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③ 윤희근, ‘시위 관리’로 훈장… 다중운집 매뉴얼 무시

2022년 12월 22일 10시 00분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찾는 수사가 진행중이다. 국회 국정조사도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참사 한 달이 된 지금까지 최종 책임자의 윤곽은 흐릿하다. 수사는 밑으로만 향할 뿐 위로 뻗지 못하고 있다. 재난 주무장관이면서도 ‘이태원 참사’를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뉴스타파는 각종 법령과 조례 등을 뒤져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했다. 이상민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을 따져 세 번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경찰의 존립 근거인 ‘경찰관 직무집행법’(이하 직무집행법)과 경찰법(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 취지가 그렇다. 1953년 제정된 직무집행법 제1조는 경찰관의 직무로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의 보호’를 명시했다. 1991년 제정된 경찰법에도 동일한 내용의 조문(제3조)이 들어 있다. 경찰법은 ‘경찰의 민주적 운영’을 명분으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산하 치안본부가 외청으로 독립할 때 만들어졌다.  

1. 국민의 생명 보호는 국가의 책무

경찰법 제2조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도 규정한다. 굳이 경찰법에 ‘국가의 책무’를 넣은 이유는 경찰을 운영할 책임이 정부에 있어서다. 정확히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 국가경찰위원회를 두고,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 운영을 감독하도록 돼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령인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를 개정(제13조의 2)해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에 대한 직접적 통제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듯 ‘국민의 생명 보호’는 경찰, 나아가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다. 그럼에도 일부 여권 인사들과 여권 지지자들은 “이태원 참사는 국가 책임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태도이고, 윤석열 정부가 신봉하는 ‘법과 원칙’에도 맞지 않는 ‘망언’이다. 대법원은 국가의 ‘본래적 사명’으로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등의 보호’를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98다18520)
 지난달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왼쪽)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2. 윤석열 검찰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서울경찰청장 기소

국민의 생명 보호가 경찰의 기본 책무라는 사실은 2017년 발생한 ‘백남기 농민 사건’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살수차를 이용해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 4명을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맡은 사건이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백남기 농민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시위의 불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의 ‘주의의무 위반’을 위법 행위로 판단했다. 시위 현장에 없던 구 전 청장에게까지 직사 살수의 책임을 물었다.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총괄 책임자로서 불필요한 살수가 이뤄지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실시하지 않았고, 현장 실무자에 대한 적정한 지휘·감독을 하지 않아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검찰 공소장에는 구 전 청장의 ‘주의의무’가 이렇게 설명돼 있다. 
피고인(구은수)은 집회·시위의 진압, 관리 총괄 책임자로서 서울지방경찰청 8층 상황지휘센터에서 그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 살수의 승인, 경력의 배치 등을 지휘·감독하여야 한다. (중략) 살수를 승인함에 있어,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 현장 책임자들에 대한 지휘·감독을 통해 위법한 살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촉구를 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 (또한) 직사살수가 필요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살수만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다른 현장의 경력과 장비를 보다 급박한 이 사건 시위 현장에 재배치하여 보강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과잉살수 및 불필요한 살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조치를 실시하여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건’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2017. 10. 17)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구 전 청장의 책임을 일부 인정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서울청장으로서 적절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백남기 농민을 숨지게 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2019도12195, 현재 대법원 계류 중)
‘백남기 농민 사건’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 경찰의 책임을 따지는 데 유용한 자료이자 증거다. 경찰법상 국민의 생명 보호 의무가 경찰 지휘부에게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이 제 역할을 다했더라면 인명피해가 없었거나 설혹 사고가 있었더라도 158명이나 숨지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사 현장엔 다중운집에 대비할 경찰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경찰의 배치와 장비의 운용 권한을 쥔 지휘부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무고한 시민이 숨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백남기 농민 사건’ 당시 검찰이 적용한 법리를 이태원 참사에 준용하면, 다음과 같은 경찰의 주의의무를 도출할 수 있다.
‘경찰법에 의거, 다중운집 행사 관리 의무가 있는 경찰은 참사 당일인 10월 29일, 10만 인파가 몰린 이태원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 경력의 배치 등을 지휘·감독해야 했고,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 등 현장 책임자들에 대한 지휘·감독을 통해 위법한 상황 대응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 또 다른 시위 현장 등에 투입됐던 경력과 장비를 급박했던 이 사건 현장에 재배치하고 보강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조치를 실시해야 했다.’
‘백남기 농민 사건’ 당시 경찰은 ‘정당한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경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 지휘부인 구 전 청장까지도 업무상 과실치사의 ‘공동정범’으로 엮어 기소한 이유다. 

3. 사회적 참사에 적용되는 ‘공동정범’ 논리

‘공동정범’이란 개념은 둘 이상의 개인이 각각 다른 양태로 특정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제공했을 때 이들을 한데 묶어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논리다. 개별 과실이 아닌 사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사회적 참사인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도 그랬다. 이를 이태원 참사에 적용하면,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에게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경우 그가 과실을 범하도록 방조하거나 조장한 이들도 함께 처벌받아야 한다.
‘윤석열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구 전 청장에게 이 같은 공동정범 개념을 적용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도 같은 논리에 입각해 현재 수사 중이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의 ‘조직적 과실’이 국민의 생명을 뺏은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지휘부 차원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검사 시절 경찰의 책임을 물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젠 경찰 지휘부를 아우르는 자리에 있다는 점이다. 

4. 이상민 장관에게 경찰청장 지휘·감독 권한 명시

경찰 지휘부엔 당연히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포함된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국 신설과 함께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법령에 명시했다.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13조의2) 지난 6월 행안부가 내놓은 법령 해석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권한과 경찰청의 중요 정책 수립을 지휘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조직법 제34조 5항, 제7조 4항)
그러니까 개별 경찰관의 잘못이 아닌 경찰 수뇌부가 관여된 조직적 과실이 확인되면 이상민 장관 역시 지휘권자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처벌이라도 받게 된다면, 이 장관으로선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된다. 법령에 명시돼 있고 본인 스스로도 떠들어 왔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6월 28일 경찰국과 관련해 내놓은 법령 해석,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출처: 행정안전부 블로그)

5.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특수본 수사계획 불분명

현재 특수본 수사는 말 그대로 공전하고 있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한 것은 물론 ‘윗선’ 수사 역시 지지부진하다. 이 장관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 계획도 알려진 바 없다. 
경찰 총수지만 윤희근 청장에게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단 윤 청장은 ‘다중운집 행사 관리 의무’를 가진 자치경찰 수장이 아닌 국가 경찰의 수장이다. (국가경찰 수장과 자치경찰 수장의 서로 다른 역할과 임무에 대해서는 2편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경찰법이 규정한 국가경찰 사무는 ▲범죄의 예방 ▲중요 사건의 수사 ▲경비·경호 ▲공공의 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 등이다. 김광호 서울청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이유는 그가 윤희근과 달리 자치경찰 수장이어서다.   
윤희근 청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충북 모처에서 개인 일정을 소화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법적책임과 곧바로 연결짓긴 어렵다. 근무일이 아닌 주말에 취한 휴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여겨 볼 것은 그의 ‘참사 당일 동선’이 아닌 경찰청장이 되기까지의 ‘행적’이다. 
이태원 참사 3일 전인 10월 26일 국민의힘이 개최한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윤희근 경찰청장.

6. 윤희근 경찰청장, 경비국장 시절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 소송

윤 청장은 올해 6월까지 경찰청 경비국장(치안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엔 용산 대통령실 주변 경비·경호 책임을 맡았다. 대통령령인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상 ‘윤희근 경비국장’에게 부여된 임무는 '경비에 관한 계획의 수립, 경호 및 주요 인사 보호 계획의 수립' 등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8월, 윤 청장은 경찰청 차장을 거쳐 경찰청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상민 장관이 임명제청했다. 윤 청장은 윤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씨다.
윤 청장은 경찰청장이 되기 전부터 대통령실 주변 경비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지난 8월 8일 경찰청장 후보자 자격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그는 ‘대통령실 주변 집회 불허’ 방침과 함께 시민단체를 상대로 집회 관련 소송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아래는 인사청문회 당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윤 청장의 질의 답변 내용 중 일부. 
◯용혜인: 대통령실 이전 이후에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가 집시법 11조의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라고 해서 불허를 하다가 여러 차례 소송에 패소하면서 인원 제한을 둬서 제한적으로 허용을 하고 계시지요? 이것이 경찰의 방침이 맞습니까? 
◯윤희근 : 예, 맞습니다
◯용혜인 : 그런데 ‘관저라는 말이 집무실을 포함한다’라는 해석이 용산으로 대통령실 이전한 다음에 갑자기 경찰로부터 등장을 했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소송에서 패소하고 계신 겁니다. 이거 혹시 윗선에서 소송 계속하라고 하고 있는 겁니까?
◯윤희근 : 그렇지 않습니다
◯용혜인 : 집회를 기본권이 아니라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하신다면 경찰청장으로서 부적격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에 대해서 본안 소송 끝까지 하시겠습니까?
◯윤희근 : 예, 소송은 진행할 거고요. 저희는 법원 판단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2022. 8. 8) 
위 대화에 등장하는 소송은 윤 청장이 경찰청 경비국장 시절부터 관여해 온 ‘대통령실 주변 통제’ 계획의 일부다. 경찰청 경호과는 지난 5월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대통령 경호처에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뉴스타파 10월 6일 보도 참조)
서울 용산에 있는 대통령실. 윤희근 청장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를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주도했다. 
윤희근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당시, 경찰은 윤 대통령 취임 전후 시민들이 낸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시위’를 모두 금지하면서 이에 불복한 시민단체와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송에서 경찰은 법 조항을 임의로 왜곡해 ‘아전인수’식 논리를 폈다. 대표적인 주장이 “시민들이 대통령실(옛 청와대) 인근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집단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를 만든 곳은 경찰청 경호과다. 경호과는 행안부령인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상 경찰청 경비국의 하부 조직이다. 당시 경호과는 상급부서인 경비국의 승인 하에 대통령 경호처와 공문을 주고받는 등 시민단체를 상대로 집회 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송의 책임자는 바로 ‘경비국장 윤희근’이었다. 

7. 다중인파 안전 관리보다 대통령 안전 관리 집중?

앞서 윤 청장은 집회·시위 관리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경찰을 대표해 녹조근정훈장(4등급, 2010년 10월)을 받기도 했다. 윤 청장이 집회·시위를 관리한 2008~2010년에는 광우병 반대 시위, 용산참사 진상규명 요구 등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윤 청장은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에 속한 계장이었다. ‘집회·시위 등 공공의 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및 제도 연구’가 윤 청장이 맡은 임무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국회에 공개한 '훈장수여증명서'
그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훈장수여증명서’에는 “각종 대규모 집회·시위를 법과 원칙에 따라 관리함으로써 법질서 확립과 선진 집회·시위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내용이 공적으로 적혀 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도 윤 청장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시위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윤 청장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비 업무 과부하가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희근 청장이 경찰청 경비국장 시절 국민 안전과 관련된 다중운집 상황에 대비해 별도 업무를 수행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경찰청이 이 달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다중운집 장소 대책 문건’을 보면, 월드컵 거리응원을 제외하고 경찰청 차원의 다중인파 관리 계획은 전혀 없었다. 집회·시위 관리에 총력을 다 했던 전력과 비교된다. 윤 청장의 후임인 홍기현 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이태원 참사 직후인 10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최가 없는 다중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8. ‘경비 관련 법령 및 제도 개선’ 업무 불이행

앞서 밝혔듯, 일반적인 다중인파 관리는 자치경찰인 시·도경찰청의 고유 업무다. 하지만 다중인파 관리 책임이 온전히 시·도경찰청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국가경찰인 경찰청에도 권한과 책임이 있다. 2014년 경찰청 경비국이 발행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은 이를 잘 보여준다. (뉴스타파 12월 1일 보도 참조) 매뉴얼 발간사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행사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성을 사전 판단하고, 필요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행사 안전 확보를 위해 힘써야 한다." (경찰청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2005년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이 매뉴얼은 2006년엔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로, 2014년엔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로 수정·보완됐다.
2014년 경찰청 경비국 경호과가 발행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행안부령인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상 경찰청 경비국은 경비과를 지휘한다. 경비과가 맡은 임무는 일반경비, 다중경비, 혼잡경비 및 재해경비 등으로 나뉜다. 구체적인 업무는 경찰청훈령인 ‘경찰청 사무분장 규칙’에 나온다. 이 규칙 제31조에는 ‘경비과는 집회·시위 대응은 물론 ‘행사·혼잡경비 등 일반 경비계획에 대한 수립 및 지도 업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다. 경비과는 ‘경비 관련 법령 및 제도의 연구·개선’ 업무도 수행하는데 이를 총괄할 책임은 당연히 경찰청 경비국에 있다.
이미 경찰청은 2015년 7월 다중인파가 몰리는 군중행사의 안전 관리를 주제로 정부 연구용역도 수행한 바 있다.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뉴스타파 11월 3일 보도 참조) 연구에는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은 행사라도 경찰이 선제적으로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경찰청 내부 업무분장에 따르면, 이를 제도에 반영하고 실행할 책임은 경찰청 경비국에 있다. 그러나 윤 청장은 경비국장을 거쳐 경찰청장이 된 지금까지 관련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9. 2010년 실행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무시

윤 청장은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적힌 ‘안전관리 요령’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 33쪽에는 “위험성이 높은 행사의 경우 경력을 집중 배치하라”고 돼 있다. 그 사례로 거대인파 운집 또는 극단적 혼잡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경우 “행사장을 '바둑판식 블록으로 구분, 단계별 적정인원을 통제’한다거나 '지하철 입구 등 취약시설에 경력을 선점 배치해 안전사고를 예방’한다”고 적혀 있다.
이 매뉴얼은 실제 다중인파 상황에서 실행된 적이 있었다. 2010년 1월 4일 정부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당시 경찰청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009년 12월 24일부터 2010년 1월 3일까지 11일간 전국경찰 비상근무 기간을 설정하고, 1만 6548명의 경력(기동대 포함)을 종로 보신각 타종식, 해운대 해맞이 축제 등에 투입했다. 이때 ‘바둑판식 블록 지정으로 인파를 분산’하는 방법이 활용됐다. 매뉴얼이 안내한 안전관리 요령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경찰청이 1월 4일 밝힌 정책브리핑 내용. 현재 원문은 삭제돼 있고 포털사이트에서만 검색이 가능하다.
그러나 12년 전과 달리 ‘윤희근 경찰청’은 다중인파에 대비해 비상근무 기간을 설정하지 않았고, 현장에 경력을 집중 배치하지도 않았으며, 혼잡상황에서 인파를 분산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경비국 위기관리센터의 상황보고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에 운집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지만, 서울청이 보고한 ‘마약 단속 계획'을 승인한 것 외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하루 전날인 10월 28일, 서울경찰청은 ‘마약류범죄 예방·단속을 위한 특별형사활동 계획’이란 제목의 문건을 경찰청에 보고했다. 문건엔 “유흥 밀집지역에 대규모 인파 운집이 예상된다”는 보고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대책은 “축제에 참가한 젊은층 및 외국인을 중심으로 마약류 범죄 단속을 위한 특별형사활동 전개”가 전부였다. 다중운집에 따른 치안 상황을 고려하면 경력의 배치 등을 조정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핼러윈 축제를 보신각 타종식과 같은 혼잡경비의 대상이 아닌 ‘단속의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다.

11. 참사 발생 전후 ‘기동대 지원’ 미스터리

실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첨부된 ‘2013년 다중운집 행사 경력배치 현황’에 따르면, 2013년 보신각 타종식엔 10만 규모의 인파가 예상됐고, 그에 따라 기동대 67개 중대 등 6030명의 경력이 배치됐다. 반면, 동일하게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린 핼러윈 축제엔 기동대 1개 제대(20명) 등 137명의 경력만 배치됐다. 게다가 이 중 상당수는 마약 단속을 위한 특별형사활동 인력이었다. 그 결과 이상민, 윤희근, 김광호로 이어지는 경찰 지휘라인은 경찰법이 정한 ‘국민의 생명 보호’ 임무에 실패했다.
참사 발생 이후에도 경찰의 경력 운용에는 문제가 있었다. 참사 당일 밤 윤 청장은 경찰청 상황1담당관을 통해 ‘압사 사고’를 인지하고, 다음날 오전 12시 19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용경력 최대 동원”을 지시했다. 그러나 1개 기동대는 윤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움직이지 않고 거점근무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지난 12일 보도 참조) 경찰법 제2조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역 1번 출구. 이날 이태원역 인근에는 기동대 1개 제대가 뒤늦게 배치됐다.
참사 다음날 오후 2시 42분, 윤 청장은 경찰청 치안상황실을 통해 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로 이런 지시를 내린다.
 “유가족이 사망자 접촉 관련 문의시 수사심사관(피해자 전담경찰관)이 전담 상담 안내 일원화토록 지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피해자’라고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당시는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피해자)’를 ‘사망자’라 부르며 참사의 책임이 정부로 향하는 것을 애써 막아서던 때였다. 
경찰총수 스스로 참사 희생자가 ‘피해자’라고 밝힌 이상, 이 사건의 ‘가해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가 누구든 이태원에서 희생된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잘못을 저지른 건 국가다. 어떤 논리를 갖다 대도, 이태원에 모여 축제를 즐겼다는 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죄가 될 수는 없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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