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해외공관, 자국민 보호 뒷전

2013년 05월 03일 09시 24분

지난해 10월에 발생한 그리스경찰 한국인 관광객 폭행 사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그리스 현지 경찰의 무차별 폭행과  인종차별적 발언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누리꾼들이 분노했다.

당시 외교부와 주그리스 대사관의 대응은 주도면밀해보였다. 주그리스 대사관은 그리스 시민보호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사건발생 9일 만에 유감 표명을 받아냈고, 외교부는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공식 브리핑 석상에서 발표했다. 시민들은 정부의 긴밀한 대처에 안도했고 사건은 그렇게 잊혀졌다.

 사건 이후 7개월, 피해 당사자인 정현영 씨는 아직 못다 푼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가해 경찰관 2명이 모두 무혐의 처리됐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정부가 보내온 공문을 보면 ‘피해자가 경찰관들에게 여권을 제시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폭행사건의 책임이 피해자인 정 씨에게 있는 것처럼 해석되는 부분이다. 정 씨는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해  경찰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교당국에 적극적으로 항의해달라 여러 차례 민원도 넣었다.

하지만 당국은 미온적인 반응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 씨 개인의 사안이며, 가해자의 처벌을 원한다면 법적 조치를 강구해보라 말한다. ‘잘알아서 처리할테니 걱정말고 귀국하라’고  말하던 재외공관. 여론의 관심 속에 있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말에 정 씨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때는 현지 대사가 나서 해결에 나섰던 사안에 대해 이제는 ‘증거가 부족하니 남 일’이라고 말하는 당국의 해명을 납득하기 힘들다.

재외공관의 자국민 보호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는 시민들의 비판은 하루 이틀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지법과 공무 절차의 핑계 뒤에 숨어 타국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데 그친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해 우리 해외 여행객 수가 천3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와 비례해 해외에서 발생하는 우리 국민의 사건사고 건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헌법에도 명기돼있는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역할. 하지만 우리는 관련 법안조차 갖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 재외공관의 ‘보여주기 식’ 업무 관행을 근절하고 자국민 보호를 위한 보다 실제적인 대책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앵커 멘트>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그리스 경찰의 한국인 관광객 폭행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유명관광지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적 범죄가 시민들의 공분을 샀었는데요.

우리 재외공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잘 해결된 줄 알았던 이 사건. 하지만 정작 사건의 피해자는 우리 재외공관과 외교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대양 기자가 전합니다.

<오대양 기자>
지난해 10월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그리스 경찰의 한국인 폭행사건. 정현영 씨는 이 사건의 피해 당사자입니다. 지난해 10월  그리스에서 아테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던 정 씨는 불심검문하는 현지경찰 2명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가 무차별 폭행을 당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끌려간 경찰서에서도 구타가 계속됐고, ‘‘코리안 고 홈’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들었습니다.

피해자 정 씨는 인터넷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대사관이 발빠르게 움직였고, 사건 발생 9일 만에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까지 했습니다.

[외교(통상)부 조태현 대변인 정례브리핑 2012.10.25]
“시민보호부 장관에게 외교 공한을 보내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청했습니다.”

언론도 외교부 발표를 인용하면서 우리 정부의 신속한 대처를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외교부 요청대로 과연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졌을까?

전주에 사는 피해자 정 씨가 서울을 찾았습니다. 외교부를 항의 방문 하기 위해섭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언론 이렇게 해서 (외교부가)  칭찬받고 하는 분위기로 간 것 같다. 사건을 잘 풀어주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자초지종을 들어봤습니다. 정 씨는 사건 2달이 지나 주 그리스 대사관측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해 경찰 2명이 무혐의 처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스 당국의 유감 표명에 대해선 대사관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아니 결과가 이따위로 나왔는데 맞지도 않았다. 여권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데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다니..좀 그랬어요”

정 씨는 대사관 측이 항의해줄 것을 재차 요청했지만 가해자 처벌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국가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냉랭한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걱정 말고 귀국하라고 할 때와는 딴판이었습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공식적 입장 표명한 사건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처벌, 징계 가 가해질 것이다 했거든요. 제가 그리스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갈등할 수 밖에 없었죠. 뒤는 맡기고 나왔죠.”

정 씨는 애당초 외교부가 밝힌 ‘강력한 항의’와 ‘철저한 수사 요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경찰에게 불법체포와 폭행당한 사람이고 그런데 우리 담당 외교관이 선물을 해당 경찰 반장에게 선물을 준다는 게 정말 어이가 없더라구요.”

정 씨는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억울함을 다시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같은 답변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기댈 데는 정부 밖에 없는데 버팀목이 될 것을 기대를 했는데 오늘 실망을 느끼고 갑니다.”

뉴스타파는 사건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됐는지 주그리스 대사관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대사관이 보내온 해명자료를 보면 그리스 당국은 사건 발생 2달 만에 경찰 내부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피해자가 경찰관들에게 여권을 제시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당국은 폭행사건의 책임이 그리스 경찰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인 정 씨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간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그리스 한국대사관은 CCTV 자료 등 폭행의 증거를 찾지 못했고 병원 진단 결과에서도 심각한 피해가 나타나지 않아 사건 대응을 종료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외교부는 그동안 '증거도 없고 심각한 피해도 없는' 이 사건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까지 자처하고 ‘그리스 정부에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했다는 말이 됩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홍순창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과장 / 전화녹취]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라는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한 것은 같아요. 결과는 만족할만한 대로 안나왔다는 것은 저희로서도 아쉬운 부분인데 그것을 우리가 재판을 부정하고 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거든요.”

여론의 주목을 받을 땐 강력한 대응을 공언했다가 관심이 누그러지자 절차적 이유를 들어 슬그머니 손을 뗐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정현영 / 그리스경찰 폭행사건 피해자]
“우리 정부 그러니까 저의 편이 아니고 그리스에서 쥐어주는 것을 그대로 전해주고 문제가 있으면 개인적으로 소송하라는 것이 정부가 저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9년 사이판총격 사건의 피해자로 하반신 마비라는 고통을 안게 된 박재형씨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박 씨를 포함해 한국인 관광객 6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현지법상 피해자 구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당국은 손을 놓았습니다.

[박재형 /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전화녹취]
”대사관이 한 말이 뭐냐면 이렇게 처리를 했다. 사이판 정부에서 한 것을 그대로 읽었어요. 이 나라에서 이랬기 때문에 더할게 없다. 그렇게 알아라. 저 나라에서 이렇게 됐으니 끝났네 우리에게 묻지마라, 이게 다죠.”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자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 해외 공관의 행태를 성토하는 글이 끝없이 올라옵니다. 

[유기준 새누리당 국회의원]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재산과 신체적 피해를 당하는 경우에도 침묵을 지킨다면 재외공관이 존재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헌법 2조 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재외국민 보호에 관한 법률조차 없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여행객은 천 3백만 명이 넘었습니다. 해외에서 당하는 사건 사고는 2011년 4천 5백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 문제가 생겼을 때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보루가 재외공관입니다. 그런데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야 할 공관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뉴스타파 오대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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