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37회] 최용익 칼럼_최용익 칼럼 - TV토론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

2012년 12월 08일 07시 51분

난 잃을 게 없다, 난 읽을 게 없다, 난 낄 데가 없다. 시종일관 박근혜 후보가 결코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을 주제로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은 이정희 후보와 그에 대한 외면, 또는 해명에 바빴던 박근혜 후보. 그리고 두 여자 후보 가운데서 거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촌철살인의 관전평입니다.

토론 중간과 그 이후 한동안 인터넷에서는 박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의 창씨 개명한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와 박정희 암살 후 청와대 금고에서 나왔다는 ‘전두환 6억’이라는 단어들이 검색순위 상위에 랭크 됐습니다. 이정희 후보의 공격적인 질문을 통해 제기 된 이 내용들은 인터넷이나 진보적인 언론을 접한 일부 시민들만 알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언론이 대선에 나온 후보들의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터는 검증작업이 일반화 돼 있는 미국 등 정치 선진국 같았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방송과 신문이 정치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은 물론 공적인 비판과 타협을 이루는 공론장 역할을 포기한데 따른 업보이자 사필귀정입니다.

KBS와 MBC, YTN 등은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사장 투하 등 방송 장악으로, 그리고 조중동 등 족벌 신문들은 한국사회의 지배집단인 기득권 세력과 한 배를 탔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건이 현실입니다.

TV 토론이 끝나자 이들 언론은 일제히 이정희 후보를 향한 야유와 매도의 합창을 불렀습니다. 제목만 봐도 저의가 드러납니다. 판 깨러 나온 지지율 0.2% 후보에, 판 제대로 깔아준 TV 토론, 0.1%의 공세, 아쉬운 유력후보 검증 등등. 마치 이정희 후보가 나와서 공세적으로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지지율이 높은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건전한 정책토론이 훼손된 양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 간의 건전한 정책토론이 없었던 것은 토론에 약한 박 후보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계속해서 거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마음만 먹으면 즉시 할 수 있는 것이 양자토론입니다. 새누리당은 또 이 후보의 발언내용에 대한 해명은 뒷전이고 발언 태도를 문제 삼아 원색적인 비방이니, 저질스런 인신공격이니 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당적을 달리하는 18대 대통령 후보 간에 벌어진 TV 토론 진행방식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하기로는 후보 간 상호검증과 정책토론을 위한 반론과 재반론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이것이 원천적으로 봉쇄 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같은 법정 토론 기회마저 없고 박근혜 후보가 지금까지처럼 토론을 거부했다면 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TV 토론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투표장으로 가야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방송 3사가 추진했던 유력 대선후보 세 명의 순차토론이 새누리당의 거부로 무산됐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박 후보가 위기에 몰리자 정책토론 실종 운운하며 난리를 치는 못난 언론들의 모습은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개혁을 위한 청사진 제시 보다는 오직 부동층 후보의 흡수에만 골몰해 온 문재인 후보의 좌고우면하는 모습 보다는, 잃을 것이 없는 처지에서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이정희 후보의 모습이 더 참신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가 시작된지도 한참 된 아직까지 후보 간 토론을 기피하는 집권여당 후보와 독재자를 둘씩이나 낳았으면서도 ‘묻지마 투표’를 계속하는 특정지역, 그리고 대다수 언론의 집권여당 후보에 대한 엄호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객관적으로 후보들을 비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가 바로 TV 토론이기 때문입니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