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⑩ 정부는 피해자 '2차 가해' 왜 방치했나
2024년 09월 27일 10시 00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44일째를 맞은 김영오 씨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사찰 행위가 사실상 확인되거나 유력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와 비슷한 기간 온라인과 오프라인, 보수언론 등을 통해 김영오 씨 개인에 대한 마타도어성 폭로전도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김영오 씨의 단식과 시민들의 동조단식 등으로 고조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국면을 국정원의 기획 아래 반전시키려는 기획이 진행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김영오 씨(왼쪽)와 이보라 주치의(오른쪽)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의 단식 38일 째였던 지난 20일. 김 씨는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길을 가로막은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상황을 맞는다.
그 영향으로 다음 날인 21일엔 김 씨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악화됐고 결국 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날 아침, 김영오 씨의 주치의인 서울 동부병원 이보라 내과과장은 온라인매체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김 씨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결코 농성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면서, 김 씨의 단식을 멈출 방법은 오직 유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뿐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동부병원 김경식 원장의 방으로 한 국정원 직원이 찾아왔다. 이 직원은 지역 기관장 모임을 통해 김 원장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직접 병원 원장실로 찾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담소를 나눈 지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어찌된 일인지 이 직원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뭔가 할 말을 다 못한 듯한 표정을 계속 지었다.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시간인데도 안 가고 계속 있었다. 이 사람도 뭔가 궁금한 게 있어서 왔을 텐데 차마 얘기를 못 꺼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좀 넘겨 짚어서 ‘세월호’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병원 소속 이보라 선생이 단식 유가족을 곁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뭘 하느라 한 번 가보지도 못하는 거냐, 이런 얘기도 했다. [김경식 / 서울시립 동부병원장]
김 원장이 이보라 주치의 이야기를 꺼내자 국정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 화제를 계속 이어갔다. 어떤 의사인지, 개인적 성향은 어떤지, 어떻게 김영오 씨의 주치의로 활동하게 되었는지 등을 물었다고 한다. 이에 김 원장은, 이보라 과장이 워낙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인데다 대외적으로 실력도 인정받고 있어 그리 된 것 같다는 정도로 받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장은 다음날인 22일, 김영오 씨가 입원하면서 내근을 하게 된 이보라 과장을 찾아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달하면서,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국정원이 주시하고 있는 듯하니 책 잡힐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게 좋겠다면서 격려했다.
원장 선생님 말씀 듣고는 ‘올 것이 왔구나’ 정도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한테도 경찰 미행이 붙었다가 적발된 사례들도 있었는데, 저 역시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장에서 살다시피 한 셈이니 이런 일을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왔거든요. 그러나 분명히 옳은 일을 하는 것인 만큼 위축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라 / 김영오 씨 주치의]
김영오 씨의 진료를 전담하는 시립병원에 국정원 직원이 직접 찾아와 이것저것 묻고 다니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압박이 될 수 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 국면의 핵심 인물인 김영오 씨 주변 인물에 대해 사실상 사찰을 통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현재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해당 직원이 병원장을 직접 찾아갔던 사실을 완전히 시인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 이평면사무소
김영오 씨가 병원으로 옮겨진 지난 22일 오전. 전북 정읍시 이평면 ○○리에 살고 있는 김 씨의 어머니는 마을 이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막내 아들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 살인지를 물어왔다. 대답은 해줬지만 조금 찜찜한 느낌이 남았다. 통상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것은 면사무소 주민등록 담당 계장인데, 어째서 이장이 이런 걸 묻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김 씨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리 이장을 찾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장은 “그날 아침 면사무소 부면장이 찾아와서 김영오 씨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김 씨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내용은 아니었고 이 동네 출신이 맞는지, 이름과 나이가 뭔지 정도였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다시 이평면 부면장을 찾았다. 부면장은 김영오 씨 가족관계 등에 대해 이장이 취재진에게 대답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김 씨 어머니는 혼자 살고 있다는 점, 김 씨가 집안에서 막내라는 점, 젊어서 결혼해 객지로 나가 생활했다는 점, 김 씨의 형님은 김제에 살면서 가끔씩 이곳에 들른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부면장은 김 씨가 이평면 사람인 것을 인터넷 등을 통해 우연히 알게 돼 개인적인 호기심에 이장을 찾아가 물어본 것일 뿐,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부탁이나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 당일까지도 인터넷상에는 김영오 씨의 고향이 전북 정읍으로 되어 있는 정보들만 있을 뿐 이평면 출신이라는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더 따져 묻자 부면장은 누군가로부터 김영오 씨에 관해 미리 전해들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이곳 출신이라는 얘기를 이곳 사람이 했다, 나이가 좀 든 사람이다, 김 씨 병문안도 다녀왔다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면장과 이장이 만난 시각은 김영오 씨가 병원으로 실려간 지난 22일 오전. 그 시각에 서울로 병문안을 다녀온 누군가로부터 김 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취재진은 재차 따져 물었지만 언제 누구로부터 김 씨의 출생지 정보를 알게 됐는지, 부면장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 때, 부면장은 누군가로부터 김영오 씨에 대한 기본 정보를 파악한 뒤, 이장을 통해 세부 정보를 확인하려 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이런 정보 전달 체계의 가장 윗선으로 국정원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읍시 근처로는 직원들이 간 적도 전화를 한 적도 없다며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김영오 씨에 대한 음해성 루머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2일 한 일간지의 기사였다. 김 씨가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확인되었다며, 단식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논란을 소개한 것이었다. 사실상 철지난 색깔론 공세에 다름 아닌 음해성 내용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김 씨가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자동으로 노조원이 되었다고 한참 전에 스스로 밝혔던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에 이어 제기된 것이 김 씨가 10년 전 이혼한 뒤 두 딸에 대한 양육비도 제때 보내주지 않는 등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나쁜 아빠론’이었다. 김 씨의 처남인 윤 모 씨가 인터넷 뉴스사이트에 쓴 댓글에 대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아주 근거가 없어 보이진 않는다’며 팩트 체커 역할을 해주자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하 의원의 이 트윗글은 실은 하 의원의 보좌관이 올린 것이었다. 하 의원은 나중에 이를 확인한 뒤 개인사에 대한 지나친 공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즉각 글을 내렸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는 글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하 의원의 지원사격으로 김 씨가 딸의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걸 만큼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는 식의 논리가 급격하게 퍼진 지 불과 반나절만에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유민 아빠의 정체를 스스로 밝히라’면서 도심에서 비난 집회를 열었고, 이 모든 과정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그대로 받아쓰며 논란을 확대재생산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김영오 씨의 입원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상의 사안들이 세월호 특별법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정보기관과 보수진영이 공조하고 있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책위는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유족들에 대한 마타도어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는 것이 더 이상 소모적인 국론 분열을 막고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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