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곳의 행태를 보면, 회사의 설립 목적이 '이윤추구'가 아닌 '기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두 회사의 회계 감사보고서상 기부금으로 신고된 금액은 모두 1,041억 원.
하지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은 단 한 번도 배당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법인 명의로 회사의 재산이 기부됐기 때문에 주주들은 소득공제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
호반그룹 산하 재단에 900억 원 넘게 기부하고, 지난 2017년 자진 해산한 알앤원(주)과 알앤투(주)의 이야기다.
900억대 기부하고 사라진 알앤원과 알앤투는 어떤 회사였나
알앤원과 알앤투는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주택건설업 및 임대주택 분양업체였다.
뉴스타파가 알앤원과 알앤투를 취재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2014년 호반그룹 산하 남도문화재단이 서울 우면동 호반그룹 사옥부지를 461억 원에 매입했다. 같은 해 남도문화재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기부금 수입 내역에는 알앤원과 알앤투가 각각 325억 원과 140억 원 등 모두 465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사실상 알앤원과 알앤투가 호반그룹을 위해 땅 값을 대신 내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2015년부터 회사 문을 닫은 2017년까지 알앤원과 알앤투는 170억 원을 추가로 남도문화재단에 기부했다. 남도문화재단이 기부금으로 받은 돈의 98%에 달했다.
당시 이들 회사의 경영 상태는 거액을 기부할만큼 녹록지 않았다. 2014년 알앤원의 매출은 고작 2,467만 원이었다. 전년도인 2013년 알앤원의 매출은 0원이었다.
이처럼 매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거액을 기부하면서 알앤원은 2014년 32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알앤원의 대표이사는 윤주봉 씨,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고종 사촌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타파는 윤주봉 씨에게 거액을 기부한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2014년 말 현재, 알앤원의 최대 주주는 49.93%의 지분을 가진 알앤투다. 알앤투는 1992년 (주)호반에서 출발해 호반산업개발과 한미투자개발, 리젠시빌/건설을 거쳐 2017년 4월 해산했다. 1992년 회사 설립 당시부터 1997년 호반산업개발 당시까지 5년간 김상열 회장이 대표이사를 지냈다.
알앤투는 2014년 남도문화재단이 호반그룹 사옥부지를 매입할 당시 재단에 140억 원을 기부했다. 당해 매출은 2,467만 원으로 알앤원의 매출과 동일했다.
알앤투는 알앤원의 주식 49.9%를 갖고 있었는데, 알앤원이 기부로 인해 33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으면서 주식 가치가 하락해 161억 원의 지분법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알앤투의 이익잉여금은 2013년 441억 원에서 2014년 145억 원으로 295억 원 줄었다. 이익잉여금은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 중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적립한 순이익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295억 원 만큼 주주들이 손실을 입은 것이다.
김성순 변호사(민변 언론미디어위원장)는 "법인이 가진 재산은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법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야 한다"며 "일반인이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액을 특정 단체에 기부한 것은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알앤원과 알앤투의 실소유주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알앤투의 최대주주는 광주광역시에서 건설회사를 운영 중인 박철홍 씨. 박 씨의 지분율은 1999년 51.43%에서 2015년말 현재 44.28%로 줄긴 했지만, 회사가 청산될 때까지 최대 주주였다.
그러나 박 씨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2001년쯤부터 회사 운영에 손을 뗐고, 호반이 모든 것을 관리했다"면서 "알앤투는 김상열 회장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알앤투의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2001년 4월 박 씨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나온다.
박 씨의 주장대로 김상열 회장이 알앤투를 실제 소유하고 운영했다면, 업무상 배임의 공범이 될 수 있다. 또 알앤원과 알앤투의 차명 주주들은 보유 지분에 해당되는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김상열 회장이 알앤원과 알앤투를 실질 지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정황이 나왔다.
우선, 단 한번도 주주 배당이 없었다는 점이다. 알앤원의 이익잉여금은 1999년 4억 원에서 2009년 754억 원으로 급증했다.
박철홍 씨가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2001년 이후 매출이 급증하면서 당기순이익도 커졌다. 하지만 알앤원은 2017년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주주들에게 단 한번도 이익금을 배당하지 않았다.
대신 알앤원은 차곡차곡 모은 이익잉여금을 모두 기부하는데 사용했다.
알앤원의 회계 감사보고서와 호반그룹 산하 3개 재단의 기부금 수입 내역을 교차 검증한 결과, 알앤원이 기부했다고 신고한 749억 원 중 96%인 720억 원이 호반그룹 계열 재단 3곳에 흘러 들어갔다. 남도문화재단에 기부한 돈이 434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호반문화재단 207억 원, 호반장학회 79억 원 등이다.
알앤투 역시 주주들에게 단 한 푼도 배당하지 않았다. 대신 남도문화재단에 201억 원, 호반장학회에 21억 원, 호반문화재단에 5억 원 등 227억 원을 기부한 뒤 회사 문을 닫았다.
알앤원과 알앤투가 호반그룹 산하 3개 재단에 기부한 돈은 모두 947억 원이다.
▲ 호반그룹 산하 재단 3곳에 947억 원을 기부한 알앤원과 알앤투는 회사를 청산할 때까지 주주들에게는 단 한번도 배당하지 않았다.
호반건설 자회사와 알앤원이 2004년 합병한 것도 김상열 회장이 알앤원을 실질 지배했음을 방증하는 요소다.
김상열 회장은 2004년 12월 호반건설의 임대주택 건설 부문을 분할해 리젠시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리젠시는 한 달 뒤 알앤원과 합병됐다. 알앤원과 리젠시의 합병 비율은 1대 0. 김상열 회장이 호반건설과 알앤원 두 회사를 실질 지배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합병 비율이다.
알앤원은 리젠시를 2005년 1월 흡수 합병한 뒤 매출이 급증했고, 당기순이익도 크게 증가했다.
뉴스파타는 김상열 회장이 알앤원과 알앤투의 실소유자였는지 호반그룹을 통해 질의했다.
그러나 김상열 회장과 호반그룹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김상열 회장이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멀쩡한 두 회사를 청산하고, 모든 자산을 호반그룹 산하 재단으로 이전시킨 것은 아닌지 세무당국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