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 가능"...항소심도 경찰 패소, 시민단체 승소

Nov. 14, 2023, 05:44 PM.

⬤ 서울고등법원, 경찰과 시민단체 행정소송서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 가능" 판결
⬤ 경찰 '대통령실도 집이나 마찬가지' 주장했지만 1심에 이어 2심도 패소
⬤ 대통령실 행정관, "대통령 집무실에 침대, 화장실, 샤워실 있다" 진술서 법정 제출
⬤ 서울고등법원, 국회의 집시법 개정 시도에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 입장 밝혀

 
대통령 집무실(대통령실) 주변 100m 이내에서도 집회·시위가 가능하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 제8-1행정부(정총령·조진구·신용호 부장판사)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경찰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촛불행동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앞서 1심에서도 대통령실 주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경찰의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항소심에서 경찰은 '유사시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눈을 붙이기도 하니, 대통령실도 집(관저)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측도 "대통령실에는 식사, 휴식, 취침을 위한 시설이 있다"며 경찰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경찰의 주장도, 대통령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시작된 '경찰의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 금지' 관련 문제를  연속 보도해 왔다.(아래는 뉴스타파 보도 목록)  

"대통령실은 집(관저) 아니다"... 경찰, 시민단체와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 

경찰은 용산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를 둘러싸고 촛불행동, 참여연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무지개 행동'(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와 소송 중이다. 지난해 이들 단체가 용산 대통령실 반경 100m 이내에 집회 신고를 내자 경찰은 집회금지를 통보했고, 곧바로 시민단체들은 경찰을 상대로 집회 금지 무효를 주장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3호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 주변 100m 이내 집회·시위는 목적과 성격, 규모를 불문하고 원천 금지된다. 대통령실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다. 하지만 경찰은 대통령실도 '관저의 개념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은 관저(서울 한남동)와 떨어져 있지만, 집시법의 입법 목적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면, '관저는 대통령의 주거 공간과 집무실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란 주장이었다. 
올해 초 1심 법원은 시민단체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어떻게 봐도 대통령실을 관저로는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관저는 정부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이기 때문에, 업무 공간인 대통령실은 관저에 포함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시위로 인해 설치된 경찰 울타리. 경찰은 계속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를 금지했지만,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경찰의 주요 전략, "용산 대통령실도 '대통령 집'" 

경찰은 즉각 항소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집이기도 하다'는 주장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경찰은 촛불행동과 참여연대, 무지개행동 등 여러 시민단체를 상대로 제출한 항소이유서에 아래와 같이 썼다.
이 사건 대통령 집무실은 주거 공간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집시법 제11조 제3호의 보호대상에 포섭됩니다. 즉, 대통령 집무실은 국가비상사태 등을 대비하여 대통령의 주거 기능을 포함하고 있고, 실제로 국가적인 재난재해나 안보위기 등이 발생 시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거주하며 연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므로, 이는 곧 주거 공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도 집시법 제11조 제3호의 '대통령 관저'에 포섭됩니다.

'대통령실 집회금지 소송' 경찰-촛불승리전환행동 항소심 중 경찰 측 항소이유서 / 2023.4.27
경찰은 지난 4월 재판부에 "대통령 집무실이 구비한 주거 공간 기능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있다"며 시간을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5개월이 넘도록 자료를 내지 않았다. 경찰의 요청으로 재판만 길어졌다. 

대통령 부속실, "대통령께서 눈 붙이실 때도 있으니 대통령실도 집"

경찰은 촛불행동, 참여연대와의 항소심에서 각각 9월 15일, 11월 7일이 돼서야 법원에 자료를 냈다. 제출된 자료는 모두 같았다. 대통령 부속실 소속 최 모 행정관의 3장짜리 진술서였다. 최 행정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부터 줄곧 같이 일한 검찰 공무원으로, 지난해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곧바로 대통령 부속실로 자리를 옮겼다. 
진술서에서 최 행정관은 "집무실에 침대, 화장실, 샤워실, 식사공간이 있다", "대통령이 대부분 대통령실 내에 있는 식당을 이용한다", "대통령실에 전담 요리사가 있다"고 썼다. 아래와 같은 얘기도 썼다.
대통령께서는 '북한 미사일 발사', '수해·화재' 위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주말·휴일은 물론이고 새벽 이른 시간 또는 밤 늦은 시간에도 출퇴근하기도 하셨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집무실에서 주무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중략).. 4월 2일 일요일 서울 인왕산, 충남 홍성 등 전국에서 다수의 산불이 발생하자 출근하셔서 밤 늦은 시간까지 상황을 점검하시며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셨습니다. 

'대통령실 집회금지 소송' 항소심 중 법원에 제출된 대통령 부속실 최 모 행정관 진술서 / 2023.9.15
최 행정관은 "대통령님께서는 업무시간 뿐만 아니라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 식사, 휴식, 취침 등 상당한 시간을 집무실에서 보내시며 국정 업무를 챙기고 계십니다"라고도 썼다. 한마디로 대통령실에 침대와 화장실, 샤워시설, 식사공간이 있고, 실제로 대통령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장면을 대통령실 행정관이 봤으니 '대통령실도 집(관저)으로 봐 달라'는 얘기였다.
대통령실 주변 집회금지 소송에서 촛불행동을 대리해 온 이제일 변호사는 "나 같은 변호사나 직장인도 일이 많고 바쁘면 종종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 사무실을 주거지라고 보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집회·시위 금지 소송' 항소심에서 경찰 측이 법원에 제출한 대통령 부속실 최 모 행정관의 진술서. 진술서에서 최 행정관은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서는 집무실에서 주무시는 경우도 많았다"고 썼고, 경찰은 이 진술서를 토대로 '대통령실도 주거 공간인 집(관저)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 국회 집시법 개정 시도에도 "신중하라" 입장 밝혀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 제8-1행정부(정총령·조진구·신용호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촛불행동의 손을 들어줬다. '대통령실 주변 100m 이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경찰의 조치가 위법하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관저의 핵심은 일상 영위를 위한 주거 기능에 있고, 그 밖의 사무 집행, 접견 수행 등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에 그친다고 할 것"이라며 "대통령 관저가 대통령의 생활 공간에서 독립된 대통령의 직무 공간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직무 공간인 대통령실에 화장실, 수면 공간 등이 있다고 해도 그게 곧 '주거 기능이 핵심'인 집(관저)으로 봐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피고는 용산구 소재 국방부 청사는 대통령의 주된 집무실일 뿐만 아니라 국가비상사태 등에 대비하여 주거 공간이 될 수 있으므로 해당 청사는 '대통령 관저'라고 볼 수 있어 이 사건 처분(집회·시위 금지 조치)은 여전히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 등은 예외적인 국정운영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그로 인해 위 국방부 청사가 잠정적이고 일시적으로 주거의 기능을 일부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위 청사는 본질적으로 대통령 집무실로 기능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통령실 집회금지 소송' 경찰-촛불승리전환행동 항소심 판결문 / 서울고등법원(2023.11.10)
현재 국회에서는 집시법 11조 3호(대통령 관저 주변 집회 금지)에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법률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경찰은 해당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게 대통령실 반경 100m 이내에서는 모든 집회·시위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경찰 패소를 결정한 서울고등법원은 '절대적 집회금지 구역에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문제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는 국민의 집단적 의사 표현을 보호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이다.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를 확정하는 것은 특히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또 재판부는 "대통령이 사인의 지위에서 누리는 주거의 안정과 평온은 가급적 보장되어야 하더라도, 이와 별개로 국민의 의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에 임하는 것은 대통령의 일과 중에 집무실에서 수행해야 할 주요 업무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경찰청에 연락해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경찰청 측은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판결문을 본 뒤에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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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