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재선거로 세금낭비 극심...원인제공자에 책임 물어야

2020년 04월 07일 10시 00분

의원직을 상실한 14명의 국회의원과 8곳의 재선거.

유권자들이 4년 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뽑은 현 20대 국회의 또다른 단면이다.

20대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300명의 의원 가운데 14명(자진사퇴 1명 포함)이 법정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잃었다.

이 가운데는 회계보고를 누락하거나 공천 헌금을 받은 사람도 있고 불법 후원금을 받거나 뇌물을 받은 사람도 있다.

작게는 벌금 200만원에 의원직을 잃은 의원(최명길/국민의당)에서부터 크게는 징역 7년의 중형(이우현/자유한국당)을 선고받고 감방으로 간 의원까지 형의 무게도 다양하다.

특히 14명 가운데 12명은 선거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처벌을 받았다. 21대 총선을 10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지금 후보자 검증과 불법 선거운동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대 국회 의원직 상실...자유한국당 10명, 국민의당 3명 순

20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은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출신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국민의당 의원 3명, 민중당 의원 1명 순이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의원은 의원직을 잃은 사람이 없다.

현 정권이 더불어민주당 정권이라서 한 쪽으로 편중돼 있는 것일까?

지금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대표가 된 원유철 의원이 이런 주장을 했다. 원 의원은 지난 1월 1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혐의로 징역10월을 받은 뒤 “민주당은 1명도 의원직을 잃은 사람이 없다”며 “문재인 정부 하에서 야당에 대한 표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소시점을 살펴보면 의원직을 잃은 14명 가운데 10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에 기소가 이뤄졌다.

17대 국회 땐 열린우리당 그 후론 현 미래통합당 전신정당이 많아


의원직 상실 건수를 단순 그래프로 그리면 위와 같다.

17대 때는 18명이 의원직을 잃었는데 열린우리당 의원이 9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나라당 4명 새천년민주당 3명 순이었다.

18대 국회에선 의원직 상실이 22번 있었는데 한나라당 8명 민주당 6명, 친박연대 3명 순이었다.

19대 국회에선 23명이 의원직을 잃었고 새누리당 12명, 통합민주당 6명, 새정치민주연합 4명 순이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정당 해산이 결정되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의석수가 많을수록 의원직 상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총선 직후 확보한 의석수와 비교해 상실 의석수 비율을 따져보면 그래프는 조금 달라진다.


재선거에 막대한 혈세...원인제공자와 정당은 책임 지지 않아

의원직 상실이 확정된 시점부터 다음 총선까지 1년이 넘게 남았을 경우 재선거를 치르게 된다.

17대 국회부터 20대까지 1년 평균 12.5회의 재선거를 치렀다.


재선거를 치르는데는 당연히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선거관리 비용과 선거운동 보전 비용을 포함해 재선거 1곳을 치르는데 보통 10억여 원의 세금이 투입된다.

하지만 재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의원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 의원을 공천한 정당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당선무효형을 받을 경우 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선거운동비용은 후보자가 반환하도록 돼 있지만 재선거를 치르는 비용에 대해선 아무런 부담 의무가 없다.

이렇다 보니 선거과정에서의 불법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선거 원인제공자에게 비용부담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충남 천안갑의 경우 20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박찬우 후보가 당선됐지만 총선 전에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2018년 2월 대법에서 벌금 3백만 원 형을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그 해 6월 실시된 재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이규희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이 의원도 2017년 지방선거출마 예정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4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대법 판결이 나오진 않았지만 이 의원은 이번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천안아산 경실련은 당시 성명을 통해 “재선거 비용은 공천을 강행한 정당이 책임져야 한다”며 재선거를 치르는데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된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형을 선고받으면 일반 공무원과 동등하게 직위해제 등의 조치가 이뤄지도록 법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물론 재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로써 정치적 심판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16년 동안 치러진 50번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재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의원의 소속 정당 후보자가 다시 당선된 경우가 17번이나 돼 정치적 심판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재선거 원인제공자나 소속 정당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18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발의돼 왔다. 의원들조차 잦은 재보궐선거로 인한 정치 공백과 비용 발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이완영 전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은 자신이 발의했던 법안이 통과됐더라면 자신이 그 적용 대상자가 될 뻔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정치자금법 위반과 무고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 21대 총선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아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정당의 책임 구현을 위해선 일정한 제재가 필요하다면서 재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정당에서는 재선거 때 해당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켜 발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내용의 법안들은 별다른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계류하다 폐기되기를 반복해 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홍철호 의원과 최재성 의원 안의 경우도 정치개혁 특위에 회부됐지만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밀려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1대 총선 후보자 31명 재판 진행 중

열흘 뒤 치러지는 21대 총선의 후보자 가운데에도 31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권성동(무소속/강원 강릉) 후보나 조응천(더불어민주/경기남양주갑) 후보처럼 2심까지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도 있고 이현재(무소속/경기하남) 후보처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정당별로 보면 미래통합당이 18명, 민주당이 6명, 무소속 3명, 열린민주당과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한국경제당이 각각 1명 씩이다.

이 가운데 황교안 대표 등 미래통합당 의원 18명은 국회 패스트트랙 통과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재판 중이고 박범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은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의 폭행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 중이다.

청와대 하명 수사 관련 의혹으로 한병도, 황운하 후보(더불어민주당)가, 조원진(우리공화당) 후보는 집시법 위반으로 홍문종(친박신당) 후보는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최강욱(열린민주당) 후보는 ‘조국 사건’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은재(한국경제당) 후보도 패스트트랙 관련 재판에 걸려 있다.

지난 17대 국회 기간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77명이 재판을 통해 의원직을 잃었고 50번의 재선거가 치러졌다. 매 국회 대수 마다 평균 19명이 의원직을 상실하고 12번 꼴로 재선거를 치른 셈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까지 감안할 경우 21대 국회에서도 십 수명이 의원직을 잃고 10여 곳에서 재선거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후보자와 그런 후보를 공천한 정당에 대해 재선거 관련 책임을 묻지 않는 현 제도가 유지되는 한 지금까지 그랬듯 후보자의 불법 행위에 따른 국민 부담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작진
취재최기훈 강혜인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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