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업

암 부르는 인공유방...골든타임 날린 식약처

2019년 08월 27일 16시 19분

면역계통 암을 유발할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됐던 인공유방 보형물이 결국 전세계 시장에서 퇴출됐다.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엘러간사(社)는 지난 7월 25일 문제의 ‘바이오셀 내트럴’(Biocell Natrelle) 제품군을 회수(리콜)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자발적 회수’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실상은 프랑스, 캐나다 등 전세계 규제당국이 지난 반년 넘도록 판매 중지, 허가 취소 등 조치를 벌이며 엘러간을 압박한 결과다. 지난해 11월 뉴스타파와 미국 NBC, 프랑스 르몽드 등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협업취재팀이 인공유방 보형물의 부작용을 동시에 보도한 뒤, 각국 규제당국이 뒤늦게나마 예방책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렇듯 전세계 선진국에서 엘러간 퇴출 전쟁을 벌이던 사이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리콜 대상인 엘러간의 보형물은 표면을 거칠게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표면이 매끈한 ‘스무스’(Smooth) 제품군과 구분해 ‘텍스처드 임플란트’(Textured Implant·거친 표면 보형물)로 불린다. 유방암 환자 등을 위한 재건수술, 미용 목적의 유방확대 수술에 모두 사용된다. 이 거친 표면 보형물은 ‘유방보형물 관련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이하 BIA-ALCL·Breast Implant Associated-Anaplastic Large Cell Lymphoma)이라는 면역계 암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꾸준히 보고돼 왔다.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실에 보고한 통계자료를 보면 엘러간의 리콜 제품은 국내 허가를 받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11만4365개가 유통됐다. 같은 기간 국내에 유통된 거친 표면 유방보형물 전체 물량(22만2470개)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엘러간이 식약처에 제출한 회수계획서에 따르면 총 회수 대상은 총 11만 개가 넘는다. 한국엘러간은 미사용 제품의 경우 “직접 방문해 수거한다”고 밝혔지만, 사용되지 않은 재고는 3294개에 불과하다.

인공유방 보형물(형명 실리콘겔인공유방)은 의료기기법상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로 지정돼 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현재까지 엘러간의 문제 제품을 이식한 환자의 전체 규모도 정확히 집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가 공지한 엘러간 리콜 계획서에는 “제품을 이식한 환자의 전체 증례가 학회에 등록돼 있다”고 적혀 있다.

식약처 대변인실은 문제의 제품 이식환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유방암 환자 등 재건수술 증례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자료를 받아 파악할 수 있다”면서도 “성형목적 시술은 주로 의원급에서 이뤄지는데 시술 의원들이 폐업한 곳도 많아서 환자 파악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뒤늦게 이달 말부터 인공유방 부작용을 조사하기 위해 환자 등록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재건수술 환자부터 파악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ICIJ 국제협업팀이 BIA-ALCL 유발 가능성 등 인공유방 보형물 이식 부작용을 동시에 보도하자, 전세계적으로 선제적인 예방 조치가 펼쳐졌다. 같은 해 11월 말, 프랑스 국립의약품안전청(ANSM)은 엘러간 제품뿐 아니라 거친 표면 보형물 제품군 대신 스무스 제품을 사용하라고 의료인들에게 권고했다. 12월에는 엘러간의 거친 표면 보형물이 유럽 CE마크(유럽연합 통합규격 인증 마크) 재인증에 탈락했다. 이에 따라 EU권역뿐 아니라 CE마크를 준용하는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에서도 잇따라 유통·판매가 제한됐다. 12월 18일, 프랑스는 제품 재고를 모두 회수하라고 엘러간사에 요구했다.

올해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엘러간의 바이오셀 거친 표면 보형물이 BIA-ALCL을 유발할 위험성이 다른 업체 동종 제품의 위험성의 약 6배’라고 경고했다. 지난 4월 프랑스 ANSM과 캐나다 보건국(Health Canada)은 엘러간 제품 판매를 중지시켰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가 5월 10일 엘러간 제품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호주도 지난 6월 엘러간 제품을 포함한 유방 보형물 25종의 판매 중지를 사전 검토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일련의 예방 조치들은 모두 엘러간이 글로벌 리콜을 결정하기 전인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이뤄진 일이다. 그 사이 한국 식약처는 엘러간 제품 사용 제한이나, 판매 중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유럽, 캐나다 등에서 사용, 판매가 중지되고 있던 올 상반기에도 엘러간의 문제 제품은 계속 한국 여성들의 몸에 이식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6월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통계로 확인되는 유방재건수술 환자만 461명이다. 식약처가 해외 규제당국 수준만큼만 암 유발 제품 퇴출 조치를 했더라도 환자와 의사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식약처 대변인실은 "올해 4월 프랑스의 판매 금지 조치 이후 식약처도 의료기기위원회 등을 통해서 3차례 걸쳐서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며 "당시 국내 BIA-ALCL 발병 사례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전문가들도 당장 (판매·사용) 금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사용상 주의사항을 적은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고 해명했다.

엘러간이 글로벌 리콜을 결정한 뒤에야 한국도 BIA-ALCL의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식약처와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지난 16일 국내에서 최초로 BIA-ALCL 환자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엘러간 제품을 이식한 여성으로 확인됐다. 엘러간이 리콜 계획을 발표한 지 3주 만이다. 아시아에서는 태국과 싱가포르, 일본에 이어 4번째 발병 사례다.

그러나 식약처는 국내 첫 BIA-ALCL 환자 보고 발표 때에도 정보를 축소해 알렸다. 당시 식약처 보도자료는 과학적으로 연구된 암 발병률, 사망 가능성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식약처는 보도자료에서 “미국, EU 등 선진국에서도 BIA-ALCL 발생 위험이 낮다”며 “의심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을 방문할 것을 권장한다”고 알렸다. 그러나 해외 규제당국들과 학계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한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BIA-ALCL이 드물게 발생한다는 식약처의 ‘한 줄 설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연구 결과마다 발생률 추정이 천차만별인 탓에 발생 빈도가 드물다고 해서 위험성을 낮추어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다.

식약처는 올해 상반기 엘러간 제품 유통을 사전 차단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더욱이 정보를 감출수록 환자들이 부정확한 정보에 기대어 불안감을 키울 가능성이 커진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국내 인공유방 보형물 이식 환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BIA-ALCL의 위험성을 연구한 해외 당국·학계 자료를 종합해 정리했다.

Q. 전세계 환자 수는?

미국성형외과학회(ASPS·American Society of Plastic Surgeons)는 지난 199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세계적으로 735명의 BIA-ALCL 환자를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미 FDA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BIA-ALCL 환자 수는 573명이다. 이 중 481명이 BIA-ALCL 진단 당시 엘러간의 바이오셀 제품을 이식한 환자였다. FDA 연구 결과에 따르면 BIA-ALCL 환자 중 사망자는 33명 확인된다. 이 가운데 인공유방 보형물 제조사가 식별되는 13명 중 12명이 엘러간 제품을 지니고 있었다.

Q. 암 유발, 엘러간 제품만의 문제?

희귀암 유발 인공유방 '엘러간' 제품 뿐인데…과도한 불안감 조장 없어야
2019년 8월 19일, 이데일리

한국에서는 BIA-ALCL 위험성 때문에 리콜된 인공유방 보형물이 엘러간사 제품뿐이다. 다만 엘러간 제품이 아니라고 해서 BIA-ALCL 발병 위험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표면을 거칠게 가공한, 텍스처드 임플란트 제품군 전반에 발병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미국성형외과학회는 “BIA-ALCL은 거친 표면 유방보형물을 지닌 환자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엘러간 외 다른 업체가 만든 거친 표면 보형물을 이식한 BIA-ALCL 환자도 꾸준히 보고돼 왔다. FDA에 보고된 BIA-ALCL 환자 573명이 이식한 보형물은 엘러간(481건)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38명은 경쟁사인 존슨앤드존슨 계열 멘토(Mentor)사 제품을, 6명은 시엔트라(Sientra) 제품을 지니고 있었다. 이 외 다른 제조사 보형물을 이식했거나, 제조사가 확인되지 않는 제품을 몸에 지닌 환자도 48명에 이른다.

캐나다 보건국은 환자 증례, 제품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결과, 멘토의 실텍스(Siltex) 제품도 BIA-ALCL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프랑스는 엘러간 외 5개사 제품도 판매 중지를 결정했고, 호주 역시 지난 6월 멘토 등 다른 회사 제품에 대해서도 판매 중지를 검토했다.

Q. 발병률은?

통계적으로는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BIA-ALCL 발병 빈도를 확률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해외에서도 일치하는 연구 결과가 없다. 이에 대해 일본미용외과학회(JSAPS)는 최근 홈페이지 긴급 공지에서 “발생 빈도 차이는 지리적·유전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연구 국가 추정 발병률
미국 1/2207~1/86029
호주 1/1000~1/10000
캐나다 1/24000 (엘러간 1/3565)
영국 1/20000~1/60000
일본 1/3817~1/30000
네덜란드 1/6900

▲국가별 BIA-ALCL 발병률 연구 (출처: 미국성형외과학회, 호주 식품의약청, 캐나다 보건국, 영국미용성형외과의협회, 일본미용외과학회)

미국성형외과학회에 따르면 BIA-ALCL 확진 여성 대부분은 거친 표면 유방보형물을 이식한 지 8~9년 이후 이식 부위 형태의 변화를 느꼈다. FDA가 수집한 증례를 보면 진단 시점이 보형물 이식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환자부터, 길게는 34년이 지난 환자까지 다양하다. 지난 8월 13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BIA-ALCL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7~8년 전 엘러간의 거친 표면 보형물을 이식했다. 이 환자는 최근 가슴이 심하게 부어올라 병원을 방문했다가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일본에서는 17년 전 엘러간 제품으로 유방재건수술을 받은 여성이 일본 최초로 BIA-ALCL 진단을 받았다.

Q. 얼마나 위험한가?

BIA-ALCL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릅니다(We do not know)…
영국 미용성형외과의협회(BAAPS) BIA-ALCL 안전성 정보

BIA-ALCL은 보형물을 둘러싼 피막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이다. 현재까지 해외 학계에서도 정확한 발병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다. 보형물 주변부에 발생하는 박테리아 감염이 BIA-ALCL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FDA에 따르면 BIA-ALCL은 보형물 주변 조직과 체액에서 발견되지만(1기) 경우에 따라 림프선으로 전이하고 온몸에 퍼질 수 있다(2~4기). 국내외 학계 모두 ‘조기 진단과 치료’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FDA는 “조기에 진단받고 즉각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BIA-ALCL의 5년 생존율은 91%로 알려져 있다.

Q. 환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몸에 지닌 보형물이 엘러간의 리콜 대상 제품인지 확인한다. 보형물 이식 당시 병원에서 받은 제품보증카드를 보관 중이라면 가장 쉽다. 카드에서 고유번호(시리얼넘버) 8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엘러간 한국지사의 리콜 안내 창구(02-3019-4400)에 전화해 제품 고유번호를 불러주면 리콜 여부를 알 수 있다. 수술을 받은 병원이 현재도 영업 중이라면 진료기록을 확인하는 게 좋다.

BIA-ALCL도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일찍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성형외과학회는 인공유방 이식 환자에게 정기적인 진찰과 2년에 1번 자기공명영상(MRI) 진단과 초음파 검사를 하도록 권장한다. 캐나다 보건국도 정기 검진을 권한다.

보형물 주변 덩어리, 통증, 피부발진 등 BIA-ALCL 의심 증상을 느끼면 반드시 전문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체액이 고이는 ‘장액종’이다. 보형물 주변 조직에서 발생해 가슴이 부어오른다. 일본 학계 연구에 따르면 ‘장액종’이 초기 증상의 80%로 나타났다. FDA는 BIA-ALCL 환자 53%가 초기에 장액종 증상을 겪은 것으로 파악한다. 해외 당국과 학계는 현재까지 BIA-ALCL을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보형물을 미리 제거하지는 말라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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