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업

ICIJ 의료기기 협업 취재기: 규제는 누더기, 환자만 고통

2018년 12월 20일 08시 08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IMPLANT FILES 다시보기

(1) 연 450조 의료기기산업..결함 등으로 10년간 8만명 사망
(2) 늑장 리콜 통보에 쥐꼬리 보상...한국 환자 ‘하등민’ 취급
(3) 우리는 왜 글로벌 의료기기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가?
(4) 볼모가 된 심장…심각한 이상사례 106건, 리콜은 없다?
(5) 같은 리콜기기…미국 "사망 가능" VS 한국 "부작용 거의 없어"
(6) 전세계 시민을 위해 ‘의료기기 DB’를 만든 이유
(7) ‘파열된 신뢰’ 인공유방...국내 이상사례 4천3백 건
(8) 미 FDA, "42년 만에 의료기기 승인절차 손질하겠다"
(9) 식약처의 '업체 꼬리표' 걱정...정보 감추기 급급
(10) 의료기기업체-병원의 부당거래...피해는 환자에게

지난 10월 초 비바람이 몰아치던 아침, 서울 시내 한적한 카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기자들과 일본 도쿄, 인도 뉴델리,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중국 베이징, 스웨덴 스톡홀름, 미국 뉴욕과 워싱턴DC 등에서 온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파트너 기자들이 만났다.

모두 서울에서 열린, 기자들로 가득찬 국제탐사저널리즘 아시아 총회 현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의료기기 산업계를 파헤치는 국제 협업 취재, ‘임플란트 파일’(The Implant Files)의 최종 사항을 별도로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ICIJ와 뉴스타파, 일본 교도통신, 미국 NBC 등 ICIJ 파트너 기자들이 지난 10월 서울에서 만나 의료기기 협업 취재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오쿠야마 토시로 기자, 아사히신문)

기사 동시 출판까지는 불과 두 달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ICIJ 파트너 언론들은 한국에서 새롭게 발굴한 의료기기 이상사례 데이터를 공유하고,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과잉 진료 혐의의 실마리를 잡아 냈다. 그리고 가슴 필러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일본 환자들의 참혹한 진술도 끌어냈다. 파트너 기자들은 결함이 있는 스텐트와 인공유방 이식, 기타 의료기기에 대한 그동안의 취재 결과가 국제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지난 11월 26일 보도되기 시작한 각국 기사들은 4천 억 달러(약 450조 원)에 이르는 전 세계 의료기기 산업의 여러 문제점과 규제 감독의 허술함을 폭로했다.

일본 올림푸스, 미 법원서 8천500만 달러 벌금·몰수

일본 교도통신은 올림푸스사(社)가 제조한 일부 내시경들이 2012년에서 2015년 사이 유럽과 미국에서 환자 약 190명에게 박테리아 감염을 유발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이 인용한 법원 기록에 따르면 올림푸스 도쿄 본사 임원들은 감염 위험성을 알면서도 미국 당국에 경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문제의 제품은 일본에서는 판매되지 않았다.

미 연방 판사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자사 내시경과 관련된 감염을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 올림푸스에 8천 만 달러(약 904억 원) 벌금형과 500만 달러(약 56억 원) 몰수형을 선고했다. 법무부와의 ‘유죄 답변 거래’에 따라 올림푸스와 전직 임원은 문제의 내시경 제품을 미국에서 계속 판매해 온 죄도 인정했다.

일본 기자들은 유방확대술을 받으며 겔 필러 주사를 맞은 환자들이 수상한 종양이나 혹과 같은 합병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과 달리 미국, 프랑스에서는 유방확대술을 위한 겔 필러 사용이 금지돼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웃나라 한국의 필러 시술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NHK는 유방확대술에 사용된 겔 필러의 위험성을 보도했다. (출처: NHK 보도 캡처)

ICIJ의 보건당국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일본 후생성에 보고된 의료기기 관련 이상사례는 약 9만 건이다. 관상동맥 스텐트 관련 이상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이상사례 4천900건 확인…학술대회 지원 유착 탐사

한국 정부는 상세한 의료기기 이상사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국에서는 뉴스타파가 지난 4년간 당국에 보고된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 부작용이 4천900건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89%)이 실리콘겔 인공유방 관련 부작용이었다.

뉴스타파는 또 환자들은 때로 자신의 몸에 이식될 의료기기와 관련된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시술 전에 알지 못했고, 해당 기기들이 리콜되었을 때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또한 한국 의사들의 학술대회 참가비·여비를 지원한다고 뉴스타파는 보도했다. 이렇게 의료기기 업체들이 매년 수십 차례에 걸쳐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해외 학술대회 지원비는 연평균 추정 27억 원에 이른다. 보도에 따르면 업체들은 의사에게 직접 학술대회 참가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대신 업체들은 의료기기산업협회와 학술대회 주관 학회를 통해 자금을 지원한다. 이 때문에 업체와 의료인 사이의 연결고리는 은폐된다고 뉴스타파는 지적했다.

인도, 방만한 의사 지원·편법 세금공제…취약한 법망

인도 당국은 현재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이 의사들에게 제공한 선물, 훈련비, 학술대회 여행과 함께 지원 비용에 대한 비과세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인디안익스프레스는 지난 10년 간 애보트, 메드트로닉, 존슨앤드존슨과 같은 다국적기업들이 특허, 광고·홍보 및 선전, 고객관계와 같은 지출 비용에 대해 세금 공제 혜택을 청구한 혐의로 인도 정부의 제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법원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세금 혜택에 대한 규제가 의사에게만 적용되는지,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에게도 적용되는지 논쟁 중이다.

인도는 2006년 발의된 ‘의료기기 규제 법안’(Medical Device Regulation Bill)을 여전히 제정하지 않고 있다. 2016년, 인도 정부는 법을 더 엄격하게 하면 “경쟁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법제화 대신 설계·제조 요건에 관한 일련의 규정을 도입했다. 인디안익스프레스가 인터뷰한 전문가, 업계 관계자들은 이 새로운 규정을 "정치인들이 안이한 길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 환자들은 의료기기 안전성 문제나 잠재적 위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2016~2017년 인도에서 판매된 수많은 기기들이 심각한 안전성 문제 때문에 해외에서 리콜된 사실을 보여주는 미국 규제당국의 자료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는 불과 23종의 기기에 대해서만 리콜을 공표했다.

인디안익스프레스는 의료기기 협업 보도가 “실효성 없는 규제 시스템 안에서 거의 모든 의료기기들이 어떻게 홍보, 판매되고 이식되는지 폭로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인디안익스프레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인도는 2014년에서야 병원에 의료기기 이상사례를 보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현재까지 보고된 대부분의 이상사례(약 900건, 절반 이상 2018년 보고)들은 스텐트, 정형외과 이식기기, 자궁 내 이식장치들과 관련이 있었다

파키스탄, ‘이상사례 보고 의무’ 없는 병원…환자만 피해자

ICIJ의 미디어 파트너 더뉴스(The News)는 파키스탄에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에서 수입된 의료기기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규제 기관이 없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미허가 스텐트를 둘러싼 스캔들이 터진 뒤 파키스탄 대법원은 의료기기 수입업자의 면허와 규제 기관 등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체이식형 의료기기 이상사례 보고 의무는 기기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에만 맡겨져 있고, 보고 성과는 형편 없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아직 병원에 인체이식형 의료기기로 발생한 이상사례를 보고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 연방수사국(FIA)이 최근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부도덕한 의사들의 스텐트 남용은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 매체가 인터뷰한 한 환자는 중재 심장전문의(interventional cardiologist)에게서 스텐트를 이식받은 뒤 어떻게 병들어 갔는지 설명했다. 나중에서야 해당 스텐트 삽입은 불필요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 다른 환자는 스텐트가 혈전을 일으켜 사망했다.

더뉴스는 "이상사례 기록이 보관되지 않고, 강력한 규제당국이 없는 한 병원은 이상사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들만 결국 사상자가 된다"고 결론 내렸다.

보도 후 이어지는 추가 제보…협업 취재도 계속

이처럼 ICIJ와 파트너 언론사들은 11월 26일 동시다발적인 연속 보도 이후 정부와 규제당국의 후속 조치를 감시하고 있다. 또 보도와 동시에 공개한 국제 제보창에는 전세계 의료기기 이식 환자, 업체 관계자, 의료인들의 제보가 쌓이고 있다. 뉴스타파와 협업 매체들은 추가 제보를 공유하며 후속 취재를 진행 중이다.

취재: 실라 알레치, ICIJ
정리·번역: 홍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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