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뉴스]정부, 메르스 확산에도 감염병 매뉴얼 무시
2015년 06월 12일 17시 56분
35살 남성 B씨는 폐렴 증상으로 5월 13일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이틀 뒤, 하필이면 같은 병동에 국내 첫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입원했다. B씨와 같은 환자들은 물론이고 병원 의료진들도 그가 메르스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아니, 메르스가 무슨 질병인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도 사실상 없었다.
사실 멀쩡한 사람이 와서 입원한 거였잖아요. 감기 환자로 와서, 메르스는 초반에 얘기도 안 됐던 거고.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지금에서야 메르스가 막 터지니까 검사를 하는 거지. 만약에 1번 환자가 그냥 동네 의원 갔다가 약 먹고 집에 가서 나았다거나, 사망했다거나, 그러면 정말 메르스인지 뭔지 몰랐을거에요. 끝까지 바레인 이야기 안 했으면, 메르스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죽었겠죠. 상세불명 폐렴으로. - 평택성모병원 관계자
B씨는 최초 확진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간 5월 17일까지 2박 3일간 같은 병동에 있었다. 20일 한 차례 퇴원했던 그는 21일 고열 증세로 다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25일에는 평택굿모닝병원으로 옮겨갔다. 27일 의료진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증상이 조금 누그러진 그는 홀로 평택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12시 30분 서울남부터미널에 내렸지만 호흡곤란을 느껴 구급차를 불렀다. 그 길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보건당국 발표를 기준으로 18일 현재까지 B씨로부터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확진자는 최소 83명(평택굿모닝병원 3명, 평택성모병원 3명 포함)이다. 그저 폐렴 증상을 보였을 뿐인 그는 불특정 다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가 돼 버렸다. 그러나 최초 확진자를 발견한 5월 20일 보건당국의 대응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를 슈퍼 전파자로 만든 건 그 자신도, 미지의 바이러스도 아닌 바로 보건당국이었다.
중동 이외 국가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이 환자 가족과 의료진 이외에 지역사회로 확산했다고 보고된 적 없다 - 5월 21일 / 양병국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첫 메르스 확진자 발생 다음날 보건당국의 호언장담. 그러나 이 순간 이미 B씨는 고열 증세를 보이며 슈퍼 전파자로의 길을 ‘당국의 방치 속에’ 가고 있었다. 최초 확진자가 발견됐을 때, 정부는 양 본부장의 장담처럼 확진자와 밀접 접촉(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자)한 가족과 의료진에만 집중했다. 최초 확진자와 같은 병실을 쓰지 않았던 B씨는 격리 대상도 아니었다.
3년 전 사우디에서 메르스가 발생했는데, 우리는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그래서 첫 환자 진단이 늦어졌다. 때문에 첫 번째 확진자를 확인한 그날이 골든타임이었다. 그날 최악의 상태를 가정해서 정보를 공개하고 크게 포위망을 쳤어야 했다. -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하지만 보건당국의 오판은 B씨를 ‘슈퍼전파자 14번 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는데도 메르스 감염이 확진된 6번 환자가 발생했을 때(5월 28일), 평택성모병원을 공개하고 해당 시기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전원을 추적해야 했다. -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녹색병원 직업환경전문의
29일 평택성모병원이 자진 휴원 했을 때, 그날이 미니멈이었다. 일반인에게 알려야 했을까에 대해서는 잘모르겠지만, 적어도 의료진과 병원에는 알려야 했다 -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5월 28일. 최초 확진자와 같은 병실이 아닌 같은 병동에서 여섯 번째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보건당국이 주시하던 ‘밀접접촉' 범위를 벗어난 전파가 확인된 것이다.
6번 환자는 첫 번째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지만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례적인 상황이다. 첫 번째 환자인 경우 2인실에, 여섯 번째 환자는 1인실에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10m 정도가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화장실을 쓰고 있어서 의외의 상황. - 5월 28일 / 양병국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보건당국은 이렇게 두 번째 결정적 실책을 저지른다. 메르스의 전파력을 과소평가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때라도 적극적인 방역에 나서야 했지만 그저 ‘이례적'이고 ‘의외적'인 사례로 치부했다.
같은 병동 환자들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때 초점은 1번 환자하고 부인, 같은 병실에 있던 3번 환자와 그분 딸 정도까지였어요. 그런데 6번 환자가 확진되면서 일이 커진 거죠. 이렇게 되니까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다시 했어요. 뭔가 이상한 거죠. 6번 환자는 1번 환자와 접촉한 일이 없었으니까. 이때부터 메르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거죠.- 평택성모병원 관계자
보건당국도 속으로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했을 것이다. 평택성모병원 측에 입원 중인 환자들을 모두 빼라고 했다. 갑작스런 조치에 병원 측도 당황했다.
입원 환자들을 갑자기 뺐잖아요.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질병관리본부에서 환자들하고 다른 병원에 이야기를 다 해놨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놨냐 이거지. 저희들이 다 해당 병원에 확인 전화하고 보냈는데. - 평택성모병원 관계자
이렇게 평택성모병원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5월 28일, B씨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이틀째 진료를 받고 있었다. 보건당국은 B씨가 메르스 감염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다음날인 29일 삼성서울병원에 알렸다. 그날 추가 확진 판정을 받은 5명이 모두 평택성모병원의 같은 병실(2명)과 같은 병동(3명)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선 평택성모병원에 취했던 것과 같은 환자 격리 조치를 강제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29일 자체적으로 응급실 소독 작업을 벌인 뒤 다시 평소처럼 운영을 계속했다.
최소한 5월 30일 14번 환자를 인지한 후에는 바로 삼성서울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응급실 방문 환자에 대한 추적조사와 새로운 환자의 유입을 막아야 했다. -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녹색병원 직업환경전문의
5월 30일. B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14번 환자’가 됐다. 이날까지 확진자 수는 15명. 병원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정부는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비공개 입장을 천명했다. SNS 상에 병원 이름이 떠돌기 시작했다. 정부는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고 나섰다.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통해서 바로 처벌하는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 5월 30일,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 병원 이름 유포는 되레 급속도로 확산됐다. 메르스와 전혀 무관한 병원들도 적잖이 끼어 있었다. 혼란은 오히려 가중됐다.
6월 1일. 보건당국이 가능성 자체를 일축해 왔던 3차 감염이 확인됐다. 병원 정보 공개 요구가 더욱 거세졌지만 정부 방침은 확고했다.
전부 의료기관 내에서 발생한 사례임을 다시 한 번 강조 드리면서, 따라서 불필요한 불안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런 점 때문에 의료기관의 이름을 전체적으로 공개 했을 경우 과도하게 불안해 할 것을 염두에 두고… - 6월 2일,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
6월 3일. <뉴스타파>와 <프레시안>의 보도를 통해 보건당국이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메르스 감염을 확진하고도 발표에서 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레 병원명이 공개됐다.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메르스 증상 발현 이후 1500여 명과 접촉하기까지 격리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6월 5일. 여론에 떠밀린 보건당국이 평택성모병원 한 곳을 공개했다.
이때까지 정부 예측은 대부분 빗나갔다. 특별한 대책과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고작 병원 한 곳을 공개하는데 그쳤다.
이번 사태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과 결단이 필요했던 상황인데, 그걸 아무도 안 했다. 그래서 이 사태가 벌어졌다는게 핵심이다. -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녹색병원 직업환경전문의
결단의 순간들을 놓친 직후,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에게 노출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무더기로 확인됐다. 6월 5일 4명, 6일 15명, 7일엔 17명이 확진됐다. 그야말로 ‘슈퍼전파자의 등장'이었다.
결국 보건당국은 6월 7일,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확진자 발생 병원 6곳과 경유 병원 18곳 등 24개 병원 정보를 전면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전국구 병원’인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자신들의 거주 지역으로 돌아간 뒤였다. 14번 환자에게서 감염된 환자들이 부산과 전북, 강원 등 전국에서 속출했다. 슈퍼전파자는 이렇게 완성됐다.
정부가 비밀주의를 고집하더라도, ‘개미 한마리도 지나치지 못하게’ 방역망을 짰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비밀주의로 인해 병원들도, 국민들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해놓고 방역망은 낙타가 지나갈 만큼 뚫렸다. 그 너른 구멍 사이로, 새로운 슈퍼전파자들이 등장할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
아직까지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계속 발견되어 왔고, 또 추적조사 중에 발견 됐습니다. - 6월 2일,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
관리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환자가 발견되고 있다고 호언하던 6월 2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는 고열증세를 보였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138번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닷새 전 14번 환자와 접촉했던 두 사람은 보건당국의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137번 환자는 구멍난 방역망을 드나들며 환자 이송 업무를 계속했다. 6월 2일부터 10일까지 그가 직접 옮긴 환자만 76명, 접촉자는 472명으로 파악됐다. 138번 환자는 10일 오후 자택격리 되던 날에도 오전까지 환자를 진료했다. 이 순간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되는 환자가 곧 감소하게 될 거라는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지금 계속 삼성서울병원에서 노출됐던 그 경우로서 환자들이 지금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게 지금 그 환자들이 잠복기가 지나면서 나오고 있어서 잠복기가 끝나면 어느 정도 안정 감소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전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6월 10일, 권덕철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총괄반장
그러나 137번과 138번 환자에게 노출된 감염의심자들의 잠복기는 6월 24일이 돼야 끝난다. 이 두 환자가 새로운 슈퍼전파자로 등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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