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가 지난 6월과 7월 연속 보도했던 관광 분야 학술단체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한국연구재단이 해당 학술지의 등재지 자격을 박탈했다. 이들 학회는 앞으로 3년간 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평가를 받을 수 없고, 학술단체지원금도 신청 할 수 없다. 뉴스타파 보도 3개월 만의 변화다.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특별심의를 벌여 한국관광산업학회의 학술지(왼쪽)와 관광경영학회의 학술지의 연구재단 등재지 자격을 취소했다.
관광경영학회, 한국관광산업학회 학술지 '등재 취소' 처분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에 '등재 학술지 취소' 처분을 통보했다. 두 학회는 경기대 관광문화대학 소속 교수들이 중심이 돼 운영하는 학술단체다. 뉴스타파가 논문 심사위원 명의 도용, 논문 게재율 조작 등 불법과 꼼수로 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평가를 통과했다고 보도했던 곳이다.
연구재단은 지난 석 달간 두 학회를 상대로 특별 심의를 벌였다. 연구재단이 학술단체를 상대로 특별심의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결과 뉴스타파가 보도한 비리 의혹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돼 이같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통상 학술지 실태점검을 벌이면 연말까지 조사해 최종 결론을 내지만, 두 학회는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고 판단해 교육부와 연구재단이 특별 심의라는 형태로 빠르게 조사를 진행했다”며 “해당 학회에 논문을 투고해 피해를 보는 연구자들이 없도록 교육부와 연구재단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등재 취소’ 처분은 연구재단이 할 수 있는 행정 처분 중 가장 강력한 조치다. 보통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는 연구재단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술지부터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준다. ('KCI'라 불리는 연구재단 등재학술지는 평가 점수에 따라 등재 후보, 등재, 우수등재로 구분된다.) 이 때문에 연구재단 등재 자격이 취소되면 연구실적이 필요한 학자들의 논문 투고가 줄어 사실상 학술지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두 학회는 향후 3년간 학술지 평가와 학술단체 지원사업 신청 기회도 제한된다. 이 같은 행정조치는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관광경영학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국연구재단의 특별심의 결과 알림 공문
두 학회 비리를 주도한 인물에 대한 조치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두 학회에 대한 점검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고 세부적인 점검이 남아있다. 이를 포함해 두 학회 평가 서류 조작 행위자를 상대로 법적 조치할지 여부는 연말에 개최되는 종합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관광경영학회 측도 비리 의혹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광경영학회는 지난달 21일, 학회 정기총회를 열어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회원들에게 사과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총회에서 취재진을 만난 관광경영학회 이 모 이사장은 “내 명의도 심사위원으로 20차례 가량 도용됐다고 하더라. 학술지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후배 교수들이 무리수를 뒀던 거 같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자성하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학회 중 한국관광산업학회는 여전히 연구재단의 특별심의 결과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공지하지 않고 있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학회 홈페이지에 특별심의 결과를 안내하라고 통보했는데, 학회가 사실상 와해 수순이다보니 제대로 공지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재단 조치에도 맹점은 있다. ‘등재 취소’ 처분이 소급적용되지는 않기 때문에 심사위원 명의 도용 등 이미 부정행위로 얻은 논문실적에 대해선 조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관광 분야의 한 교수는 “연구재단의 발빠른 조치를 환영한다”면서도 “과거 부정한 방법으로 통과시킨 논문들에 대해선 연구실적을 취소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서 일일이 해당 논문들을 조사, 연구윤리위반 행위를 적발하지 않는 이상 연구실적을 취소할 방법이 없다.
경기대 연구윤리위, 뉴스타파 보도 논문 ‘본 조사’ 착수
경기대는 뉴스타파 보도 이후 연구윤리위원회를 가동 중이다. 뉴스타파 보도에 거론된 교수들의 논문 70편 가량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 한 달 간의 예비조사를 마치고, 추가 조사가 필요한 30편 가량의 논문을 본 조사위원회로 넘겼다. 본 조사는 경기대 교수 3명, 외부 교수 3명 등 6명의 전문가가 진행한다.
경기대 연구지원팀 관계자는 “예비 조사위에서 논문표절검사시스템을 통해 70여 건의 유사도를 살펴본 결과 30여 건에서 유사도가 높다고 나와 본 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본 조사 결과는 규정상 3개월 안에 나오도록 돼 있지만, 워낙 조사할 논문의 양이 방대해 기간은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뉴스타파 보도가 연구윤리 자정의 계기가 됐다. 열심히 조사하고 있으니 그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타파는 〈논문공장의 영업비밀〉 2편에서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에 논문을 가장 많이 게재한 이른바 논문왕들의 논문을 분석해 데이터 조작, 표절 등 연구윤리위반 의심 논문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 1일 보도 화면 갈무리)
앞서 뉴스타파는 <논문공장의 영업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경기대 교수들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학술단체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의 비리 의혹을 연속 보도했다. 1편에서는 관광경영학회가 논문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해 가짜 심사를 진행하고, 다른 학회 논문을 무더기로 얻어와 자신들 학회의 ‘탈락용’ 논문으로 사용하는 수법으로 논문 게재율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관광산업학회도 같은 방식으로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하는 2018년 학술지 평가 서류를 조작, ‘KCI 등재 학술지’ 자격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2편에서는 관광경영학회와 한국관광산업학회 등 경기대 관광문화대학 소속 교수들이 운영하는 두 개 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내용을 검증 보도했다. 이들 학회에 게재된 논문에서 표절,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사례 수십 건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또 연구재단 평가 서류 조작 의혹의 핵심인물이 두 명이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는 학회에 낸 논문실적으로 지난해 경기대 전임교원으로 임용됐다고도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