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등 5개 부처,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반대' 의견 국회 제출

2023년 06월 01일 15시 00분

행정안전부(행안부) 등 5개 주요 정부부처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주요 내용에 반대하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견을 낸 부처는 행안부, 고용노동부(노동부), 보건복지부(복지부), 인사혁신처, 감사원이다. 행안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에 있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설치에 반대했고, 고용노동부는 참사 피해자의 후유증 치료를 위한 휴직 지원 조항에 대해 '정부 지원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냈다.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을 통해 관련 자료를 입수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4월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조위 설치와 '피해구제심의위원회', '희생자추모위원회' 설치, 참사 피해자 지원 등이 핵심이다.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주요 내용은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핵심 내용, 유가족이 거리로 나선 이유> 보도 참조.)   
지난 4월 20일 발의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의원 18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행정안전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반대"

행안부는 지난 5월 1일부터 12일까지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이 있는 정부부처들을 상대로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5개 부처(행안부, 복지부, 노동부, 인사혁신처, 감사원)가 의견을 냈다. 모두 '이태원 특별법'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행안부가 취합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이 의견들은 '이태원 특별법' 관련 논의에 반영될 예정이다.
행안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의 핵심 내용인 특조위 설치,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희생자추모위원회 설치에 모두 반대했다. 국회에 낸 의견 자료에서 행안부는 "특조위의 진상규명 기능은 현행 경찰 특별수사본부, 검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과 기능이 중복된다.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단' 등을 통해 이미 역할을 수행 중이다. 기능의 중복과 비효율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고용노동부, "참사 피해자 치유 휴직에 정부 지원 불필요"

노동부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내용 중 '피해자 치유 휴직 관련 정부 지원' 조항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치유 휴직의 실시 여부는 '노사가 알아서 정할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거나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별법 발의안 66조와 67조에는 '참사 피해자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사업주의 고용유지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모두 참사 후유증으로 인한 피해자의 실직을 막고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국회에 낸 자료에서 "치유 휴직은 노사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로 인한 노사간 고용불안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실익이나 지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치유 휴직시 고용유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감사원, "이태원 특별법, 감사원 독립성 침해 우려"

감사원은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에 있는 '감사원 감사 요구' 조항을 없애야 하다는 의견을 냈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다. 특별법 발의안 34조에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조사 과정에서 공무원의 비위 등을 적발했을 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3개월 내 감사 결과를 특조위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감사원은 국회에 낸 의견 자료에서 "감사원의 감사 권한은 헌법이 부여한 고유 권한이다. 감사원에는 일체의 감사 운영을 독자적・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면 특조위가 국회에 보고하면 된다. 별도의 감사 요구 조항은 불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지난 5월 15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국회에서 '이태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사혁신처, "이태원 특조위에 공무원 의무 파견 반대"

인사혁신처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내용 중 '특조위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무원 파견 의무' 조항에 반대 의견을 냈다. 특별법 발의안 24조 "특조위 위원장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국가기관 등에 소속 공무원이나 직원의 파견근무 및 이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 등의 장은 업무 수행에 중대한 장애가 있음을 소명하지 아니하는 한 30일 내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을 문제삼았다. 
인사혁신처는 국회에 "파견은 기관 간 상호 동의를 전제로 운영돼야 한다. 일방의 파견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기관 고유의 인사 권한 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특조위의 파견 요청에 국가기관 등이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민변 이태원 참사 TF, "의지 없는 정부 부처가 말도 안 되는 주장"

뉴스타파는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 초안 작성에 참여한 변호사들에게 연락해 행안부 등 5개 정부 부처가 국회에 낸 의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태원 참사 TF 소속 백민 변호사가 대표로 입장을 보냈다. 백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에도 참여한 바 있다.  
백 변호사는 우선 '이태원 특별법' 핵심 내용에 대부분 반대한 행안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서도 '포괄적인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채택됐다. 행안부가 재난통신망 기록을 폐기했고, 경찰이 112신고 대응 기록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조위 설치는 꼭 필요하다. 피해자 지원과 추모 사업도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지원단에만 한시적으로 맡겨선 안 된다. 사회적 참사, 과거사 피해자 지원·명예회복 사업 등이 대부분 존속기간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행안부의 의견은 말이 안 된다.

백민 변호사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태원 참사 TF
백 변호사의 주장이 아니어도, 피해구제심의위원회와 추모위원회 설치에 반대하는 행안부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행안부는 "중대본을 통해 피해구제와 추모 사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중대본은 이미 지난해 12월 2일 해체됐다. 유가족 지원을 맡고 있는 행안부 소속 '이태원 참사 지원단'도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게다가 '이태원 참사 지원단'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유족들과 소통이 끊어지는 등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백 변호사는 '피해자 치유 휴직에 정부 지원 불필요' 의견을 낸 노동부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 때도 치유 휴직이 도입됐었다. 의지만 있다면 재원 방안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특별법 발의안에 들어 있는 감사 요구권이 감사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대한 감사요구권은 과거 세월호 특별법, 사회적참사위원회 특별법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던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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