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2주기] ② 엇갈린 판결들...진짜 진상규명은 지금부터
2024년 10월 31일 20시 00분
이번 추석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가장 잔인한 추석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10명 실종자의 가족들은 텅빈 진도체육관에서, 유가족들은 청와대와 광화문 농성장에서 노숙하며 추석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명절이라는 게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났다.
결혼 7년 만에 얻은 외동딸 지현양을 이번 참사로 잃게 된 황인열 씨는 진도체육관에서 생활한 지 지난 3일로 141일을 맞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실종자 가족들로 북적였던 진도체육관은 하나 둘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떠나면서 이제 황 씨를 포함해 9가족만이 남았다.
황 씨는 진도군에서 추석을 맞아 제사상을 차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황 씨는 “아이를 찾았으면 밥이라도 한 상 차리겠지만, 애를 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도 할 수가 없다”며 “그저 가슴으로만 딸을 만난다”고 말했다.
황 씨의 하루 일과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거나 수색현장으로 나가는 바지선에 올라 수색상황을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진도체육관에 머물며 하염없이 수색이 재개되기만 기다린다. 취재진이 방문한 그날도 그랬다.
황 씨는 “여기 있는 동안은 바지선 타는 날이 그나마 기쁜 날이다. 애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안 좋아서 바지선이 출항하지 못하는 날엔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고” 전했다.
딸을 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힘든 줄도 모르고 버텼던 시간, 그러나 점차 진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예전에 진도체육관에 왔을 때 분명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점차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식당, 약국 등도 줄어들고 정부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 수색도 중단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희생자 가족들은 의사자, 특례입학, 보상금이 아닌 왜 우리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채 수장됐으며, 그걸 왜 정부는 바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하나 뿐인 딸을 잃은 아빠에게 의사자, 특례입학, 돈 등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지만, 딸에 대한 일화를 얘기할 때는 눈시울을 붉혔다. 실종자 가족 상태로 계속 남는 것도 문제지만, 딸을 찾은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걱정이라며 그는 “어렵게 얻은 딸인 만큼 이 아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딸이 없는 일상을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달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른살 박경태 씨는 사랑하는 어머니 이영숙 씨와 제주도에 마련해 둔 예쁜 집에서 함께 살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외아들을 홀로 키운 어머니를 위해 세운 계획이었다. 참사가 없었다면 박 씨는 이번 추석을 제주도 집에서 어머니와 오순도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씨는 이번 추석을 삼촌과 진도체육관에서 보낸다. 아직 어머니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제주도 집에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세월호를 탔다가 실종됐다. 이삿짐도 모두 바다에 잠겼다.
박 씨는 “왜 어머니가 세월호를 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데, 정치권도, 국민들도 진도를 잊는 거 같아 불안하다”며 “남아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진도에 실종자 가족이 있음을,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임을 국민들이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촉구하며 거리농성을 벌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건 초기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언제든지 찾아오라, 연락하라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유가족들에게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고, 아이를 잃은 아픔이 아물지도 않은 유가족들을 거리로 내모는 정부가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단원고 학생 고 김민정 양의 어머니 정정임 씨는 다가오는 명절이 두렵다고 했다. 연휴 동안에도 일터인 영화관에서 근무해야 하는 정 씨는 “명절이면 가족단위로 오는 관객이 많아 더욱 딸 생각이 날 것 같다. 그 모습을 어떻게 볼지, 벌써부터 막막하다”며 울먹였다.
정 씨는 일을 마치면 집이 아니라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앞으로 퇴근한다. 벌써 14일째다. 정 씨는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 면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 씨 역시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약속했던 박 대통령의 공언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최근에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규제개혁을 위해 확 다 풀어주라고 말했는데, 왜 유독 유가족들한테는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속시원히 풀어주란 말을 못하느냐”고 말했다.
5일 현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43일이 됐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4일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고, 국회앞 농성은 56일째, 청와대 앞 농성은 15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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