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자초하는 밀실 법정

2014년 06월 27일 22시 09분

 

모호한 비공개 근거...국민의 알권리 침해 우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 식구 봐주기’와 ‘꼬리자르기’라는 의혹 속에 마무리 된 가운데, 모해증거위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3명의 국정원 직원과 중국인 협조자에 대한 첫번째 공판이 지난 17일 열렸다.

이 재판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국가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비공개가 가능하다는 법원조직법과 공무상 비밀보호를 위해 비공개 증언이 가능하다는 국가정보원직원법을 근거로 이날 증인 신문 절차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첫 재판부터 비공개…인터넷 업체 증인 “기술적 내용만 답했다”

비공개로 열린 첫번째 공판에서는 핵심 공소사실 중 하나인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가짜 회신 공문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다뤄졌다. 검찰은 이날 지난해 11월 국정원 김보현 과장 등이 국정원 본부에서 선양 총영사관으로 인터넷 팩스를 이용한 접속 기록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 과장 변호인들은 당시 접속 기록을 봤을때 누군가 팩스를 예약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 과장이 직접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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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출석한 검찰 측 증인은 인터넷 팩스업체의 직원 김 모씨였다. 김 씨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날 법정에서 인터넷 팩스 전송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술적인 내용을 답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가안전이나 국정원 내부 기밀과는 무관했다. 결국 이날 재판에서 비공개된 증인과 증언 내용은 애당초 재판부가 근거로 들었던 근거 법령 어디에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초기부터 ‘밀실법정’ 움직임 “국민적 관심 높은 사안 알 권리 충족시켜야”

법률 전문가는 오히려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인 만큼 적절하게 재판이 공개되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재판에는 앞으로도 국정원 직원을 비롯한 여러 증인이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지만 재판부는 그때마다 같은 이유를 들어 비공개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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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이 비공개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면 검찰과 국정원, 그리고 재판부의 공조 가운데 이른바 ‘밀실법정’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재판에 앞서 국정원은 검찰에 수사기록의 비공개를 요청하는 의견을 냈고 이에 검찰은 총 7권의 수사 기록 가운데 4권을 2급 비밀로 지정했다. 그러자 국정원 직원의 변호인단은 다시 이 내용을 바탕으로 재판부에 재판 비공개를 요청했다. 재판부가 이 요청을 받아들여 재판 비공개를 결정하면서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공판 내용은 국민의 감시망을 벗어나게 됐다. 국정원 지휘부와 공소 담당 검사들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구설에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재판 과정에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게 될까 부담을 느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원 직원들의 변호인단은 왜 유우성 씨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만 혐의없음 처분을 했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담당 검사들에 대한 증인 요청 가능성도 내비쳐 재판 진행에 따라 검찰 수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실들이 나올 수도 있다.

유우성 씨 재판때부터 비공개 문제, ‘증거 위조’ 재판에서도 반복?

이번 증거조작사건과 관련하여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부터 있었던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1심 공판 과정 역시 대부분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당시 담당검사들은 법정에서의 수차례 말바꾸기를 하고 유리한 증거 만을 취사선택해 검사의 객관 의무를 위반했지만 언론과 여론의 감시를 쉽게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1심에서 유 씨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자 급기야 항소심에서는 조작된 증거와 증인 동원되는 상황이 빚어지게 됐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당시 재판이 적절한 언론과 국민의 감시를 받았다면 애당초 이같은 증거 위조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유 씨의 변호인단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대한변협 역시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이 적절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진행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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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법관이 사전에 위험 감안해 판단”... 원세훈 재판은 공개 원칙 지켜

국정원 관련 재판 비공개 논란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법에 근거해 이뤄진 비공개 재판인데다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국가 안전에 관련된 진술이 나올 위험성을 감안해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가림막 등을 이용해 국정원 직원들의 신원 보호 등의 문제를 충분히 보완하면서도 공개재판의 원칙을 준수하려 애쓰던 재판부가 유독 이번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서만 무리한 비공개 결정을 남발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국정원 내부 회의 등 민감한 사안이 많았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재판임을 감안해 공개 재판 원칙을 지켜왔다.

국정원과 연관된 주요 사건도 맡고 있어...국민참여재판 번복하기도

이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합의26부는 현재 NLL대화록 유출로 기소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과 북한 보위사 직파 간첩으로 알려진 홍 모씨의 재판도 맡고 있다. 특히 이 재판부는 지난달 12일 홍 씨의 재판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결정했다가 2주 만에 이를 번복하고 배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전에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증인의 수가 많아 공판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번복한 결정이어서 여러가지 의혹을 샀던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특정 성격의 사건이 한 재판부에 몰리다보면 불필요한 오해마저 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가기관에 의해 벌어진 증거 위조로 우리 형사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만큼 재판부는 더더욱 공개재판의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