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지면에서 1면 ‘톱기사’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당연히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쓴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기사 가치가 가장 높다고 판단하는 기사를 톱으로 선정하겠죠. 그런데 어떤 언론사는 지면에 따라 아래 사진과 같은 편집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 음식점 메뉴판과 유사한 신문 지면 판매 단가표
일종의 매뉴얼인데, 돈의 액수에 따라서 기사의 크기와 위치가 정해진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뭔가 음식점 메뉴판과 비슷합니다. 메뉴판에는 나오지 않지만 1면에는 5단 이상, 즉 1,00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실어준다는 확고한 원칙까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런 황당한 신문 지면 판매 메뉴판은 진짜 있는 걸까요. 만약에 실재한다면 도대체 어떤 신문일까요.
조선일보 특집팀의 ‘친절한 영업’
2021년 11월 25일 경남에서 제조업을 하는 L중소기업 이 모 대표에게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조선일보 특집팀 000 차장 명의였습니다. 메일에는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과 CEO를 심층 보도하는 기획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특집을 통해 “우수한 기업들의 성공 전략에 대한 생생한 정보 전달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돼 있었습니다. 아래는 조선일보 특집팀에서 이 대표에게 보낸 실제 메일입니다.
▲조선일보에서 중소기업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 특집 게재 비용으로 500만 원이 명시돼 있다.
조선일보는 특집 게재 비용으로 ‘500만 원’이 필요하다고 명시해 놨습니다. 또 돈을 내고 기사를 낸 뒤 홍보나 마케팅에 활용하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편집 견본이라며 파일을 하나 첨부했습니다. 첨부된 견본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일보가 기사 게재 비용 500만 원이라는 영업 메일을 보내면서 첨부한 견본. (색깔은 아래 설명을 위해서 뉴스타파가 덧붙임.)
조선일보의 메일을 받은 이 대표는 뉴스타파에 제보를 했습니다. 이 대표의 제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건 언론 앵벌이 아닌가요? 이런 짓거리 제발 좀 못하게 부탁드립니다.
조선일보의 흔한 영업 기술
뉴스타파는 이 대표에게 허락을 받은 뒤 L기업의 비서실이라고 위장해 조선일보 특집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선일보 특집팀과의 통화를 질문과 대답으로 재구성해 봤습니다. 대화에 나오는 색깔은 위 사진에 있는 색깔입니다. (실제 음성은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뉴스타파 : 500만 원을 내면 빨강 네모 크기로 나가는 건가? A.조선일보 : 그렇지 않다. 500만 원은 노랑 네모다. 빨강이나 파랑 네모 크기로 나가려면 금액이 달라진다. 빨강 네모는 2,000만 원이고 파랑 네모는 1,000만 원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노랑 네모도 작은 사이즈는 아니다. Q.뉴스타파 :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럼 500만 원 내고 노랑 네모 사이즈로 하면서 1면에 실리고 싶다. A.조선일보 : 그렇게는 안된다. 1면에는 큰 네모, 즉 빨강 네모와 파랑 네모만 실을 수 있다.
흔한 영업 기술입니다. 작은 미끼 상품을 던지고, 손님이 일단 관심을 보이면 더 비싼 상품을 보여주는 거죠. 조선일보 특집팀은 통화가 끝난 뒤 위에서 보신 ‘지면 메뉴판’을 보내줬습니다.
고객이 기사 수정까지 가능...완벽한 고객 맞춤형
여기서 궁금해졌습니다. 돈을 내고 지면을 살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기사 내용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계속해서 물어봤습니다.
Q.뉴스타파 : 우리가 새로 개발한 제품을 기사에서 소개해 줄 수 있나? A.조선일보 : 물론이다. 제품 설명도 가능하고, 제품 이미지도 실어 줄 수 있다. Q.뉴스타파 : 기사 내용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지 걱정이다. A.조선일보 : 걱정마라. 기사가 나가기 전에 초고를 보내줄 거다. 강조하고 싶은 건 추가해도 되고, 지우고 싶은 건 지워도 된다. Q.뉴스타파 : 고맙다.
조선일보의 공격적인 영업에는 저널리즘이나 언론윤리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장사를 하는데 고상한 이야기는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조선일보는 이렇게 돈을 받고 지면을 팔았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고지를 할까요. 기사 말미에 ‘협찬:00기업’이라고 넣는 걸까요.
Q.뉴스타파 : 비즈&씨이오 섹션을 독자들이 광고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효과가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A.조선일보 : 걱정마라. 견본을 보지 않았나? 광고 느낌이 나지 않는다. Q.뉴스타파 : 협찬이나 돈을 받았다는 설명이 지면에 들어가는 건 아닌가? A.조선일보 : 걱정마라. 전혀 안 들어간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다시 작은 영업기술을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조선일보 비즈&씨이오 섹션에는 아주 조그만하게, 영어로 ‘Advertorial section’이라고 적어 놓습니다. 애드버토리얼은 광고를 뜻하는 advertisement와 편집기사를 말하는 editorial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기사처럼 보이는 광고, 혹은 기사형 광고라는 뜻이죠. 조선일보 특집팀에서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작은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보일 듯 말 듯, 그것도 대부분 잘 모르는, 어려운, 영어로 적어놓은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측면에서 조선일보 특집팀의 설명은 오히려 아주 정직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특집
조선일보 특집팀에서 중소기업 사장님을 상대로 영업을 한 것은 ‘비즈&씨이오 섹션’입니다. 기업인을 소개하는 비정기적인 섹션이죠. 2021년 조선일보를 모두 찾아봤더니 '비즈&씨이오'를 8번 발행했습니다. 한 번 발행할 때 4면씩 냅니다. 조선일보 ‘메뉴판’에 따르면 한 면에 3천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4개 지면 모두 판매했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1억 2천만 원입니다. 8번 발행했으니 조선일보는 '비즈&씨이오' 지면으로만 9억 6천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조선일보가 돈 버는 거 참 쉽습니다.
‘비즈&씨이오’가 다는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경제지도 아니면서 유난히 기업을 소개하는 특집을 많이 발행합니다. 특집 이름도 컴퍼니, 머니&트렌드, 바이오, 비즈&베터라이프, 미래를 향한 걸음 등등 매우 다채롭습니다. 조선일보가 올해 1년 동안 낸 기업 소개 특집 섹션은 70회가 넘습니다. 건설 업체를 홍보해주는 분양리포트, 위클리부동산 같은 부동산 섹션과 그냥 광고지라고 할 수 있는 부띠끄 섹션 등은 제외를 한 숫자가 그렇습니다.
조선일보는 공휴일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특집을 발행합니다. (특집이라고 쓰고 광고라고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면도 발행합니다. 요즘 종이신문 받아보시는 분은 거의 없지만 조선일보는 이 특집 때문에 매우 두툼한 편입니다.
조선일보가 특집으로 얼마나 버는지 계산을 해보죠. 보수적으로 하루에 특집을 4면만 발행한다고 가정합시다. 1년에 신문 발행일은 주말을 제외하고 260일 정도 됩니다. 곱하면 1년 매출액이 300억 원이 넘습니다. 물론 조선일보가 얼마나 많은 기사를 팔았는지는 조선일보의 영업비밀입니다. 300억 원이라는 매출은 실제보다 매우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가 이른바 ‘특집’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추산한 결과. 지면 수는 보수적으로 계산했고, 기사를 모두 판매했다고 가정했다.
혹시 경영이 어려워서 기사를 파는 걸까?
조선일보가 언론윤리까지 포기하면서 이런 노골적인 지면 장사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신문 시장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혹시 너무 어려워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면을 팔고 있는 건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2020년 언론사들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TV조선과 조선일보가 각각 1위와 3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기사형 광고를 쓰다가 적발된 건수를 보면 조선일보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있는 놈이 더 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가 봅니다.
▲조선일보는 2020년 영억이익 375억 원으로 언론사 3위였다.
▲조선일보는 2020년 기사형 광고 적발 건수 1위를 차지했다.
“언론의 앵벌이”
뉴스타파에 조선일보의 영업 행태를 제보한 중소기업 사장님은 '앵벌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어떤 의미로 앵벌이라는 단어를 쓰셨는지 물어봤습니다. “앵벌이는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사기를 뜻하는데, 조선일보의 이런 행태도 결국 앵벌이에 해당한다.” 중소기업 사장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뉴스타파는 2019년부터 언론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문사의 기사형 광고, 방송사의 프로그램형 광고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에 제보한 사장님처럼 독자 여러분들도 언론 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하시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jebo@newstapa.org 또는 jebo.newsta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