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모두 유죄...그러나 국정원 직원들 처벌은 관대

2014년 10월 29일 02시 29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간첩 증거 조작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과 협조자 6명 전원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뉴스타파가 유우성 씨 항소심 재판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한지 10개월 만이다. 많게는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사법질서를 뒤흔든 초유의 증거 조작에 대한 형량치고는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미 구속된 김보현 과장 외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실형을 받고도 법정구속은 면했다. 반면 조선족 협조자 2명은 모두 구속된 상태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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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과 협조자 모두 징역형은 선고됐지만...

증거 조작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보현 대공수사팀 과장은 징역 2년 6월, 유 씨 사건의 국정원 수사 책임자였던 이재윤 대공수사팀 처장은 징역 1년 6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권세영 대공수사팀 과장과 이인철 전 주선양총영사관 영사는 각각 징역 1년 6월과 1년, 그리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보현 과장의 중국인 협조자로 김 과장의 지시를 받아 문서를 위조한 김원하 씨와 김명석 씨에게는 징역 1년 2월 형과 징역 8월 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국정원 직원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했다”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사법 기능을 방해하고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켰다”고 밝혔다. 또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과 회신 공문, 그리고 싼허변방검사참의 답변서 3개의 문건이 위조되었고 이 문건들이 유 씨를 모해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었다는 혐의 모두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과 협조자에 대한 검찰의 공소 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가장 무거운 형을 받은 김보현 과장에 대해 재판부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 위조 등 협조자들과 공모한 혐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허룽시 공안국 회신 공문과 싼허변방검사참 답변서도 위조를 주도한 것으로 봤다.

중국 단동시
▲ 중국 단동시

‘중국 공안국 협조자 실체없다' 등 보도, 판결문에서 재확인

뉴스타파가 중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보도했던 내용들도 판결문에서 구체적으로 재확인됐다. 재판부는 단둥시 공안국 내부 협조자라는 왕 모 씨란 인물에 대한 김 과장과 협조자의 진술을 봤을 때 출입경기록 입수와 관련된 핵심 내용이 합리성이 없다며 이미 퇴직했거나 문서 발급과 관련없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또 협조자 김명석 씨가 집에 위조로 드러난 회신 공문 초안을 보관하고 있었고, 김 과장이 모두 2천2백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위조를 공모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와함께 지난해 12월 18일 협조자 김 씨와 공판 담당 검사가 만난 사실도 판결문에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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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책임자, 실형에도 법정구속 면해...사법질서 유린해도 ‘국가 위해 봉사 참작’?

그러나 헌정 사상 유례없이 사법 질서를 유린한 국정원의 범죄에 대해 재판부가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양형에 있어 “국가 안보를 위해 20년 이상 헌신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간첩 조작 사태에서 가장 윗선 책임자인 이재윤 처장에 대해 죄가 무겁다며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고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법정 구속을 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이 처장은 상급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형을 면하게 됐다.반면 유일하게 홀로 혐의를 인정한 조선족 협조자 김원하 씨에 대해선 핵심 위조 문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김명석 씨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형을 내렸다. 김 씨 변호인은 항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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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우성 씨 변호인단 “죄질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워...민사소송 방침"

간첩 조작 피해자인 유우성 씨 변호인단은 사법질서를 뒤흔든 죄질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형이 나왔다며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에서 사과 한번 받지 못한 유우성 씨는 조만간 관련 직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비롯한 민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같은 선고 결과는 검찰 수사와 기소 때부터 예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변은 보도자료를 통해 간첩 조작으로 국가보안법상 무고 날조죄로 기소됐어야 할 사안에 상대적으로 형량이 적은 모해증거위조조죄 등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1차 피해자가 유우성 씨라면 2차 피해자는 법원인데도 공소장 변경이나 양형에 대한 고려없이 소극적으로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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