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의도 1.5배 VOA 중계소 땅  요구...비밀해제문건에 나와

2019년 04월 03일 17시 07분

미국 정부, 한국에 ‘VOA’ 방송중계소 땅 4백만 제곱미터 요구

미국 정부가 한국에 여의도 넓이의 1.5배에 이르는 국토를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이하 VOA)와 ‘자유유럽방송-자유방송’(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이하 RFE/RL), 방송중계소 대지로 제공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실이 최근 외교부가 비밀해제한 문서에서 드러났다.

VOA는 미 국무부 방송위원회(Broadcasting Board of Governors) 산하 기구로, 미국의 정책과 관점을 알리는 관영 선전매체다. RFE/RL 역시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유럽 및 중동지역 국제방송으로, 냉전 시기에 반공 선전기구로 출발했다.

외교부가 최근 공개한 VOA 방송중계소 관련 외교문서는 1982년 12월부터 1983년 8월 사이 생산된 문건들이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1982년 12월 30일, 당시 주한미대사 리처드 워커가 직접 한국 외무부를 방문해 VOA와 RFE/RL 방송중계소 설치를 위해 한국 정부의 “원칙적 동의"를 요구했다. 미국이 원했던 중계소 면적은 1,000에이커, 약 123만 평(4백여 만 제곱미터)이었다. 이는 여의도(87만 평)의 1.5배 가까운 규모이며, 용산미군기지(118만 평)보다 훨씬 큰 면적이다.

미국 “VOA 방송중계소 직원에게 외교특권까지 부여해 달라”

미국 측이 보낸 예시협정문은 한국 정부가 방송중계소 소요부지 123만 평 권리 취득을 지원해 줄 것, 해당 대지를 20년 간 사용할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해당 방송중계소에서 일할 미국인 직원들을 미국대사관 직원으로 간주하여 수입특권, 면세권, 그리고 미국대사관 행정직과 동일한 특권 및 면제를 부여할 것 등의 요구를 담고 있다. 용산기지보다 더 큰 땅에다 중계소 직원들에게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누리는 외교특권까지 부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국 내 방송중계소 설치 명목으로 미국 측이 내건 이유는 소련 측의 전파 방해였다. 냉전이 한창이던 80년 대 당시 미국과 소련은 체제경쟁의 일환으로 이데올로기 전파를 위한 선전전에 열을 올렸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보낸 문건에서 VOA와 RFE/RL을 겨냥한 소련의 전파방해에 맞서기 위해선 방송출력을 증가시키고 수신 권역인 소련, 중국과 가까운 곳에 중계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한국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리처드 워커 당시 주한미대사가 외무부에 방문해 전달한 VOA 등 방송중계소 설치 관련 요청(1982. 12. 30.)

관계부처 중계소 설치 반대… “협소한 국토 감안, 신중히 검토해야"

외무부는 각 관계부처에 미국 측의 요구내용을 전달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대다수 부처는 여러 이유를 들어 VOA 등 방송중계소 설치를 반대했다. 내무부만 “미국방송 중계소 설치는 우방을 지원하고 국제적 평화정착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찬성 의견을 내놨다.

외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외무부 아주국은 “중공은 자국민을 상대로 한 미국의 심리전 성격의 방송을 탐탁하게 생각치 않을 것”이라며 국내에 중계소 설치 시 중공의 불필요한 한국 비난 구실을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소련을 담당한 외무부 구주국도 “불필요하게 소련 정부를 자극시키거나 소련이 이를 대소 적대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행위나 조치는 가능한 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아국이 미국의 지배 하에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소련 측에게 제공하게 되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외무부가 VOA와 RFE/RL 등을 미국의 심리전 방송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설부는 “우리나라의 협소한 국토를 감안할 때 동 방송중계소 설치를 위하여 약 120만 평의 부지를 할애하는 문제는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체신부는 구체적인 법령과 통신간섭 등 기술적 문제점을 들어 중계소 설치를 반대하면서도 “한-미간의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미국정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경우 KBS에서 추진하는 ‘제2단파방송기지’ 건설계획을 확대하여 시간대를 대여하도록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공보부는 외국인에게 방송국 허가를 줄 수 없다는 점, KBS 제2기지 시설과 별도로 추진 시 국토가용면적이 축소된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국내사정에 대한 좋지 않은 방송 보도를 할 때 방송 내용을 규제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1942년부터 한국 내 방송중계를 해왔던 VOA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국내에 보도한 이후 국내 중계가 중단된 바 있다.

국방부는 미국 측이 요구한 부지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설부지 요구 (약 123만 6,275평)의 강대성으로 보아 타 목적 이용 의도를 전혀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전에 충분한 의사타진과 그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 소련과 중공 등이 전파방해를 할 경우 우리나라 방송중계와 군 작전 통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북한을 포함한 주변 공산권 국가들에 역심리전 자료를 제공할 가능성 등을 들며 외무부에 반대 의견을 보냈다.

▲방송중계소 설치 관련 국방부의 검토의견(1983. 4. 1)

외무부는 의견조회 결과를 종합하여 1) 우리나라의 협소한 국토사정, 2) 상대국 전파방해로 우리 군 작전통신망에 지장 초래, 3) 국내법상 외국정부 및 법인에 대한 방송허가가 불가하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 대사가 중계소 대지를 요구해 온 지 4개월만인 1983년 4월 미국 정부에 VOA 중계소 설치가 어렵다는 의견을 통보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1983년 6월,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열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조사단을 파견하겠다며 방송중계소 설치를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측은 경기 화성군(D), 충남 홍성군(G), 전남 영광군(H), 전남 무안군(N) 등 4곳을 설치 후보지로 지목했다. 미국 측은 이 가운데 VOA가 1974년 당시 오산 공군기지에서 11마일 떨어진 D부지를 가장 선호했고 획득할 수 있다고 확신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측이 방송중계소 설치 후보지로 지목한 후보지(1983. 8. 6)

미국 “레이건 대통령 관심사항”... 집요하게 중계소 설치 요구

이후 미국 정부 외교관들은 줄기차게 중계소 설치를 요구했다. 외무부가 1983년 8월 19일 작성한 “‘미국의소리' 방송중계소 설치 문제에 관한 미측인사 발언 일지"에 따르면 워커 주한미대사 뿐만 아니라 폴 월포위츠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1983년 7월과 8월 사이 며칠 간격으로 한국 측에 방송중계소 설치를 수차례 언급했다. 이들은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 전에 중계소 설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워커 주한미대사는 1983년 7월 1일 이범석 외무부장관을 직접 만나 “방송중계소 설치문제가 레이건 대통령 관심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또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을 수행할 존 위컴 미 육군참모총장이 중계소 설치를 강력히 추진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미군 최고 수뇌부가 강력하게 관심을 가졌다는 언급은 미국이 요구한 땅 규모로 볼 때 미국 정부가 중계소 부지를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는 한국 국방부의 반대 의견이 떠오르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외무부가 정리한 "미국의 소리 방송중계소 설치문제에 관한 미측인사 발언 일지" (1983.8.19.)

미국의 요구에 따라 외무부는 다시 관계부처에 2차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건설부, 체신부, 문화공보부 등은 기존 반대입장을 고수했고, 1차 의견조회 때 찬성의견을 낸 내무부조차 반대의견으로 돌아섰다. 안기부는 “(중계소 설치가)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관심사항이므로 일단 기술조사단 파견에 동의한 후, 기술조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 등 어려움을 제시하여 아측 입장대로 이뤄지도록 타협”하자는 의견을 냈다. 오로지 치안본부만이 이견없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에 외교부가 공개한 VOA 방송중계소 관련 문건은 외무부의 2차 의견조회 내용까지만 담고 있어 이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자세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미국 정부와 VOA는 여러 차례 한국에 방송중계소 설치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출판된 미국의 외교정책을 다룬 책 고립 또는 포용: 적대국가, 미국외교정책, 그리고 공공외교 (Isolate or Engage: Adversarial States, US Foreign Policy, and Public Diplomacy)는 미국이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추진했던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과 VOA 방송중계소 설치가 번번이 좌절됐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VOA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월부터 극동방송 방산 송신소를 통해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극동방송의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김장환 목사다.  

VOA 방송중계소 설치 관련 외교문건은 냉전의 시대상과 함께 한-미 관계의 속살을 보여준다. 냉전은 종식된 지 오래이고 VOA 중계소 대지 123만 평 요구도 무산됐지만, 당시 미국의 요구는 오늘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배치 요구 등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미국 측이 용산미군기지보다 넓은 방송중계소 설치 땅을 요구한 배경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한.미국간의 ‘미국의 소리(VOA)’ 방송중계소 설치문제, 1982-88. 전 13권

취재 : 임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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