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메릴린치 ‘싹쓸이자문’, 자원외교 부실키웠다

2015년 03월 12일 18시 46분

뉴스타파는 2009년 3월 한국석유공사가 해외M&A 사업의 자문사를 선정하기 위해 벌였던 심사 평가 문서를 입수했다. 자문사 선정 작업은 당시 강영원 사장과 서문규 부사장, 신유진 신규 사업 2처장 등 핵심 임원 8명이 선정 위원으로 참여해 1, 2차에 걸쳐 한 달 간 진행됐는데, 평가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10곳의 후보 자문사 중 유독 <메릴린치 서울사무소>가 1,2차 평가 모두 비계량 평가, 즉 선정 위원들의 주관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자문사로 최종 선정된 것이다.

먼저 각 자문사 팀장과 팀원의 최근 M&A 실적을 바탕으로 매긴 1차 계량 평가에서 메릴린치는 중 하위권인 공동 5위에 머문다. 하지만 인수 전략과 자문 계획에 대한 비계량 평가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전체 1위로 2차 평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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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료 수준을 바탕으로 매긴 2차 계량 평가에서 메릴린치는 4개 회사중 3위로 쳐진다. 하지만 다시 비계량 평가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아 석유공사의 최종 낙점을 받았다. 더구나 1차 평가 자금 조달 능력 분야에서는 평가 위원 8명 모두 메릴린치에 “C”점을 줬지만, 2차 자금 조달 분야에서는 A 4개, B 3개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서문규 부사장은 출장으로 2차 평가 불참). 동일 항목에 대한 평가가 2차에서는 크게 오른 점이 메릴린치를 자문사로 선정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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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는 왜 유독 주관적 평가인 비계량 평가에서 메릴린치에 우호적이었을까? M&A 전문가들은 자문사의 팀원들에 대한 평가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당시 청와대 총무 비서관 김백준씨의 아들인 김형찬씨가 팀원에 속해 있었고, 이것이 메릴린치를 최종 자문사로 선정하게 한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석유공사의 자문사 선정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럽계 자문사인 <로스차일드>와 복수로 자문 계약을 맺었지만, 석유공사의 해외 M&A 사업은 사실상 메릴린치 주도로 전개됐다. 애당초 미주와 유럽에 지역 기반을 둔 자문사를 복수로 선정해 지역별 적정 M&A 정보를 수집하고 자문사 간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계획도 유야무야 됐다.

메릴린치는 자문사로 선정되자마자 스위스 아닥스 인수를 제안하지만 실패하자,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를 추천했다. 인수 협상이 무르익을 즈음 하베스트측이 느닷없이 정유부문 부실 계열사인 ‘날’을 끼워 팔겠다고 나섰고, 딜이 깨지기 직전 메릴린치는 ‘인수 적정’이라는 평가서를 내면서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상,하류 부문 전체를 최종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메릴린치의 평가서는 현장 실사와 능동적인 평가 작업 없이 불과 나흘 만에 하베스트가 제공한 자료 만으로 만들어진 부실 보고서였다. 당시 MB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했던 해외 자원 개발에서 실적이 급했던 석유공사로서는 하베스트의 계열사 ‘날’이 부실인 줄 알면서도 인수에 목을 맸고, 메릴린치가 여기에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이것이 1조 7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왔던 하베스트 ‘날’ 사 인수의 전말이었다.

이렇게 MB정부 동안 메릴린치가 자문한 석유공사의 대형 M&A는 캐나다 하베스트와 영국 다나사, 미국 이글포드사와 앵커사 등 모두 4건이었고, 투자 액수로는 12조 4천억 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메릴린치는 248억원을 자문료로 받는 등 석유공사 해외 M&A사업의 독점 자문사 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많은 이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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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석유공사가 이들 사업에서 지금까지 회수한 액수는 6천 7백억 원에 불과하다. MB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은 외국 기업들에겐 부실 정리의 기회를 줬고, 국제 자문사에겐 거액의 자문료를 안겨줬지만, 우리 손에는 빚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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