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 최후의 변론

2015년 05월 13일 15시 45분

국가 최고 정보 기관인 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할 증거를 위조하고 한 탈북자의 삶을 유린한 사실이 드러나며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지난 6일 항소심의 결심 공판을 끝으로 이 사건에 대한 법정 다툼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후 대법원 상고심은 서면만 검토하는 법률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 이상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심리는 없다.

결심 공판에서 국정원 직원들과 그 협조자들은 ‘최후의 변론’을 내놓았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와 그의 변호인들 역시 이날 법정에 출석해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뉴스타파>는 공판 막바지에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의 행적과 이들의 마지막 변론을 싣는다. 최후의 변론은 피고인 개인의 주장이다. 항소심 선고는 오는 5월 20일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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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간첩증거조작 사건은 누가, 어떤 의도로 저질렀던 걸까. 검찰의 손가락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 김보현을 가리킨다. 유우성 사건 항소심의 담당 과장이었던 그의 존재감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곳곳에서 드러난다. 문제의 위조 중국 공문서를 기획, 입수, 전달한 사람이 바로 김보현 과장이라는 것이 검찰의 공소 내용이다.

1년의 공판 동안 김보현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실제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그는 인정받는 블랙요원이었다. ‘흑금성 사건’ 때는 북한 공작원 리호남을 추적해 직접 사진까지 찍어온 이력이 있다. 그가 속해있는 국정원 수사처 직원들은 그가 위조문서 가운데 하나인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회신 공문’을 입수해 왔을 때,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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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법정 진술은 당당했던 태도와 다르게 일관되지 못했다. 그는 1심에서 동료인 권세영 과장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위조 증거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회신 공문’과 ‘12월 17일자 주선양총영사관 영사 이인철 명의의 확인서’ 입수를 권세영 과장이 주도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에 와서 김보현은 이같은 주장을 모두 철회한다. 이 문건들의 입수와 관련된 ‘전문’(국정원 직원 간의 통신 수단)의 결재자가 권세영 과장이 아닌 김보현 자신임을 국정원이 재판부에 확인해주고 난 후였다.

김보현은 자신이 입수한 중국 공문서들이 위조문서인지 몰랐다고 주장한다. 두 조선족 협조자 김원하 씨와 찐밍시 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 하지만 그의 주장은 견고하지 못하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선처를 바라고 있는 김원하는 문건 입수를 협의할 때부터 이미 김보현과 위조를 계획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게다가 또다른 협조자 찐밍시는 김보현이 위조 문서를 만들어 달라며 제시한 김보현의 자필 초안 문서까지 증거로 제출해 놓은 상황이다. 결국 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때문에 김보현은 이번 항소심에서도 증거조작 사건의 ‘기획자’라는 책임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김보현 최후의 변론을 정리한 내용.

[김보현] “제 옆의 세 직원들은 전혀 죄가 없다.”

이번 재판을 공정하게 이끌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사건은 2013년 9월 제가 상부로부터 중국 국가기관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시작됐습니다. 당시 저는 그동안 10여 년 이상을 운영해온 중국 휴민트를 활용해 기록을 입수하게 됐고, 입수 당시 이 자료가 검찰에 제출되고 필요에 따라 법원에 제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조에 가담하거나 위조하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정한 기록을 입수하는 것이 관건이었었습니다.

김원하를 통해 입수 추진하고자 했던 ‘일사적 답복’(싼허변방검사참 명의의 확인서) 역시 김원하가 제의해 시작했지만 협의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기록을 입수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과정은 김원하와 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건(일사적 답복) 역시 위조하거나 위조를 지시하거나 전혀 관련되지 않은 문건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한 확인서(회신 공문)와 관련해서는 2013년 11월 찐밍시에게 부탁하며 14, 15일간 굉장한 노력 끝에 입수한 자료였으나 실제 발송해준다고 해놓고 발송을 못 해준다고 하는 결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치한 결과였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 옆에 있는 세 직원은 제가 자료를 중국 협조자 통해 입수하는데 전혀 관련되지 않은 직원입니다. 제가 입수한 자료를 진정한 자료라고 믿고 최선을 다한 직원들로 전혀 죄가 없는 직원들입니다. 저는 24년 동안 공직생활을 해왔습니다. 애국심이 제 삶의 원동력이라 믿고 생활해왔습니다. 진실이 꼭 밝혀진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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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기도로 뇌 손상을 입었던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 권세영의 말은 느리고, 또 짧았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던 지난해 3월, 김보현에 앞서 유우성 사건을 담당했던 권세영 과장 역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검사의 이간질과 반말에 화가 났다’고 언론과 인터뷰 한 뒤 자신의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권세영은 ‘그 사람(김보현)이 구했으니 진짜일 것이라 믿었다’며 김보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권세영이 정말 한 점의 의심도 없었으리라 생각하긴 힘들다. 애당초 유우성 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을 처음 국정원에 가져온 것은 권세영이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컴퓨터 상의 화면을 그대로 인쇄한 형식의 출입경기록으로 위조본(입경-출경-입경)과 상반된 내용(입경-입경-입경)을 담은 진짜 기록이었다. 직접 진짜 자료를 입수한 적있는 권세영은 처음부터 김보현이 가져온 출입경기록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2013년 12월 <뉴스타파>의 보도를 통해 유우성 사건에 제출된 출입경기록에 대한 위조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주선양총영사관에 파견돼 있던 권세영은 사태 수습을 위해 급히 귀국했다. 그에게는 <뉴스타파>가 촬영해온 중국 측 출입경기록 담당자들의 발언(‘이 출입경기록은 위조된 것이며, 이런 기록을 발행해준 적도, 발행할 권한도 없다’)을 반박할 자료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권세영은 중국통답게 중국 연변주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담당자로부터 ‘ <뉴스타파>가 불법적으로 허락 받지 않고 촬영을 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아왔다. 이 확인서를 쓴 중국 연변주 공안국의 직원은 나중에 항의하는 유우성 씨 가족에게 ‘윗선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확인서를 발급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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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주 공안국 일선 직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확인서를 쓰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를 협조자로 확보하고 있던 권세영이 왜 정작 김보현이 입수해온 출입경기록의 위조 여부는 파악하려 하지 않았을까. 만약 권세영 과장, 이재윤 처장 등의 주장대로 국정원이 해당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뉴스타파> 보도가 나왔을 때는 가장 먼저 ‘김보현이 입수해온 출입경기록이 위조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 보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연변주 공안국은 출입경기록의 위조 여부를 가장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위조여부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엉뚱하게 ‘취재진이 몰래 촬영해갔다'는 답변을 얻어온 것이다. 결국 권세영이나 다른 국정원 직원들은 처음부터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던 것은 아닐까.

다음은 권세영 최후의 변론을 정리한 내용.

[권세영] “타국의 법정이라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외국에서 체포되거나 고문을 걱정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조국의 법정 서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현실 속에 있습니다. 이 법정이 타국의 법정이었다면 육체적으로 힘들겠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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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과 권세영의 직속 상관인 이재윤 처장은 당시 상황에서 부하 김보현을 철저히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해 온 것이 김보현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결정에서도 철저히 그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 사건을 ‘국정원 수사처’의 사건이 아닌 ‘담당 검사와 김보현’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재윤은 국정원이 유우성의 출입경기록 입수를 위해 무리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출입경기록 입수를 종용한 사람은 바로 유우성 사건 항소심의 공판검사였던 이문성 검사였다. 이재윤 측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문성 검사는 국정원 수사지도관을 지낸 ‘높으신 분’이다. 이문성 검사와 김보현 두 사람이 협의해 결정한 일이라면 자신은 그저 결재해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이재윤은 말한다.

하지만 일련의 증거조작이 책임자인 이재윤의 눈을 피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믿기 힘든 부분이 많다. 적어도 위조 의혹이 제기된 이후의 상황에서 이재윤은 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자였다. 공직자로서 마땅히 국민들 앞에 진실을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는 반대로 진실을 은폐하는데 안보 자원인 국정원의 역량을 사용했다.

다음은 이재윤의 최후의 변론을 정리한 내용.

[이재윤] “국정원장의 지시라도 막았을 것”

수없이 돌아봐도 (이번 사건의 원인이) 저의 무능과 지휘력 부족 때문임을 통감합니다. 이점에는 재판장이 엄히 꾸짖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부하 직원들이 공판업무를 지원하다 발생한 일로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누군가를 모해하려 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저는 28년 간 국가 안보라는 소중한 가치 하나를 보고 걸어왔습니다. 해외에서 위험하고 고된 일하면서도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일선에서 누군가가 부딪쳐야 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습니다. 불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공소 사실과 1심 판결은 (재판부가) 사안의 실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신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라 확신합니다. 항소심에 와서 재판장의 훌륭한 진행과 변호인 노력 덕분에 가려져있던 부분이 많이 밝혀졌다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증거 위조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증거 위조가 국정원장의 지시였더라도 막았을 것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받고 싶습니다. 법리적인 부분에 대해선 잘 몰랐었습니다. 변호인의 주장을 잘 살펴주십시오.

부족하지만 업무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능력의 부족이지 범죄 행위를 한다는 것은 한 치도 없습니다. 혜안으로 정보 기관의 존재 이유나 활동의 특성, 이점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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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간첩 조작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곤 했던 영사확인서. 그것은 수사기관이 증명해야 할 사안을 증명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간첩 조작의 ‘만능키’였다. 어두운 과거 시절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이 영사확인서는 외교관의 직함을 빌려 쓴 국정원 요원 이인철의 이름과 함께 다시 우리 사회의 전면 등장했다.

이인철 역시 유우성의 출입경기록에 대한 영사확인서를 발급하라는 국정원의 지시가 왔을 때 이를 거절했다. 정상적인 영사 확인은 중국 당국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한 내용에 한 해 가능한 것이었지만 국정원의 지시는 그와 성격을 달리하는 ‘조작’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부의 거듭된 지시로 이인철은 할 수 없이 영사확인서를 발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주선양총영사관의 영사로 어느 국정원 직원이 파견돼 있었더라도 같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다음은 이인철 최후의 변론을 정리한 내용.

[이인철] "안보의 전장에서 전사할 기회 달라"

저는 제가 작성한 확인서에 의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회의 혼란을 불러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이 모든 현실이 어리석음의 소치입니다. 비난의 화살도 달게 받겠습니다. 지난 1년 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왔는 지 알았습니다. 제가 살아오며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속죄하고자 합니다. 개똥철학으로 자기 의에 빠져 교만한 점은 없는지, 상처 받은 점은 없는지 참회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죽고 나서 하나님께 제가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심판받을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을 저에 대한 중간 심판으로 알고 순종하겠습니다.

국가에 대한 공직을 이렇게 마무리한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 국가 안보의 전장에서 전사할 기회를 주십시오. ‘진충보국’ 정신으로 저의 청춘을 바친 곳, 국가정보원을 저는 너무나도 사랑합니다.국가 안보 최후의 보루 국정원을 국민 여러분께서도 사랑하고 아껴주십시오. 불멸의 민족혼을 흠모하며 달려온 23년. 숨가쁘게 소명으로 여기고 여기까지 와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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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의 조선족 협력자 김원하 씨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고 싶었다.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가 국정원 직원 김보현의 은밀한 제안에 귀 기울였던 것도 국정원을 도우면 혹시 한국 국적을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원하는 위조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 조사를 받게 됐을 때 국적은커녕 범죄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의 한 모텔 벽에 ‘국정원 국조원’이라는 글을 피로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던 것도 그 배신감 때문이었다.

김원하는 피고인들 가운데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김보현이 처음부터 위조 문서를 구하려 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보현은 이같은 김원하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정말 김보현이,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들이 진정 떳떳했다면 왜 검찰 조사를 앞둔 김원하를 놀이공원과 고급 한식당 등에 데려가며 검찰 조사에 대비한 말 맞추기를 시도했던 것일까.

위조된 출입경기록을 직접 김보현에게 건넨 조선족 협조자 찐밍시 씨가 한국에서 체포된 것은 지난해 7월말이다. 가장 늦게 재판에 넘겨진 탓에 항소심 판결을 앞둔 지금까지도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적다.

찐밍시는 자신이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보현의 요청으로 단둥시 공안국에서 부국장을 지낸 왕 아무개에게 유우성의 출입경기록을 요청했고, 그에게 받은 문서를 다시 김보현에게 전달했을 뿐 그것이 위조된 문서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

문제는 이런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찐밍시에게 위조 문서를 전했다는 왕 아무개의 소재는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가 정말로 공안국 부국장을 지냈던 사람인지, 심지어는 실존 인물인지 여부조차 불명확하다.

다음은 김원하와 찐밍시 최후의 변론을 정리한 내용.

[김원하] "위조된 9건 문서 중 8개 김보현이 관여"

재판받으면서 잘못을 철저히 느꼈습니다. 많이 반성도 했습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어 깊이 사죄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저의 범죄가 정당하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범행 동기가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고, 유우성씨에게 원한이 있어 그를 해치려 한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김보현이 약속한) 대한민국 국적을 믿었습니다. 국정원이 국가기관이고 김보현 과장이 국가 정보기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김보현은 중국에서 접촉해 알면서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열심히 배우던 사람으로, 대한민국 친구들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김보현 개인적으로도 거짓을 할 사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보현을 철저히 믿었고 국정원이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어리석은 생각으로, 증거 위조라는 범행에 가담하게 됐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이번 재판에서 쟁점되는 것은 내가 김보현을 속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김보현의) 변호사들이 방어권을 위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시는 데 여기에 대해 일일이 반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증거조작이 모두 9건입니다. 9건의 증거조작 가운데 김보현 관여하지 않은 것이 임ㅇㅇ 자술서에 대한 증거 조작 하나 뿐입니다. 그 외의 8건은 모두 김보현이 관여한 것입니다. 그러고 그 중 나와 같이한 것이 7건입니다.

중국에서 위조 확인 공문이 왔을 때도 김보현은 위조가 아니라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아마 인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김보현과 국정원을 속였다면 제가 2014년 2월 23일 왔을 때 그때 나를 잡아 족쳐야지 왜 그렇지 않고 (국정원) 직원들과 같이 남한산성 관광 시켜주고, 에버랜드 데려가고, 고급 한정식 데려가 맛있는 것 사줬겠습니까. 왜겠습니까. 검찰 조사받을 때 걱정할 필요없다 하더군요.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증인으로 나가 얘기해줘야 한다고도 하더군요. 나는 그것을 믿고 도와주려고 (검찰 조사에서) 위증도 했는데, 3월 1일 검찰 조사받고 돌아가니까 이튿날 (김보현이) 하는 얘기가 검찰에 한 진술 한 가지를 고쳐야겠다 하더라고요. 유우성 측이 제출한 원본은 보지 못했고 사본만 봤다고 하라 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걸 다시 해야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화를 냈습니다. 사인도 하고 지장도 다 찍고 왔는데 진술을 번복하라는 얘기 듣고 유감스러웠습니다. 다음날 국정원에 말하지 않고 검찰에 찾아가 검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제 (국정원이)내가 얘기할 때 상황설명서 보지 못한 것으로 진술하라고 했는데 고치라고 합니다’ 하니까 검사가 펄쩍 뛰었습니다. 그때서야 잘못됐다는 것 알고 저는 국정원을 벗어났습니다.

김보현 과장과 나는 재판을 받았다고 반목할 것이 아니라 옛날 관계로 잘 지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로 밝혀야 합니다. 김보현은 끝까지 그 위조 사실을 숨기려고 저하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같이 힘썼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처음에 위조가 시작된 것은 출입경기록입니다. 검찰의 지시였다고 김보현 과장이 얘기했었습니다. 권세영이 입수한 관인없는 출입경기록을 제출하니까 이것은 증명력이 없으니 관인을 찍어오라고 했다 했습니다.

(중략) 저한테 위조를 의뢰할 당시에는 김보현 과장은 말할 것도 없이 국정원도, 공판 검사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때 이미 김보현 과장은 위조를 어떻게 말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냥 막아보려고 위조를 거듭했습니다.

김보현과 2013년 12월 7일 얘기할 때 제가 얘기했던 것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위조하면 중국과 한국 사이에도 안 좋고 이게 되겠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김보현이 걱정말라며 민변에서 허룽시 공안국에 가서 떠들어댔는 데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심양영사관, 북경영사관 동원해 출입경기록 얻으려고 했는데 도와주지 않았다며 중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증거가 아니라 이같은 점들에 비추어 (조선족 협조자에게 속았다는 김보현의 말이 맞는지) 상식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찐밍시] "중국에 돌아가서도 조사받아야…”

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으면서 여러가지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당시 김보현 씨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한 것이 너무나 후회되고, 김보현 씨가 부탁하니까 좀 도와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도와주는 각도에서 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후회가 됩니다. 법정에 설 때마다 속으로 너무 저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중국에) 돌아가서도 이제 조사 받아야 할 텐데 그 생각만 해도 서러워 눈물이 납니다. 선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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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의 결심 공판이 끝날 때까지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와 그의 변호인들도 재판정에 머물렀다. 얼마 전 유우성 씨와 결혼한 김자연 변호사도 함께였다. 그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사실에 어긋난 주장을 할 때마다 판사의 허락을 구해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았다.

피해자 진술에서 유우성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글을 읽었다. 특히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호소할 때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유우성 씨는 바른 판결을 통해 더 이상 국가기관에 의한 간첩조작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유우성 씨의 결심 공판 법정 진술을 정리한 내용.

[유우성] “북한에서 태어나 죄송합니다”

저는 2004년 대한민국 입국했습니다. 2006년 북한에 있는 어머니가 심장이 안좋아 돌아가셨습니다. 저하고 전화통화하던 중 돌아가셔서 그때 눈이 멀어 (북한에 들어가는) 하지 말아야 할 일 했습니다. 이 일로 2009년부터 (국정원의) 내사가 진행됐었습니다. 그러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공소 시효가 지난 것으로 이 일이 끝난 줄로 알았습니다. 2006년부터 북한의 지령받고 뭔가 정보를 넘겼다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있었던 내사에서 잡히지 않았었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국정원이) 저를 조사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내사가 끝난 줄 알았을 때) 대한민국에 고마웠습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 복지정책과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업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록을 만진 적도 없습니다. 서울시는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2013년 1월에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체포되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처음 열흘간은 변호사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1만 명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 1만 명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습니다. 제게는 가톨릭 단체에서 운영하는 모임에서 남북한 단체 회장을 하며 가지고 있던 회원들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정보 밖에 없었습니다.

(나와 동생 유가려가 조사받으며) 저희 가족이 엉망이 되고 나서 저희 아버지가 한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권세영 과장께서 저희 아버지와 통화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 다녀왔나는 둥 이런저런 내용을 물어보며 (권세영이) 자신을 나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버지는 정말 그런 줄로 믿고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 죄송합니다. 조상님들이 북한에 넘어가 살아서 그렇게 됐고 북한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화교로 대우 받고 살았다고 하는데 남들 배고플 때 같이 배고프고 남들 일할 때 똑같이 일하고 살았습니다. 남한에서 의학 공부 다시 해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증거조작의 피해자가 될지 몰랐습니다.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국 기록이 2013년 10월 법원에 제출됐을 때 이미 그것이 위조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당시 6명의 친척하고 같이 갔었습니다. 그 내용을 수사관에게도 얘기했었습니다. 왜냐면 똑같은 오류(입경-입경-입경이 연이어 출력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것만 오류가 있었던 것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얘기했던 말은 수사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항소심에서 위조 허룽시 공안국 출입국 기록이 증거로 제출됐습니다. 제출 이후 저는 그것이 조작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현지 가족들과 <한겨레>, <뉴스타파> 기자들을 찾아가 이점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들을 통해 위조문서의 관인이 실제의 것과 다르고 발급처로 기재된 곳에서는 출입국기록 발급 안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증거들 역시 조작됐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저는 간첩조작 피해를 입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20년, 30년 형을 살다가 사회로 나와서야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증거조작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제가 5, 6년 형을 살다 나왔다면 어땠겠습니까. 저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까. 조작된 사람들의 삶은 그냥 피해받아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수사당국(검찰)이 법원에 증거를 제출할 때 그냥 (국정원을) 믿고 줬다고 합니다. 저는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저와 동생, 아버지, 가족들이 3년 가깝게 계속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항소심 무죄받고도 검찰로부터 다시 기소됐습니다. 2009년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사안을 가지고 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받는 것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대법 판결이 끝날 날만을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보고싶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민변의 법률 조력과 언론 취재로 제가 지금같이 엄청난 사건을 밝혀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이 범죄를 인정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간첩 조작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적 판결 내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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