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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드러난 '전두환 의장' 군사혁명위원회(JUNTA)

2020년 05월 18일 11시 04분

전두환이 1980년 5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 설립 전에 이미 훈타(JUNTA), 즉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의장에 오르려고 했다는 기록이 40년 만에 일본외무성 문서에서 발견됐다. 군사혁명위원회는 박정희가 5.16쿠데타를 일으킨 뒤 만든 군부의 행정, 입법, 사법 권력 장악 조직으로, 전두환도 이를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가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입수한 80년 당시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전두환 세력이 모의한 군사혁명위원회(JUNTA) 조직도도 나왔다. 의장(전두환)과 부의장(이희성 계엄사령관), 그리고 12명의 위원과 2명의 후보 위원 명단이다.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전두환 세력이 이 조직을 만들어 최규하 내각을 해산한 뒤 권력을 손에 넣으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1980년 5월 이른바 국보위를 만들어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국보위 이전에 이미 군부의 권력장악 기구인 군사혁명위원회 설치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지난 40년간 수차례 진행된 5·18진상규명 활동이나 검찰수사 과정에서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광주항쟁 40년을 맞아 일본정부를 상대로 1년 넘게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1980년 5월~6월 당시 일본 외무성 문서를 ‘일본외무성 전두환파일’이란 제목으로 지난 12일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다. 40년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소위 ‘5·18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해, “북한군의 움직임이 없다”고 기록된 1980년 5월 당시 미국과 일본의 정보보고서, (https://newstapa.org/article/yNup7 참조) 북한군 개입설 국내 유포의 원조격 발언으로 보이는 80년 5월 24일 전두환의 발언 내용(https://newstapa.org/article/xhhoU) 등을 공개한 바 있다.


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기획한 ‘군사혁명위원회’ 조직 명단 발견

전두환은 1980년 5월 31일 발족한 국보위의 상임위원장에 오르며 사실상 권력을 손에 넣었다. 1979년 12·12군사반란으로 시작해 광주학살로 이어진 ‘전두환 쿠데타’가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국보위 설립 3개월 뒤인 80년 9월 1일, 전두환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제 11대 대통령에 올랐다.

‘전두환 쿠데타’ 완성의 마지막 단계로 알려져 왔던 국보위는 형식상으로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만들어졌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거기에 군인들이 들어가 실무를 맡는 구조다. 하지만 사실상 모든 실권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상임위원회에 있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1980년 작성된 일본외무성 비밀문서 파일에서, 당초 전두환이 국보위가 아니라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감행한 당일 선포한 ‘군사혁명위원회’와 유사한 권력장악기구를 만들어 스스로 의장에 오르려 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1980년 5월 22일 오후 8시 25분,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외무성에 보낸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 (80년 5월) 22일 합동통신 간부 OOO은 후루카와(일본대사관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군부는 이미 1차로 14명(그 외 후보 2명)으로 구성된 JUNTA(훈타)를 만들고 있는데…
- 일본외무성 문서 (1980년 5월 22일)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이 군사혁명위원회를 ‘전두환 등이 구상’하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문서마다 ‘혁명위원회’, ‘혁명평의회’ ‘비상대책회의’ 등의 명칭이 번갈아가며 기재돼 있는데, 영어명으로는 일관되게 JUNTA(훈타, 군사혁명위원회)로 기재돼 있다. JUNTA는 군사쿠데타 이후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구성하는 기구를 칭하는 일반명사다.

“훈타(JUNTA)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에서 군사쿠데타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군사평의회, 군사혁명위원회 같은 조직을 부르는 보통명사입니다. 쉽게 말해 군사쿠데타 이후 만들어지는 과도조직을 부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위원

▲ 1980년 5월 22일 오후 8시 25분,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외무성에 보낸 문서. 전두환 신군부가 기획했다는 ‘훈타(JUNTA)’ 조직도가 들어 있다. 의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중장), 부의장은 이희성 계엄사령관(대장)이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80년 5월 17일 이전에 이미 군사혁명위원회, 즉 훈타(JUNTA) 조직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군부가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게 JUNTA 설치를 허락받으려고 시도한 날짜가 5월 16일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최 대통령은 군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외무성 비밀문서에는 JUNTA의 조직도 명단이 들어 있다. 의장과 부의장, 12명의 위원과 2명의 후보 위원까지 16명의 명단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조직의 의장이 바로 보안사령관 전두환(당시 중장)이란 점, 계엄령 하에서 형식상 군 최고 실권자인 이희성(당시 대장)은 부의장으로 전두환의 밑에 배치됐다. 하극상이나 다름없는 일이 군부내에서 벌어진 것이다. 박정희가 5.16쿠데타 직후 만든 ‘군사혁명위원회’는 의장이 형식적으로나마 장도영(중장, 육군참모총장)이었고, 박정희(소장)은 부의장이었다.

“별 3개짜리가 의장이 되고 별 4개 짜리가 부의장인 조직입니다. 이거야말로 5·18 광주항쟁 당시 군부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40년간 어떤 문서나 증언에서도 나온 적이 없었던 내용입니다.”
-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위원

“5·18 당시 모든 것이 전두환의 손에 의해서 조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발견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

일본외무성 문서에 들어 있는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혁명위원회(JUNTA) 조직도는 아래와 같다. 위원 12명과 후보위원 2명 가운데 상당수는 전두환 측근들로, 12·12군사반란에서 5·17내란과 광주학살까지 같이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일부 인사의 이름과 직책은 정확치 않거나 불향후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1980년 5월 22일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외무성에 보낸 정보보고 문서. 전두환과 신군부가 모의, 기획한 군사혁명위원회(JUNTA)의 조직도가 들어 있다.

‘전두환 의장의 JUNTA’, 내각 해산 후 권력 장악 계획

조직도가 들어있는 80년 5월 22일 문서 외에도, 뉴스타파가 광주항쟁 40년을 맞아 입수한 일본외무성 문서 164건 중에는 전두환과 신군부가 기획한 군사혁명위원회(JUNTA)을 언급한 문서가 2건 더 있다. 1980년 5월 24일과 26일, 각각 주한일본대사관이 일본외무성에 타전한 정보보고서다. 이 두 문서에는 당시 신군부가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든 뒤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와 함께 당시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국무총리가 군사혁명위원회 설치에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1980년 5월 26일 문서에는 주로 민관식 당시 국회의장이 일본대사관에 전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신군부로부터 군사혁명위원회 설치에 협조하라는 등의 압력을 받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의 처지를 민관식 의장이 설명하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 민관식 의장에 의하면...현재는 최 대통령의 노력으로 5·18(박정희 군사 쿠데타)의 한 발 앞 단계에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상태다.
- 일본 외무성 문서 (80년 5월 26일)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를 검토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 문서를 확인하고 보니, 만약 광주항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전두환 세력은 분명히 대통령이 의장이고 형식적이나마 국무위원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보위가 아니라 군인들로만 구성된 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실권을 잡고 군사정권을 설립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JUNTA는 96년 검찰이 밝힌 신군부의 ‘시국수습방안’ 가능성일 높다”

1996년 1월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를 포함해 ‘전두환 쿠데타’ 책임자 10여 명을 기소했다. 주요 혐의는 내란음모. 검찰은 1980년 5월 전두환의 부하였던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기획한 ‘시국수습대책’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전두환이 시국수습방안을 기획, 국회와 행정부를 무력화하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 권력을 잡으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일명 ‘시국수습대책’에는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해산, 그 다음 비상기구 설치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앞의 두개와 달리 ‘비상기구 설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 동안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도, 5·18 전문가들도 국보위를 말하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뉴스타파와 함께 일본외무성 비밀문서를 분석한 5·18전문가들은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혁명위원회가 바로 검찰이 확인하지 못했던 바로 그 ‘비상기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군부가 모의했던) 비상기구 설치의 내용이 전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광주학살 직후인 80년 5월 말, 국보위가 만들어지니까 ‘그것이 (신군부의 비상기구가) 아니었을까’라고 추정을 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그 이전 단계에서 군인들만이 중심이 된 군사혁명위원회, 혹은 훈타(JUNTA), 이런 조직이 먼저 선행되어 기획됐다는 것을 (일본 외무성문서가) 보여준 겁니다. 시국수습대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비상기구’, 이것의 실체가 이번에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위원

5·18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일본외무성 비밀문서는 ‘전두환쿠데타’의 전모를 밝혀줄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강민수
공동기획전갑생(뉴스타파 전문위원),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용철(5·18재단 오월지기)
촬영이상찬 신영철 오준식
편집김은 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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