주 전 고등학생 생존자(고 이재현 군)가 스스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을 때 저는 스스로 잡고 있던 끈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런 결정을 했을, 그 마음을 너무 알 것 같기에 슬펐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선생님을 찾았고 약의 용량을 늘렸습니다. 그때 (한덕수) 국무총리가 했던 발언이 생각납니다.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습니다. 치료와 상담을 이렇게 열심히 받는 저는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합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 / 2023.1.12.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정부의 2차 가해 대응, 경찰·방심위만 쳐다봤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이미 여러 번 2차 가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청했다. 정치권과 간담회 자리, 기자회견, 국회 국정조사,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다. 
우리 지한이(희생자 고 이지한 씨)한테 어제... '탤런트 지한이 엄마가 돈 벌려고 한다'고 그런 얘기를 해서 지한이 엄마가 기절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거기 신자유연대 철수시켜 주십시오.

이종철 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아버지) / 2022.12.20. 이태원 참사 유가족-국민의힘 간담회
참사가 벌어진 후 끊임없이 쏟아지는 댓글 등을 보면서 고통받아 왔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현상이 사회에 고착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죄책감 속에서 겨우 견디고 있는 아이(159번째 희생자 고 이재현 군을 지칭)에게 '너희가 거길 왜 갔느냐'는 댓글 등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며, 우리 사회가 그 아이를 낭떠러지로 떠밀어버린 거였습니다.

이정민 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 씨 아버지) / 2023.2.3. 국회 토론회
정부는 2차 가해를 막을 책임이 있다. 행정안전부의 '기능별 재난대응 활동 계획 매뉴얼'에 따르면, 재난 수습 과정의 핵심 업무 중 하나로 'SNS 등에서 퍼지는 유언비어에 대한 모니터링'이 나온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 배포를 해야 한다'고도 돼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없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참사 약 1주일 뒤인 2022년 11월 7일 인권위는 "혐오 조장 주장이 제기되지 않도록 투명한 재난 대응조치와 정확한 정보 공개, 혐오표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관리와 지원, 낙인 방지를 위한 조치 등"을 해달라고 국무조정실과 행안부 및 중대본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태원 참사' 발생 8일 뒤인 2022년 11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에 보낸 공문.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2차 가해 방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 조치는 부족했다. 온라인상의 여러 2차 가해 댓글 중 일부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글에 대한 경찰 수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삭제 조치가 전부였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28일 기준 경찰 수사(인지)는 43건이 전부였다. 이 중 검찰에 송치된 건 17건에 불과했다. 2차 가해를 막으려고 만들었다는 경찰청 사이버대책상황실 인력은 5명이었다. 방심위와 개인정보위 조치도 각각 유해물을 1456건, 278건 삭제·차단하는 정도였다(지난해 8월 기준). 앞서 언급했듯 뉴스타파가 2022년 10월 말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11개월간 수집한 혐오 표현 포함 댓글은 약 69만 건이었다.
중대본은 경찰과 방심위만 바라봤다. 인권위에 따르면, 11월 7일 협조 요청 공문을 받은 중대본은 "2차 가해 문제에 대해 자료가 따로 없다"며 "매일 발표하는 중대본 상황보고서로 갈음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중대본 상황보고서에는 경찰 수사와 방심위 조치 현황만 짤막하게 공유돼 있을 뿐이었다. 2차 가해 관련 대책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2022년 12월 인권위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재난 관련 대책을 세울 때 2차 피해도 잘 고려하고 반영하면 좋겠다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중대본은 (2차 피해를) 대책에 포함해야 할 주요 사안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 말 행안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지원단'(이하 행안부 지원단)도 비슷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행안부 지원단의 생산 문서를 모두 확인한 결과, 지원단은 지난해 3월 경찰과 방심위 등에 2차 가해 관련 협조 공문을 한 차례 보냈다. 경찰, 방심위 등과 실무협의를 두 차례 진행하긴 했지만, 기존 조치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2차 가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거나 제시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2차 가해 대응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난해 1월 뉴스타파 질문에 행안부 지원단 측은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태원 참사' 책임 부처였던 행안부는 경찰 수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만 2차 가해 관련 대응을 맡기고, 별도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2차 가해 멈추라고 말도 안 하는 정부

참사 피해자와 지원단체, 전문가 등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2차 가해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2차 가해자들과 선을 긋고, 피해자의 편에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 기반'이 형성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해 사회적 편견이 있었을 때 정부가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면, 확진자들에게 차별적 시선이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현재도 2차 가해에 대해 좀 더 반복적이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에 참여했던 용혜인 의원도 "정부가 단호하게 '2차 가해는 잘못된 것이며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야 사회적으로 분위기도 형성되고 2차 가해를 멈출 수 있다. (불법성이 있는 글을) '처벌하면 된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메시지를 낸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 31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대본 회의에서 "혐오 발언과 허위정보 공유를 절대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행안부, 국무조정실 등 재난 참사의 콘트롤타워들은 메시지 발표를 논의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의 메시지도 전무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2차 가해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지난해 1월 취재진의 관련 질의에 대통령실 측은 "(2차 가해 문제는)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가 답변할 사안이다"고 밝혔다. 김수정 언론학 박사는 "정부에서 피해자를 찾아가서 신경 쓰지 못한 부분, 또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애쓰겠다는 그런 시그널을 줬다면 (이태원 관련 기사의) 댓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정 세력이 참사를 조작?... 대통령 '인식'이 2차 가해 방치에 영향 줬나 

심지어 대통령 스스로가 '2차 가해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 6월 말 발간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초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약 한 달 뒤인 2022년 12월 5일 '이태원 참사가 특정세력에 의해 유도 및 조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가 특정 개인의 범죄 행위라거나 '좌파 세력의 조작극'이라는 주장은 일부 극우인사들의 '음모론'에 불과하다. 또한, 참사의 원인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음모론은 대표적인 2차 가해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온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굉장히 많은 의혹이 언론에서 제기되기 때문에 의혹을 전부 다 수사하라고만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언론이 당시 (사고 골목) 바닥에 어떤 기름이 뿌려졌다, 이런 식의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 '남성 2명이 기름을 바닥에 뿌렸다'는 음모론은 이미 경찰이 2022년 11월 11일 해당 남성들을 무혐의 처분하며 거짓으로 밝혀졌다. 대통령 발언이 있었다는 2022년 12월 5일까지도 이 음모론을 퍼 나른 것은 극우 유튜버 등뿐이었다.
결국, 정부가 2차 가해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배경에 '음모론을 신뢰하던' 대통령의 인식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6월 28일 논평을 통해 "한 국가의 대통령이 유튜브 등에서 제기된 음모론 수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며 "참사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유류품 마약검사부터 실시하고 부검을 권유했다든지, 유가족들간의 만남 요구를 외면했다든지 하는 등의 행태들을 보인 이유가 혹시 이러한 생각(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키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피해자를 만난 적도 없다. (출처 : 대통령실)
정부의 방치 속에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자구 노력으로 2차 가해에 대응해 왔다. 피해자들이 직접 온라인 게시글과 댓글을 캡쳐하고, 작성자의 계정까지 파악해 방심위에 신고하고 고소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희생자 고 이주영 씨 아버지)은 "초반에는 유가족들이 2차 가해자들을 직접 고소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다른 일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다. 지금은 따로 유가족협의회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문 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14일까지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 사자명예훼손 등)로 기소돼 1심 선고를 받은 가해자는 모두 20명이다. 이 중 18명은 벌금형을 받았다. 1명은 다수의 성희롱성 발언을 했지만 무죄를 받았고, 다른 1명은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한 김미나 창원시의원으로 지난해 9월 선고유예를 받았다. 

재난 피해자 향한 혐오, 언제까지 방치하나 

정부의 2차 가해 방치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정확히 조사된 적이 없다. 피해자들의 회복과 규합 지연, 2차 가해의 장기화, 이태원 참사를 향한 여론의 왜곡 등과 연관성이 클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국회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 있는 2차 가해 관련 내용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거의 전부다. 경찰 수사와 방심위 등에만 대응을 맡겨놓는 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나온 적이 없다.
여러 자료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현재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기준 총 329명(누적 집계)의 피해자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치료로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피해자들은 6개월 단위로 의료비 지원을 연장할 수도 있는데, 지난 4월 28일 의료비 지원을 연장한 피해자는 58명에 달한다. 
의료비 지원 연장은 의사 소견과 함께 보건복지부 심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지난 4월 의료비 지원을 연장한 생존자 김 모 씨는 "참사 직후보다는 상태가 나아지긴 했지만,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요새도 사람이 많은 거리나 술집이 많은 거리를 지나갈 때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관의 모습.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액자에 사진 대신 별 모양 그림만 있는 경우도 있다. 아직 유가족이 희생자의 사진을 공개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 가해와 무관하지 않다. 
재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세월호 참사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온라인을 메웠던 '시체 장사', '지겹다', '세금 아깝다', '순수한 유가족' 등의 혐오 발언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피해자가 '알아서' 혐오에 맞서야 하는 현실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조사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2022년 12월 종합보고서를 내며 정부와 국회 등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재난안전법에 재난피해자에 대한 명예 훼손·모욕 및 혐오 표현 금지와 벌칙 조항 신설 ▲정보통신망법에 모욕죄 신설 ▲형법상 모욕죄 형량 가중 ▲피해자의 법률 대응 선제적 지원 ▲혐오표현 확산 방지 위한 인권위 역할 강화 등이었다. 이 중 이행된 권고 사항은 인권위가 혐오표현 인식조사를 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정도다.(지난 달 기준)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방지 대책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차별받지 아니하고 혐오로부터 보호받으며 필요한 조력을 받을 권리"를 피해자의 권리로 명시했다. "참사 이후 희생자와 피해자의 권리침해 등 피해 실태 및 구제방안에 대한 조사에 관한 사항"도 특조위의 업무 중 하나로 규정됐다. 특조위는 2차 가해의 실태와 영향, 정부가 이행하지 않은 역할과 책임 등을 조사해 재난 피해자에 대한 혐오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제작진
취재홍주환(뉴스타파) 최윤정(코트워치) 조원일
영상취재신영철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