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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31일 21시 05분
지난해 11월 26일 소파(SOFA. 주한미군지위협정) 최고 협의기구인 한미합동위원회는 인천 부평구에 있는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내 DRMO(주한미군 폐기물처리장) 부지와 그 주변 토양이 오염됐다고 발표했다. 부지에서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허용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것이다. 조사지점 33곳 중 7곳에서 리터당 1,000피코그램의 농도를 초과했다. 가장 높은 곳은 다이옥신 10,348피코그램이 측정됐다.
국내에는 토양 내 다이옥신의 허용기준치가 따로 없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거주지역의 토양 내 다이옥신 허용기준치는 리터당 1,000피코그램(1피코그램은 1조 분의 1그램)이다.
인천시는 미군으로부터 기지 반환 이후 시민공원으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급 발암물질 다이옥신 토양오염이 확인되면서 인천지역 시민사회는 주한미군이 책임지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주한미군 측은 ‘오염은 있으나 위험하지 않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 절차의 핵심은 환경오염의 치유를 어떻게 하고, 한미 간 오염 정화 비용 분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환경부와 주한미군 간의 ‘소파 환경분과위원회’ 협상에서 논의된다.
부평 미군기지 반환을 위한 환경협상은 2017년 2월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이 환경 협상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 내막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확인 결과, 환경부와 주한미군 간의 환경협상은 합의에 실패했고, 2017년 8월 소파 한미특별합동위원회에 회부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협상에서 다이옥신 정화 책임과 정화 비용 분담에 대해 환경부와 주한미군은 명확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환경부는 다이옥신으로 인한 토양오염을 미국이 책임지고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미 양측은 결국 외교부 북미국이 우리 측 대표로 나서는 한미특별합동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환경분과위원회 협상을 끝냈다.
뉴스타파 제작진은 2018년 10월, 주한미군이 다이옥신 오염의 정화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확인해봤다. 11월 1일 보내온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다이옥신 오염이 인간 건강과 안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미군에게 정화 책임이 없다는 것. 미군이 이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근거는 소파 협정 환경조항에 등장하는 이른바 ‘키세(KISE)’ 기준 때문이다.
2000년 발생한 주한미군 한강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과 연이은 ‘매향리 주한미군 사격장’ 폐쇄 운동 이후 미군 기지 내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2001년 한미 양국은 미군기지를 반환할 때 환경조사를 하고 정화 방법과 정화 비용을 협의하는 절차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소파(주한미군지위협정) 환경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때 도입된 것이 ‘키세KISE’ 기준이다. KISE(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 즉 ‘인간 건강에 대한, 알려진, 임박한, 실질적인, 급박한 위험'으로 해석된다. 미국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킨 사업자 등에게 환경정화를 명령할 수 있는 기준인데 환경법률에 명시된 ‘ISE’ 기준에 ‘알려진(known)’이라는 조건이 추가된 것이다. 미군은 이 ‘키세' 기준에 해당될 때에만 환경 정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소파 환경조항'이 발효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주한미군기지 54곳을 반환받았다. 모두 미군 측에 의해 오염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키세 기준에 따라 미군이 자체 정화를 끝낸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반환된 54곳 가운데 25곳은 이후 대한민국 환경법령 상 정화조치를 해야 하는 오염된 지역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7년 국회 현장 조사단은 키세 기준으로 정화를 끝냈다고 하는 경기도 파주시 에드워드 기지에서 흙 속에 고여있는 기름 웅덩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당시 미군은 환경정화를 끝냈다며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 측에 23개 기지의 반환을 통보했고, 한국 정부는 반환받을 기지의 환경 정화 결과에 대해 어떤 검증도 하지 못했다.
‘키세’ 기준 자체가 정량적인 측정 기준이 아니라 ‘임박하고 실질적이며 급박한 위험'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하는 ‘정성적’인 기준이어서 검증 자체가 어렵다. 어떤 오염이 ‘키세’에 해당되는지 결론이나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평 미군기지의 다이옥신 오염이 갖는 위해성에 대해서 미군은 키세 기준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임박하고 실질적이며 급박한 위험'에 해당되는 지 여부에 대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에 (미국) 법원의 판단을 통해서 유권해석을 받을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임박하고 실질적이며 급박한 위험'이 있는지와 관련해서 한미간에 분쟁이 있는 경우에 여기에 대해서 어느 누가 유권해석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2009년 한미 양국은 ‘키세' 기준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위해성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위해성 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한미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25개의 오염된 기지를 정화하기 위해 지난해까지 모두 2,100억여 원의 세금을 투입해야 했고 비용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용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과 ‘녹색연합'이 미국 정부로부터 입수한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5년 사이 용산 미군기지 안에서 84건의 기름유출사고가 있었다. 그중 7건은 1,000갤런(3,780리터) 이상의 기름이 유출된 ‘최악의 사고'였다. 그리고, 400리터 이상이 유출된 ‘심각한 사고'도 25건이었다. 공개된 미군 측 작성 문서에는 유출된 기름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아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으며, 서울시 배수관을 통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로 흘러나갔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 측은 지금까지 84건의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단 한 건도 우리 정부나 서울시에 먼저 통보하지 않은 채 은폐해왔다.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나 서울시에 통보한 기름유출 사고는 5건이 있었지만, 모두 이 84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고였다.
2001년 녹사평역 주변 미군기지 기름 유출 사건도 미군 측이 먼저 알린 것이 아니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된 기름이 8차선 도로를 건너 녹사평 지하철역의 지하 맨홀에서 발견되었고 한미 합동 조사에 의해 미군기지 내부 주유소에서 유출된 휘발유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미군은 정화조치에 착수했고 2003년 12월 한미 공동보도문을 통해 정화조치가 거의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미군기지 바깥의 담장 주변과 길 건너 녹사평역과 주변에 41개의 관정을 설치해 지금까지 17년째 지하수 검사와 정화작업을 해오고 있다.
지난달 목격자들 제작진은 서울시 공무원과 함께 녹사평역 인근 지하수 오염을 확인했다. 그 결과, 관정을 통해 10m 아래의 지하수에서 채취한 지하수 윗부분은 2센티미터 두께의 검은 기름띠로 덮여 있었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미군이 내부의 오염원을 제대로 정화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녹사평 인근 지하수에서 17년째 계속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되고 있다. 2018년 6월 측정한 결과 이 곳의 벤젠 평균 수치는 0.70으로 기준치의 47배에 달했다.
서울시가 지금까지 지하수 정화 처리에 투입한 비용은 76억 원가량이다. 법무부는 소파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정화 비용의 75%인 57억 원을 부담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주한미군은 거부해왔다.
법무부에 따르면, 미군 측은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시설과 구역 사용을 보장하고, 그 사용과 관련하여 제3자의 청구권으로부터 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한다”고 규정된 SOFA 제5조 제2항을 근거로 비용 부담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의 기름유출로 인한 주변 오염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를 정보 공개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 미군 측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며 정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의 부속 규정인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 절차 부속서 A’에는 환경조사 내용의 공개는 소파 환경분과위원회 한미 양측 위원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환경부는 이 규정을 근거로 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 결과를 공개할 경우 한미 외교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녹색연합 등은 환경부를 상대로 용산 미군기지와 부평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해야 했고 법원은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용산 미군기지 1차 환경조사 결과 공개에 대한 대법원판결(2017년 4월 18일), 용산 미군기지 2, 3차 환경조사 결과 공개에 대한 2심 확정판결(2017년 11월 8일), 부평 미군기지 환경조사 결과 공개에 대한 2심 확정판결(2018년 9월 12일)이 그것이다.
사법부의 연이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여전히 공개에 소극적이다. 부평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환경부는 여전히 미군 측에 조사 결과보고서 공개해도 되는지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결국 환경단체가 환경부를 상대로 일종의 강제집행 절차인 ‘간접 강제'를 법원에 신청했다.
시민사회는 소파 환경 규정을 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보를 우리 정부가 미군의 동의 없이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모호한 ‘키세’ 기준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되풀이하지 말고 아예 ‘국내 환경법령을 준수한다'는 조항을 주한미군지위협정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취재진은 외교부에 소파 개정에 대한 의향과 현재 진행 중인 환경협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외교부는 “정부는 그간 국내적으로 소파 협정의 환경조항 관련 개정 요구가 제기되어 왔음을 인지하고 있으며, 향후 제반 정책환경을 고려하여 적절한 시점에 소파 환경조항의 개선에 대해서도 검토해나갈 것”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만 보내왔다.
취재진은 또 주한미군 측에도 소파 개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주한미군과 한미 정부는 소파 협정 속에서, 건강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고 효과적인 절차를 갖고 있다. (USFK and Korean government have a reliable and effective agreed upon process for addressing health and environmental concerns under the SOFA)” 라는 애매한 답변만 보내왔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최미혜
취재 연출 남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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