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위조’ 협조자를 증인신청...그런데 검사는 몰랐다?
2014년 08월 29일 19시 54분
국정원이 중국의 협조자에게 위조문서의 초안까지 작성해주며 증거 조작을 주도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뉴스타파>는 중국 단둥 현지 취재를 통해 국정원 김보현 과장의 조선족 협조자 김명석 씨(60)의 아내가 검찰에 보낸 3건의 증거를 단독 입수했다. 이 가운데는 유우성 씨에게 간첩혐의를 씌우기 위해 위조된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회신공문 초안으로 추정되는 문건도 포함됐다.
▲ 뉴스타파가 입수한 김명석 부인의 증거 문건들
위조로 확인된 허룽시 공안국 회신공문에서 상, 하단의 도장만 빠진 형태인 이 문건에는 허룽시 공안국의 관인과 중국정부의 휘장이 들어갈 자리라는 손글씨 표시가 돼 있다. 문서 하단에 기재된 날짜도 위조문서에 ‘2013년 11월 27일’로 표기돼 있는데 반해 이번에 입수된 문건에는 ‘2013년 12월 5일’로 나와 있다.
검찰은 지난 29일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11차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부장판사 김우수)에서 이 문건의 표시를 김보현 과장이 직접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구체적인 위조 지시가 있었는지 협조자 김씨를 상대로 집중 추궁했지만, 김 과장 변호인 측은 이 문서가 “(김 과장이) 전혀 알지 못하는 문서”라며 위조 관여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이미 기초적인 필적 감정을 마쳤다”며 “해당 문건이 국정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로써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김 과장이 위조 문서의 초안을 협조자 김 씨에게 넘겨주며 관인을 찍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협조자가 입수한 문건을 검찰에 제출했을 뿐 위조 사실은 알지 못했다’는 그의 법정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지게 된다.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의 변호인단은 “국정원 직원의 적극적인 위조 개입 사실이 이미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을 손으로 가리려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또다른 위조 문건이 준비됐었다는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허룽시 공안국 출입경 관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뉴스타파>의 보도가 나간 직후, 이 내용을 반박하기 위한 또 다른 위조 문서가 준비됐다는 정황도 이번 문서 입수 과정에서 드러났다. 김 과장의 자필로 쓰여진 ‘확인서(화룡시 공안국)’ 문건에는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 관리대대는 출입경 관리과 명칭과 업무도장을 함께 사용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협조자 김 씨가 김 과장의 강요를 받아 작성했다고 밝힌 바 있는 지난해 12월 21일자 자필 진술서의 초안도 확인됐다. 이 문건에는 특정인의 이름과 직책, 구체적인 연도 등이 공란으로 처리돼 있다. 공란에 들어갈 단둥시 공안국 부국장 왕 모 씨와 허룽시 공안국 간부의 이름이 별지로 이 문건에 붙어있었다. 이들 이름이 김 과장을 통해 협조자 김 씨에게 전달된 것이라면 오래 전부터 왕 씨와 알고 지냈다는 김 씨의 진술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 뉴스타파는 위조증거 입수과정을 밝힐 핵심증인 왕 씨를 찾기 위해 중국 단둥시를 찾았다
단둥시 공안국 간부 왕 씨에 대한 김 과장과 협조자 김 씨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왕 씨가 위조 문서 입수 과정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 관련기사 : 대북 ‘휴민트’는 엉터리…증거조작에 5천만원 지급도 확인
뉴스타파는 왕 씨를 찾기 위해 그가 일했던 단둥시 공안국과 현업으로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산물업계 상인 등을 탐문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왕 씨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 국정원이 확보하고 있던 왕 씨의 연락처는 단둥 도심의 한 복사가게 번호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이 파악하고 있던 왕 씨의 연락처도 그의 소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10월 말 허룽시 공안국 회신 공문을 입수하기 위해 왕 씨의 소재를 수소문했고 김 과장의 요청에 협조자 김 씨가 건네준 이 번호를 국정원에 건넸다.
취재진이 해당 번호로 직접 전화해 확인한 결과, 이 번호는 단둥시 도심에 위치한 한 복사가게의 번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무역상들이 주로 사무 대행을 위해 찾는 곳으로 직원이 도착한 팩스를 벽에 걸어두면 필요한 사람이 찾아가며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취재진은 이곳 직원에게 왕 씨를 아는지 물었지만 많은 사람이 이용해 개인의 신원을 일일이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상 왕 씨 스스로가 나서 진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위조 문건 입수 과정은 미궁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상황. 증거조작 사건의 책임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공작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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