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 논란' 사건 당사자, "김기현 동생 요구로 30억 계약서 만들었다"
2019년 12월 12일 19시 36분
이른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 동생 김삼현 씨와 건설업자 김흥태 씨가 맺은 ‘30억 계약’ 사건.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 된 지 약 1년 만인 2017년 경찰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잡고 본격 수사에 착수하지만 이 사건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는다.
30억 원을 주기로 한 김흥태 씨는 김삼현 씨가 형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통해 아파트 시행 사업권을 되찾아 주고, 각종 인허가 문제도 해결해 준다는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계약서는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이기 위한 요식행위였다는 것이다.
반면 김삼현 씨는 형 김기현 전 시장을 통한 청탁이나 알선 약속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또 이면 합의는 결코 없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때만 해도 정상적인 용역계약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고래고기 환부사건’ 및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경간에 극한 갈등이 벌어지던 2018년, 경찰은 김흥태 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김삼현 씨 등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하지만 검찰은 김삼현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며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30억 용역계약서에 대한 김기현 측과 김흥태 측 입장>
뉴스타파는 ‘30억 계약서’에 얽힌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김삼현 씨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결정서와 이에 대한 경찰의 반박 입장문 내용을 따져봤다. 그 결과 검찰이 다수의 반대 정황에도 불구하고 김삼현 씨가 김흥태 씨에게 속아서 계약을 맺었다고 판단한 사실과, 검찰 단계에서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청탁을 직접 언급한 핵심 참고인의 진술이 뒤바뀐 사실을 확인했다. 2가지 핵심 의혹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의혹은 검찰이 김흥태 씨에게 속아서 계약을 체결했다는 김기현 전 시장의 동생 김삼현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2014년 3월 26일 체결된 계약 핵심은 김삼현 씨가 울산 북구 신천동의 아파트 건축 관련 사업을 돕는 대가로 김흥태 씨로부터 30억 원을 받는다는 것.
하지만 이 계약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 계약이 맺어지기 4년 전인 2010년, 김흥태 씨는 이미 이 무렵 북구 신천동 아파트 사업 시행권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김 전 시장의 동생 김삼현 씨가 계약서에 담긴 내용을 이행하더라도 이미 경쟁업체인 A사가 시행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약 내용 대로라면 김흥태 씨는 아무 이익도 얻을 것이 없었지만 3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김삼현 씨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김삼현 씨는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점에 대해 “김흥태가 (사업권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자신을 속였다”는 취지로 진술한다.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한 것처럼, 김삼현 씨가 먼저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제안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김삼현 씨가 김흥태 씨의 상황을 몰랐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삼현 씨의 이 주장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검찰의 불기소결정서 8페이지 하단에 뜻밖의 구절이 등장한다.
울산지방경찰청은, 김삼현이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에 ‘D건설을 압박하여 신천동 아파트 사업시행사를 김흥태로 변경해 주는 대가로 30억 원을 지급 받기로 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음에도 그 후 진행된 조사에서는 위 변호인 의견서 내용을 전혀 모르겠다고 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였다고 하였으나(2018.7.16자 의견서)...
김삼현 씨의 변호인이 경찰에 제출한 의견서 중 일부인데, 김삼현 씨가 D건설을 압박하여 아파트 사업 시행사를 김흥태 씨로 변경해 주는 대가로 30억 원 계약이 체결됐다고 밝혔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으로, 김삼현 씨가 김흥태 씨에게 사업권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변호인이 낸 의견서를 통해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본인에게 불리한 의견서가 제출된 후 김삼현 씨는 “해당 의견서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부인한 것으로 불기소결정서에 나와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부분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검찰 논리는 해당 의견서가 김기현 전 시장이나 울산시 공무원에 대한 청탁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사건의 핵심 쟁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흥태와 김삼현이 ‘30억 용역계약’을 맺고 한달쯤 뒤인 2014년 4월 28일, 김삼현 씨는 김흥태 씨에게 의미심장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D건설은 2~3일 안에 결론 나올 듯.. 전방위 압박 하고 있심더 최선을 다하고 있심더~~”
‘30억 불법 계약’이 체결된 지 1개월여 뒤, 김삼현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D건설을 전방위로 압박했다는 것이다. 김삼현은 수사기관에서 “김흥태가 D건설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보낸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 때까지도 김흥태에게 아파트 시행권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계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김흥태 씨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D건설은 이미 김흥태의 경쟁사인 A사에 188억 원 상당의 자금을 빌려줘 A사가 문제의 아파트 시행권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김흥태 씨는 “이미 이전에 A사가 D건설의 자금으로 사업권을 획득했는데, 김삼현이 D 건설을 접촉했다면 나에게 사업권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또 있다. 김삼현과 함께 피의자로 수사를 받은 전 울산시체육회 관계자 박 모 씨는 김삼현으로부터 “D건설을 움직여 경쟁사인 A사가 아파트 사업허가를 못받게 해 주는 조건으로 김흥태에게 30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다. 박 씨가 말했다는 이 내용은 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으로 이면합의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지만, 검찰은 여기서도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알선이나 청탁과는 무관하다며 문제 삼지 않는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동생 김삼현 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 2번째 결정적인 요소는 핵심 참고인 2명의 진술 번복이다. 이들 참고인은 문제의 ‘30억 계약’을 사실상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윤모 씨와 김모 씨.
경찰에서 김모 씨는 “김삼현이 형인 김기현 전 시장의 힘을 빌어 D건설사를 압박, 사업권을 김흥태에게 넘기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수 차례 밝혔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180도 뒤집는다. 윤 씨 역시 경찰에서는 “김삼현이 김기현을 통해 D건설을 압박해서 A사와의 시행계약 연장을 못하도록 하고 D건설이 시행사를 바꾸지 않더라도 김기현을 통해 울산시 인허가 부서 공무원들로 하여금 A사의 사업인허가 신청을 받아들이 않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이 진술을 부인했다.
특히 윤 씨는 검찰에서 ‘김삼현의 형이라고 했지, 그 형이 김기현 전 시장이라고 특정한 적은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돼 있다. “김삼현이 말했던 말했던 ‘형’이 김기현 전 시장이 아닌 장남 김종현 씨 일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검찰은 핵심 참고인의 석연치 않은 진술번복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윤 씨의 바뀐 진술을 토대로 “김삼현 씨가 형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청탁 관련 대화를 한 적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30억 계약’ 사건 핵심 참고인 2명의 진술 번복 내용>
(김삼현과 김기현 전 시장의 형) 김종현은 업계에서 누구 하나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 김종현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아니고, 김삼현의 ‘형’이라고 하면 100% 김기현을 말하는 것이다. (김종현 일 수도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경찰 역시 핵심 참고인들의 진술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뒤바뀐 점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검찰이 경찰의 수사결과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검찰이 악의적으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본다. 참고인 진술이 검찰 단계에서 바뀌었는데 이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몰아가기 위해 검찰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취재 | 조원일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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