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직원 휴대폰 무차별 해킹... 통화, 문자만 6만 건 털어
2018년 11월 08일 15시 00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구속됐다. 뉴스타파와 셜록이 양 씨의 무차별 폭행 동영상을 보도한 지 10일 만이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9일 오후 4시 경찰이 신청한 양 씨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양 씨가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8가지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폭행 ▲강요 ▲동물보호법 위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저작권법 위반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하지만 양 씨는 폭행과 강요, 동물학대 등 이미 명백한 영상이 나온 혐의 외에는 대부분 함구하거나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타파와 셜록이 양 씨 관련 보도를 처음 시작한 건 지난달 30일이다. 양 씨가 전직 직원 강모 씨를 자신이 운영하는 웹하드회사 위디스크로 불러,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폭행한 영상과 폭행피해자 인터뷰가 공개됐다. 다음날에는 양 씨가 직원 워크숍에서 일본도와 사냥용 활로 닭을 죽이도록 강요하는 영상이 추가 보도됐다. 뉴스타파는 이 보도를 시작으로 총 7번에 걸쳐 양 씨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양 씨가 차명을 동원해 여러 웹하드 관련 회사를 설립, 운영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 과정에서 성범죄 동영상 유통에 직접 관여한 사실도 뉴스타파와 셜록의 보도로 드러났다. 양 씨가 설립, 운영하고 있는 웹하드 업체 파일노리의 전직 대표는 지난 2일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양 씨가 성범죄 동영상 유통을 사실상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양 씨가 사실상 성범죄 동영상 유통구조의 정점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8일 뉴스타파와 셜록, 프레시안은 양 씨가 자신의 범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원들의 휴대전화에 해킹앱을 심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사찰해 왔다는 사실을 위디스크 핵심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런 연속보도를 통해, 무차별 폭행 등 ‘양진호 엽기 게이트’로 시작된 사건은 성범죄 동영상 유통 시장 전반에 대한 사회적 공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진호 회장이 구속수감됨에 따라 이제 관심사는 경찰 수사를 통해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과 양 회장 비호 세력 관련 의혹이 명확히 규명되느냐 하는 점이다.
양진호 씨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언제나 법이 있었다. 양 씨는 법을 좋아하고 활용할 줄 알았다. 사소한 일로 옆집과 분쟁이 생겼을 때도, 자기 회사 직원이 인터넷 공간에 댓글을 달았을 때도 그는 여지없이 법적 다툼에 나섰다. 심지어 자신이 두들겨 팬 전직 직원을 상대로도 소송을 준비했고, 얼굴에 가래침을 밷고 집단폭행한 뒤 200만 원을 쥐어준 대학교수를 상대로도 실제 소송을 벌여 위자료를 받아냈다. “너 때문에 가정이 파괴됐다”는 이유였다. 양 씨 회사의 전현직 직원들은 양 씨가 가진 돈 만큼이나 양 씨가 가지고 노는 법을 무서워했다.
양 씨는 10여 년 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웹하드사업 문제로 수차례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대부분 성범죄동영상 유통과 관련된 혐의였다. 하지만 그는 2012년 딱 한번 구속됐을 뿐, 매번 법망을 빠져 나갔다. 대신 양 씨 회사 직원들이 감옥으로 향했다. 일종의 대타, 감옥에 갔다 온 직원에게 양 씨는 일정한 보상을 해 줬다고 한다.
양 씨는 이렇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화려한 변호사와 로펌을 동원했다. 그 동안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온 로펌만 6개, 그 중에는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즐비한 유명 로펌도 끼어 있었다. 막 판사복을 벗고 나와 양 씨의 이혼소송 재판을 맡았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최유정도 양 씨에게는 좋은 그늘막이었다.
그가 얼마나 법을 잘 이용하고 활용해 왔는지는 대학교수 폭행 사건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2013년 12월 집단폭행이 있은 뒤, 양 씨가 대학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 기록에는 눈여겨볼만한 내용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폭행 당일 상황이 녹음된 녹취록, 양 씨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였다. 폭행의 당사자가 당일의 녹음기록을 버젓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이다. 양 씨는 이 기록을 불륜의 증거로 썼다.
1시간이 넘는 분량의 녹취록은 대학교수와 양 씨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기록돼 있다. 그리고 폭행이 벌어지기 직전 녹음기가 꺼졌다. 결과적으로 부인과의 불륜을 추궁하는 양 씨의 음성과 이를 해명하는 대학교수의 다급한 목소리만 담겼다. 이 녹음기록 후에 어떤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는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 녹취록은 대학교수가 패소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대학교수는 양 씨로부터 위자료 청구 소송을 당한 뒤 여러차례 준비서면을 냈다. 그리고 자신이 입은 폭행 피해를 상세히 기술했다. 집단폭행, 가래침, 맷값 200만 원 등 이제는 세상에 알려진 얘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지난 9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 당시 이 대학교수가 말했던 것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재판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판사가 눈을 감았는지, 보고도 못 본 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공무원의 범죄 고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대로라면, 해당 판사는 대학교수가 주장한 폭행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고지하고 수사토록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이 가는 이유다.
아직 구체적 면면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양 씨는 뉴스타파와 셜록의 보도 이후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려 수사와 재판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변호사가 합류했다거나, 검찰 고위직 출신이 변호인단에 들어 왔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긴급체포 이후 경찰 조사에서 양 씨는 “경영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라며 성범죄동영상 유통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피의자의 권리인 영장실질심사는 “사죄의 의미에서 포기한다”고 했다. 아마 화려하게 차려진 변호인단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이미 “양 씨의 지시로 성범죄 동영상을 대량으로 유통했다”는 자기 회사 직원의 증언이 공개된 상태지만 그는 버젓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 동안 차명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대포폰을 쓰는 등 업무지시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당국이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화려한 변호인단이 이번에도 그를 방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몰카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며 성범죄 동영상 피해자의 고통을 팔아 막대한 부를 쌓아온 양진호 회장을 향해 국민적 공분이 폭발하고 있지만, 향후 수사와 재판에 여전히 우려가 드는 이유다.
취재 : 한상진, 강현석, 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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