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해석 개헌] ① 대법관 제청권 무력화, 재판관 선출권 무력화

2023년 06월 26일 18시 00분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부 명령인 시행령으로 국회가 만든 법률을 뒤집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이런 현상을 포착해 <헌법 위에 시행령> 연속보도에서 지적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에는 헌법을 마음대로 해석해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러한 행위를 ‘해석 개헌’이라고 보고 위헌성을 점검하는 <윤석열의 해석 개헌>을 연속보도한다. <편집자주>
① 대법관 제청권 무력화, 재판관 선출권 무력화
② 권력이 아닌 국민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기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특정인 두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 6월 1일 TV조선이 보도했다. 대법관 인선은 법률안처럼 거부권을 행사하는 절차나 근거가 없기에, 부정확한 기사였다. 그렇지만 대통령실이 보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특정인 두 사람을 임명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사는 사실로 굳어졌다. 지목된 두 사람이 모두 여성인 탓에 논란은 주로 ‘대통령이 대법관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정치적 논란으로 전개됐다. 그리고 지난 6월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특정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명 후보 가운데 두 사람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이번 ‘대법관 임명 거부’ 논란은 1957~1958년 이승만 대통령의 김동현 대법원장 거부 사건과 비슷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8년 6월 제2대 대법원장 조용순을 서울 서대문구 경무대에서 접견하고 있다. 이승만은 애초 법관회의가 대법원장으로 제청한 김동현을 거부하고 다음으로 제청한 조용순도 제청 4개월 만에야 마지못해 임명했다. (출처:국가기록원)

윤석열의 특정인 대법관 거부, 이승만의 대법원장 거부와 닮은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퇴임을 앞둔 1957년 11월 23일, 법관회의에서 전체 11표 가운데 9표로 전직 대법관 김동현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법관회의가 제청한 김동현 대법원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김병로 대법원장 퇴임 한 달 뒤인 1958년 1월 16일에야 국무원 사무국장 명의로 법원행정처장에게 임명 거부 문서를 보냈다. "귀하가 대법원장으로 제청한 김동현 씨는 임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법관회의에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제청하라고 요구했다. “이우익 씨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분이니, 이분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친서를 보냈다. 이우익은 집권 자유당의 경북도당 위원장이었다. 이에 법관회의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고, 1월 28일 만장일치로 대법관 출신인 조용순을 대법원장으로 새로 제청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조용순 역시 임명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오히려 법관회의의 제청절차를 없애려고 했다. 자유당 조경규 의원 외 10명이 2월 21일 제청철차를 없앤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곧바로 2월 24일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변호사회가 반대 결의문을 내고, 3월 13일에는 시립극장에서 전국변호사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퇴임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변호사로 참석해 “입법권을 가진 사람들이 방자하다”라고 했다. 3월 18일 결국 조경규 의원은 법안을 철회했다. 그래도 이승만은 대법원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 9일이 돼서야 법관회의가 제청한 조용순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대법원장 임명절차 시작 7개월 만이고, 법관회의가 조용순을 제청한 뒤로도 4개윌이나 지난 뒤였다.
당시 법관회의가 대법원장을 제청한 근거는 법원조직법에 있었다. 제37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은 대법원장, 대법관, 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이를 행한다’ 였다. 헌법 제78조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헌법과 법원조직법은 건국 때부터 있었다. 이 법원조직법 조항은 1949년 제정한 것에서 표현만 수정한 것이고, 헌법 조항도 1948년 제헌 헌법 그대로였다. 이처럼 건국 직후부터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사법기구 구성은 건국 초기 일부의 위헌 시비를 극복하고 건국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이기도 했다.
위헌을 주장하던 이들은 대법원장 인선 절차는 법률로 구체화하면 안 된다고 했다. 헌법 조항에 적혀 있지 않은 법관회의 제청 제도는 위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제헌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위헌론은 근거가 없다”라고 1949년 9월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이와 관련 제헌 헌법은 제69조에서 국무총리 인선 절차를 따로 정해 놓았다. 이는 제62조 공무원을 헌법 그리고 법률로 임면(任免)한다는 조항의 예외이다. 따라서 국무총리 인선 절차는 법률로 추가할 수 없다. 위헌론자들은 대법원장 인선 절차를 정한 제78조 역시 제62조의 예외이므로 법률로 구체화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유진오는 제62조는 행정부 공무원에 관한 것이므로 제69조 국무총리 부분이 예외이지만, 제78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공무원이므로 제62조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헌법 조항들처럼 법률로 구체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최고법원 법관 임명 과정에 법관회의가 관여하는 제도가 정착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나라들과는 다른 대한민국만의 특징이 됐다.

사법부의 최고법원 구성권, 제헌 헌법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의 특징

유진오가 밝힌 건국 이념과 이승만의 전횡이라는 경험을 토대로, 법원조직법 내용은 이후 헌법에 반영된다.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 혁명 이후 헌법은 제청된 대법원장·대법관을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1960년 헌법은 제78조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이를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한다’라고 했다. 1962년 헌법 제99조 제1항도 ‘대통령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이 있으면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라고 정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이 급작스레 변경된 것은 1972년 유신헌법에서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법부를 장악할 의도로 대법원장을 직접 임명하고, 대법관 제청권을 대법원장 개인에게 줬다. 특히 대법관은 국회 동의도 필요하지 않았는데, 1987년 바뀐 현행 헌법에서 국회 동의 절차가 포함됐다.
1972년 유신헌법을 계기로 법관회의 기능이 대법원장 개인의 제청으로 바뀌었어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해석이 다수다. 대한민국 건국이념이나 헌법개정 과정을 보면 최고법원 구성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현행 헌법 제104조에 따른 세 가지 법관 임명 방법은 이렇다. ①판사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②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요약하면 ①판사 인선에는 대통령 관여가 없고, ③대법원장 인선에는 사법부 관여가 없다. 그렇다면 ②대법관 인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남는다. 이에 대해 헌법학자인 이황희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관 인선은 삼권이 모두 관여하게 되어 있지만,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권 및 국회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황희 교수는 “현행 헌법을 보면 국무위원 임명에도 국무총리의 제청이 필요하고, 대법관 임명에도 대법원장 제청이 있어야 하지만 두 조항에서 말하는 제청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라고 했다. 이유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국무총리의 제청과 사법부를 구성하는 대법원장의 제청은 연원과 관행이 달라서라고 했다. 국무위원 임명은 행정부 수반인 자신을 보좌할 인력을 구하는 과정이지만, 대법관 임명은 최고 권력자인 자신을 견제하는 기관을 구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이 있기도 전에 대통령실이 먼저 발표하는 관행이 용인됐지만,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 이전에 대통령실이 먼저 발표하는 일은 독재정권에서도 없었다. 1972년 유신헌법 이후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이 거부한 적도 없었다. 독재정권에서조차 제청권자의 의사를 우선하는 것이 권력분립 혹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이념에 들어맞는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처음으로 임명한 오석준 신임 대법관(사진 오른쪽)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두 번째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대법원장이 특정인을 제청하면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대통령실)

윤석열식 헌법 해석, 헌법재판관 9명 모두 대통령 몫 주장할 우려

아무튼 김명수 대법원장은 권영준 서울대 교수와 서경환 서울고법 판사를 대법관으로 제청했다. 두 사람이 대법원장이 애초 제청하려던 사람인지, 대통령실 발언 이후 바꾼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을 김명수 대법원장이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대통령실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압력을 행사하고, 헌법상 권한이 불투명한 거부권까지 언급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 후보를 바꾼 것이라면, 윤석열 대통령 발언의 위헌성은 더욱 짙어진다. 이와 관련 ‘대법원장이 제청할 후보자를 바꾼 것이라면 검찰 수사를 두려워해서가 아니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현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사람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고, 오는 9월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도 국민의힘 등으로부터 이미 여러 이유로 고발된 상태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대법원장 제청을 국무총리 제청과 같은 것으로 헌법을 해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바탕으로 대법관 임명권과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같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현행 헌법에서 도입됐고 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에 앞서 3명은 국회가 선출,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 3명은 대통령이 내정한다. 그래서 이른바 국회 몫, 대법원장 몫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식 헌법 해석을 하면 국회나 대법원장이 누구를 선출하고 지명해도,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할 우려가 있다. 참고로 현행 헌법 제111조 제2항은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이고, 제3항은 ‘제2항의 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이다.
다수의 사법 전문가는 대통령이 설마 그렇게까지 헌법을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보지만, 이번 대법관 제청 과정을 보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민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21세기 유신헌법으로 ‘해석 개헌’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작진
취재이범준
디자인정동우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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