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기자회견에는 황운하 의원, 장경태 의원, 그리고 필자가 참석했다. 기자회견문은 “늦었습니다. 국회가 많이 늦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여러 감회가 들었다. 지난해 6월, 검찰 특수활동비 집행 관련 서류들이 사상 최초로 공개된 이후부터 1년 5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국회에서 상설특검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설특검을 통한 검찰 특활비 수사의 필요성
그동안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를 포함한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의 검증에 의해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여러 불법 의혹이 드러난 상황이다. 기밀 수사에 써야 하는 특수활동비를 용도에 맞지 않게 쓴 것은 물론, 관련 자료를 불법 폐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보공개 소송 과정에서 멀쩡히 존재하는 자료에 대해 ‘부존재’라고 허위 서면을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죄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이런 불법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자료가 확보돼 있기 때문에, 압수 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고 주요 피의자·참고인만 소환해서 수사하면, 곧바로 기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지난해부터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채해병 특검, 김건희 특검 등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혀 왔던 상황이니, 검찰 특수활동비에 대한 특검 도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별도의 특별검사법을 제정하지 말고, '상설특검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이용해서 특별검사를 추진하자는 아이디어가 야당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불법 의혹들에 대해서도 '상설특검법'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황운하·장경태·윤종오 의원이 대표발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11월 29일, 황운하 의원(왼쪽), 장경태 의원(가운데), 하승수 변호사(오른쪽)가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 특수활동비 오·남용 및 자료 폐기, 정보 은폐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상설) 특별검사의 수사요구안‘을 발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찰 특수활동비 불법 의혹이야말로 상설특검법에 적합
다만, 상설특검법을 활용할 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 문제였다.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별검사를 도입하려면,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의 특별검사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해야 한다. 그러면 대통령이 그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가 적절한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칙(국회규칙)」에 따르면 7명의 후보 추천위원은 당연직 3명(대한변협 회장,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과 국회의장이 임명하는 4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국회의장이 임명하는 4명은 여당이 2명, 야당이 2명 추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주요 특검 수사 대상은 대부분 대통령 및 그 배우자와 연관된 것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 불법 의혹도 핵심 피의자 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 2명을 추천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후보추천이 안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도 11월 28일에 풀렸다. 야당 주도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칙」이 개정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할 때는 여당을 배제하게 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검찰에게 수사·기소를 맡겨서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가 없기 때문에 특별검사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수사 대상인데, 여당이 들어와서 특별검사 후보 추천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국회규칙까지 개정되면서, 상설특검법에 의한 특별검사를 추진하는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그리고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불법 의혹은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가 수사하기에 적합한 사안이다.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가 가진 한계는 수사 기간이 60일로 비교적 짧고, 채용할 수 있는 특별수사관 규모도 30명 이내로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파견검사의 숫자도 5명 이내이고, 파견 공무원 숫자도 30명 이내이다.
이 정도의 수사 기간과 수사 규모로 성과를 내려면, 단기간에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안이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불법 의혹은 이미 정보공개를 통해서 많은 증거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수사를 해야 할 주요 피의자나 참고인도 특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압수 수색해서 추가 물증만 확보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단기간에 수사 성과를 내야 하는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에 적합한 사안이다.
검찰조직에서 벌어진 '세금도둑질'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정의 바로 세울 수 없어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불법 의혹들에 대해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여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첫째, 국가 재정이 어렵고 국민의 삶이 어려운데,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쓰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불법 폐기하고 정보 은폐를 한 행위를 처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 특수활동비의 상당 부분은 명절 떡값, 연말 몰아쓰기, 자의적인 격려금, 정치적인 수사에 대한 격려금 등으로 오·남용되어 왔다. 기밀 수사에만 사용해야 하는 예산을 마음대로 써 온 것이다. 이런 행위가 처벌되지 않고서는 국가 재정의 규율이 제대로 설 수 없다.
둘째,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 불법 의혹을 수사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법 앞의 평등’이 설 자리가 없다. 검찰은 전직 국가정보원장 3명을 특수활동비 오·남용건으로 구속하고 실형을 살게 했다. 또한 최근에도 검찰 특수활동비 오·남용에 비해서는 훨씬 규모가 작은 사안에 대해서도 ‘먼지털이’식 수사·기소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세금 오·남용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이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셋째, 검찰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 불법 의혹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어떤 조직이든 내부가 병들어 있을 때에는 환부를 드러내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조직이 건강해질 수 있다. 검찰 내부의 불법 의혹들에 대해 눈감고 아무런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은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검찰 특수활동비 오·남용 및 자료 폐기, 정보 은폐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요구안’은 신속하게 논의되고 통과되어야 한다. 이제 안건이 발의되었으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서 본회의만 통과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안건이다. 이미 제정되어 있는 상설특검법을 이용해서 수사 요구만 하는 안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특별검사 임명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탄핵사유가 될 뿐이다. 국회의 분발, 특히 야당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