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시민단체가 ‘검찰 특수활동비 증빙기록 불법 폐기’ 의혹 관련자들을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공공기록물 불법 무단 폐기 관련 공소시효는 대검찰청이 4개월가량을 남겨두고 있으며,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그 밖의 대다수 전국 검찰청도 올해 안에 공소시효가 완성될 예정이다.
▲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녹색연합,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는 1월 16일 ‘검찰 특수활동비 불법 폐기 의혹’에 연루된 검찰 관계자들을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 소속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와 녹색연합,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는 오늘(16일) 검찰 특수활동비 지출·집행 관련 자료를 불법 파기하는 데 관여한 검찰 관계자들을 수사해 처벌해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5개 시민단체 공공기록물법 위반·공용서류 무효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
시민단체들은 2017년 상반기 대검찰청을 비롯한 전국 각 검찰청에서 법이 정한 기록물평가 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특활비 관련 기록을 무단 폐기(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제50조에 따르면, 기록물을 무단 폐기하는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기록 무단 폐기가 형법상 공용서류 무효죄에도 해당된다고 보고 고발장에 혐의를 추가했다.
시민단체들은 “대검찰청의 경우 2017년 5월 마지막 무단 폐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7년의 공소시효에서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법원 판결에 따라 검찰 특수활동비 증빙 기록이 최초 공개된 직후부터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기록물 불법 폐기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법원은 2017년 1월부터 검찰이 생산한 특활비 집행 기록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대검찰청은 2017년 1~4월,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5월에 생산된 특활비 기록을 공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공공기록물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2017년 상반기 특활비 기록을 폐기했는지 확인했다.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거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5년 치 ‘기록물 폐기 심의 목록’을 확인한 결과, 특활비 관련 기록을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폐기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내부의 누군가가 2017년 상반기를 전후한 특활비 기록을 무단 폐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65개 검찰청 중 59곳, 2017년 전체 또는 일부 특활비 자료 폐기 확인
이후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해 2017년 당시 전국 65개 검찰청 가운데 6곳을 제외하고 최소 59개 검찰청에서 2017년 전체 또는 일부 특활비 기록이 사라진 사실이 확인됐다.
공동취재단이 전국 검찰청사를 방문해 특활비 집행기록을 수령하면서 만난 각 검찰청 관계자들은 “2017년 자료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 “갖고 있는 자료는 모두 공개했다” 등의 답변을 내놨다. 특활비 자료가 없어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해명한 검찰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의 취재와 검증을 통해 특활비 기록 불법 폐기 정황이 다수 드러났지만, 검찰은 “2017년 9월 특수활동비 관리제도가 개선·강화 되기 이전의 자료는 관리되고 있지 않아 부득이하게 제출하지 못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부득이한 사정’이 무엇인지 묻는 취재진의 추가 질의에 대검 관계자는 “2017년 9월 이전에는 특활비 증빙 기록 관련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검찰 자체 특활비 지침의 내용 유무를 떠나, 기획재정부 및 감사원 지침 등에 따라 당시에도 모든 정부기관은 특활비 증빙기록을 반드시 남기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훈 장관, ‘폐기 원칙’ 또는 ‘관행 폐기’라며, 불법 폐기 사실상 시인
특활비 기록 불법 폐기 의혹과 관련해, 법무부도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2개월마다 자료를 폐기하는 게 원칙”이었다며, 일부 특활비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활비 자료의 불법 폐기가 검찰의 원칙이었다고 강변한 한 전 장관은 약 한 달 뒤 다시 국회에 나와서는 “월별로 폐기하는 관행”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처럼 ‘폐기가 원칙’이라고 했다가 ‘관행적 폐기’라며 말을 바꿨지만, 검찰이 특활비를 쓰고 반드시 남겨야 하는 증빙 기록을 불법으로 폐기한 사실을 법무부 장관이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후 어떤 후속 조치도 뒤따르지 않았다. 한 전 장관은 “이전 자료가 없는 것을 지금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라며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했다.
▲ 지난해 국회에 나와 "2개월마다 폐기가 원칙"이라고 주장했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이후 "월별 폐기가 관행"이었다고 말을 바꿨지만, 검찰 내에서 특활비 증빙기록이 불법 폐기된 사실이 있었음을 사실상 자인했다.
국회 역시, 검찰의 특활비 기록 불법 폐기 의혹을 두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는 지난해 7월, 시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정조사와 특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국회는 오는 5월 말까지 특활비 불법 폐기 국정조사와 특검에 대한 청원 심의를 연기한다고 시민단체에 통보했다.
“검찰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 불법 폐기 당사자인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검찰과 법무부, 나아가 국회까지 특활비 기록 불법 폐기 의혹을 규명에 적극 나서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검찰청의 경우 이르면 4개월 후 공소시효가 완성돼 수사 대상에서 빠져 나가게 된다. 결국, 시민단체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활비 자료 불법 폐기의 중요 당사자이기도 한 서울중앙지검이 스스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검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만약 수사하지 않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면, 이후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가 적용되는 특별검사 도입을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