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검찰의 대장동 수사 증거기록 40,330쪽을 확보해 대장동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보도를 진행 중이다. 이 작업에는 온갖 불법과 모략으로 대장동 업자들이 떼돈을 벌었지만, 그들이 져야 할 채무 변제의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후안무치’한 현실의 추적도 포함돼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대장동 사업의 ‘자금책’ 조우형과 ‘로비스트’ 남욱으로부터 발생한 저축은행 빚이 941억 원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대장동 사업을 하며 갚지 않은 2,731억 원을 포함하면, 대장동 일당이 부동산 개발 사업을 벌이며 대출받아 갚지 않은 저축은행 빚은 총 3,672억 원에 이른다.
▲ 대장동 사업의 ‘자금책’ 조우형(좌)과 ‘로비스트’ 남욱(우)
경기도 고양시 풍동서도 부산저축은행과 손잡고 개발 추진...남은 건 빚 409억
대장동 사업에 앞선 2010년 남욱과 조우형, 정영학 등은 경기도 고양시 풍동에서 민간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저축은행은 도시 개발 사업을 직접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부산저축은행은 회장의 처남인 조우형을 내세워 풍동에서 민간 개발을 벌였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자료에 따르면, 조우형과 남욱은 경기도 고양시 풍동2지구 도시개발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 벨리타하우스(이하 B사)를 세웠다. 조우형이 B사의 실질적 대표였고, 남욱도 이후 B사의 대표를 맡았다.
2010년 8월, B사는 부산2저축은행 등 부산저축은행 그룹 3개 은행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동산 개발) 자금을 대출받았다. 당시 대출 금액은 총 409억 원이었다. 당초 B사는 저축은행으로부터 640억 원 상당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을 대출받기로 약정돼 있었다. 민간 개발을 위해선 전체 토지 주인의 3분의 2 이상과 계약해야 하는데, 2010년 무렵 B사의 토지 계약률은 20% 미만이었다.
그러나 2011년 저축은행 부도 사태가 터졌다. 부산저축은행이 약정한 대출금 640억 원 가운데 230억 원 가량은 아직 대출이 실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409억 원이라는 거액의 빚만 남은 채 사업은 좌초됐다.
▲예금보험공사 집계 결과 2023년 3월 말 기준 벨리타하우스가 예보에 갚아야할 빚은 원리금 합계 941억원에 이른다.
941억 빚더미에 오른 ‘바지 사장’ 강 모 씨
파산 당시 대출 잔액은 409억 원, 예보는 B사의 자산을 처분해 원금 116억 원과 이자 4억 원을 회수했다. 그러나 남은 293억 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13년 동안 쌓인 이자는 648억 원이다. 남은 원금과 누적 이자를 합하면 총 941억 원의 부채가 남았다.
그런데 법적으로 이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은 실질적인 대표였던 조우형 혹은 나중에 B사의 대표를 맡은 남욱이 아니었다. 2010년 저축은행 돈을 빌렸을 당시 B사의 대표가 조우형이나 남욱이 아닌 '바지 사장' 강 모 씨였기 때문이다.
애초 강 씨는 조우형의 대학 후배로 원래는 B사의 직원이었다. 그런 강 씨에게 조우형은 ‘큰돈이 되는 아파트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고, 결국 대표직을 떠맡기면서 연대 보증까지 서게 했다. 따라서 빚을 갚아야 할 법적인 책임은 지금까지 강 씨가 지고 있다. 현재 강 씨는 갚을만한 경제력이 없어 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대장동 사업으로 수익을 챙긴 조우형이 B사의 숨은 주인이란 사실은 B사가 연루된 법원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다. 뉴스타파 취재를 종합하면, 풍동은 부산저축은행이 사업 지분을 가진 불법 차명 사업장이었다.
조우형, 남욱이 거머쥔 돈다발과 3,672억원의 저축은행 빚
뉴스타파가 앞서 보도한 것처럼 조우형은 2012년 예보의 수사 의뢰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았다. 2013년 7월 2일 자 '정영학 녹취록'에서 남욱은 "검사장이 수사관에게 전화를 했고, 이후 수사관이 터놓고 봐줬다"고 말한다. 조우형과 남욱은 실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당시 조우형의 혐의는 B사와 관련한 배임이었다. 예보 조사 결과, B사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 중에 80억 원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오롯이 풍동 개발에만 쓰여야 할 대출금을 빼돌린 것이다. 조우형은 자신의 회사 직원을 연대보증인으로 앉혀 놓고 B사 자금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남욱은 '바지 사장'이었던 강 씨가 저축은행과 대출 약정을 체결한 직후 B사의 대표로 취임한다. 하지만 연대보증인은 여전히 강 씨로 유지됐고 남욱으로 바뀌지 않았다. 풍동의 사례는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대장동의 사례와 똑같은 구조다. 대장동 사업에서도 남욱은 사업 시행사를 인수한 뒤 연대보증인을 바꾸지 않았다.
대장동 땅에 묻힌 저축은행 피해 예금은 총 2,731억 원(원금 383억 원 포함, 2023.1. 기준)에 달한다. 예보는 남욱 이전에 시행사 대표였던 이강길에게 이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11월 뉴스타파 보도 후 입장을 바꿨다. 예보는 지난해 2월, 남욱이 연대보증을 떠안는다는 기록을 근거로 대장동 빚 연대보증인을 이강길→남욱으로 뒤늦게 바꿨고, 남욱을 상대로 빚을 갚으라는 소송을 냈다.
반면 풍동에 연체된 941억 원은 그런 기록조차 없어 회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대장동 일당이 갚지 않은 대장동 관련 저축은행 대출금은 2023년 1월 말 기준 2,731억원이다.
검찰 증거기록 속에는 예보의 대출금 환수 작업 방해한 '검은 손' 존재 정황
대장동과 풍동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1) 저축은행 피해 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과 2) 막대한 부를 챙긴 대장동 업자들이 아닌 엉뚱한 인물이 연대보증 책임을 졌으며 3) 자금 환수를 위해 당국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단 점이다.
예보는 대장동 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2012~2014년에 계속 연체된 대출금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장동 검찰 수사 증거기록 40,330쪽을 보면, 예보가 대장동 땅을 강제 경매로 넘기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환수 작업을 막은 정황이 포착된다.
증거기록 속 검찰이 작성한 녹취록에는, 김만배가 "니가 한 얘기, 내가 예보에 전달했어"라고 정영학에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공적 자금 회수를 방해한 '검은 손'이 누군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남욱과 조우형은 서민들의 저축은행 예금을 종잣돈 삼은 대장동 사업으로 각각 1,007억 원, 282억 원의 배당 수익을 챙겼다. 이들의 범죄를 단죄하는 ‘사법 정의’ 못지않게, 이들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경제 정의’의 필요성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