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실무편람①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 건의? “불가”

2024년 12월 10일 18시 19분

‘12·3 내란’ 관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는 군 내부 지침상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합동참모본부(합참)가 펴낸 ‘계엄실무편람’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전쟁 등으로 군사적 필요성이 발생했을 때만 국방부가 관련 절차를 거쳐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6월 합참이 펴낸 ‘계엄실무편람’을 입수했다. 2년 주기로 발행되는 계엄실무편람은 헌법 및 계엄법, 군의 계엄기본계획, 계엄사령부운영예규 등을 근거로 작성됐다. 계엄실무편람은 계엄법에 대한 군 내부의 이해 증진뿐 아니라, 관련 법률 검토 및 적용에도 활용하게 돼 있다.
그런데 계엄실무편람 전문을 보면, 이번 12·3 비상계엄 선포는 법적·행정적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불법 행위로 확인된다. 

“전시 아니다, 치안 부재 상태 아니다”…비상계엄 선포 요건 전부 ‘미충족’

계엄은 계엄법에 따라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구분된다. 계엄실무편람에는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각각 3가지를 제시한다. 그중 윤 대통령이 실행한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상황)
②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현상)
③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상태)
첫 번째 요건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여야 한다는 것. 전쟁이 발발했거나 이와 비슷한 위기 상황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적과 교전 상태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상황일 것, 이 두 번째 요건은 실제 적과 무력 충돌 중이거나 경찰력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불가능한 경우를 뜻한다.
▲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왼쪽)과 김선호 국방부 차관.
위의 두 가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은 ‘12·3 내란’에 관여한 계엄군 당사자들조차 충족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아래는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당시 계엄사령관)과 김선호 국방부 차관(장관 대리)의 답변 중 일부다.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아니, 지금 전시냐고요. 현재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계엄법에서 얘기하는…… 장난치지 말고, 장난으로 묻는 거 아니잖아요. 다시 차관, 전시입니까?
● 김선호 국방부 차관 : 전시 아닙니다.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총장?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 예, 아닙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중 (2024.12.5.)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치안 부재 상태냐 아니냐만 답하세요. 예, 아니오?
● 김선호 국방부 차관 : 치안 부재 상태 아닙니다.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 총장?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 예, 아닙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중 (2024.12.5.)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했다.
(국회는)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담화 중 (2024.12.3)
이 담화 내용은 마지막 세 번째 요건인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져서’ 계엄을 선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소속 공무원들을 탄핵하려고 했기 때문에 계엄이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논리는 상식을 벗어난 궤변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국회 입법조사처도 '국회와 행정부 간의 갈등이 비상계엄 요건이 될 수는 없다'고 밝힌바 있다. (관련 기사 : 국회 입법조사처, 국가기관 처음으로 '윤석열 내란 성립' 보고)

국방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 전쟁 나야 가능

윤 대통령이 국회 탓을 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김용현 당시 국방부장관은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했다. 김용현 전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직접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합동참모본부가 펴낸 계엄실무편람(2023) 90쪽에는 국방부의 계엄 건의 절차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국방부장관은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군사상 필요성에 의해 비상계엄을 건의할 수 있다. 계엄실무편람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국방부(비상대책회의)는 계엄 선포 요건을 검토해 군사상 필요하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건의한다”고 적혀 있다.
또 “전시 계엄을 준비하는 국방부와 합참은 군사상 필요에 의한 계엄 선포를 검토하는 것이 전시 계엄 시행의 가정”이라고도 쓰여 있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없다는 게 계엄실무편람의 해석이다. 

권한 없는 국방장관이 ‘반헌법적 포고문’ 내밀며 선포 재촉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도 내용과 절차상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포고문 작성과 발표 과정에 계엄실무편람이 규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계엄 상황에서 법령의 효력을 지니는 포고령은 계엄사 산하 법무처의 법률 검토를 받아 계엄사령관이 직접 결재하게 돼 있다. 또 계엄이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에 시행될 경우에는 지휘·감독권자인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포고문을 공고해야 한다.
하지만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포고문 초안을 받았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난 5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답했다. 포고문 작성 권한도, 포고문에 대한 지휘와 감독 권한도 없는 국방부 장관이 거꾸로 계엄사령관에게 포고문을 내민 것이다.
더구나 국방부는 국회 활동을 금지하는 등 반헌법적 내용이 담긴 포고문을 서둘러 발표하라며 재촉까지 했다. 계엄실무편람에는 헌법 제44조가 규정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대한 법률 해석과 함께 “계엄 시행은 국회 활동에 제한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국회는 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유지한다”고 적혀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황이라 해도 계엄군이 계엄 해제 권한을 가진 국회에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 (계엄상황실에 동행한) 4명들이 ‘이거 법적으로 검토됐다고 하는데 다시 한번 보자’ 그래서 죽 같이 읽었습니다. 읽고 그런데 또 그분들도 저만큼이나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전문가이지만 계엄 사항은 조금 약해서 어떡하냐, 어떡하냐 하면서 시간이 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그것을 전화 연락이 와서, 포고령 선포하라는 (국방부) 대변인의 연락이 왔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중 (2024.12.5.)
포고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관보에 공개하고, 행정안전부와 협조해 휴대전화 문자 알림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이번 포고령 또한 행정안전부를 통해 국회에 통보하고 관보에 공고해야 했다. 공고문에는 계엄의 종류와 시행 일시, 시행 지역, 계엄사령관의 인적정보 등이 담겨야 했다. 그러나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어제(9일) 위헌적 내용의 포고문을 자신이 썼다고 자백한 뒤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체포됐다. ‘내란 수괴’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구속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윤석열 12·3 내란’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시점이다.
제작진
취재박상희 홍우람
영상 취재정형민 최형석
편집장주영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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