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노스호와 세월호...우리는 왜 못 구했나

2014년 05월 13일 20시 53분

1991년 8월, 승객 571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해안에서 이스트런던을 떠나 더반으로 향하던 7천톤급 여객선 오세아노스호가 침몰 위기를 맞았다.

선장과 선원 대부분이 먼저 탈출했지만 승객들은 모두 급격히 기울어진 갑판 위에서 대기했고, 공군 헬기 13대가 7시간 동안 풍랑 속에 사투를 벌여 승객 전원을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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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상 상태와 배의 침몰에 걸린 시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오세아노스호와 세월호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구조 당국의 정확한 상황 파악과 현장 대처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세월호에는 476명이란 많은 탑승객이 있었음에도 최초 신고 접수후 배가 침몰할 때까지 1시간 반 동안 구조 활동을 벌인 것은 헬기 3대와 100톤급 경비정 1척이 전부였다. 먼 바다도 아니고 연안에서 발생한 대규모 조난사고인데도 구조선박도 구조헬기도 너무 늦게 너무 적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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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지휘관이 책임을 지고 상황을 통제했어야 하지만 해경 123정은 사고현장으로 출발할때부터 도착해서까지 세월호나 진도관제센터와 교신을 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내부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교신을 했더라면 승객에 비해 대피인원이 적은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선내에 진입해 승객들이 퇴선하도록 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했다.

더욱이 사태의 심각함을 파악한 목포해경서장의 수차례에 걸친 퇴선조치 명령도 현장에서 이행되지 않았다. 경비정이 한 일은 스스로 세월호 밖으로 나온 사람을 배에 태운 것 뿐이었고, 이는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어선이 한 역할과 다를 바 없었다. 해양경찰과 상급 부처인 해양수산부 등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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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거친 풍랑 속에서 오세아노스호에 탔던 국민 5백여 명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구했지만, 대한민국은 평온한 바다에서도 세월호에 탔던 국민 3백여 명을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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