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직불금 높인다더니 제자리...헛다리 짚는 식량안보 정책

2022년 09월 01일 12시 00분

밀 직불금 ha당 50만 원 그대로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밀 직불금을 크게 올리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공언은 공염불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내년도 밀 직불금을 현재와 같은 1ha당 50만 원으로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가 식량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원이 시급한 농가의 사정을 외면하고 실효성이 적은 정책으로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가 편성한 202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밀은 이번에 전략작물로 분류돼 ha당 직불금 50만 원이 책정됐다. 전략작물직불이라는 분류가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이 직불금의 액수는 기존의 겨울 밭작물로 분류됐을 때와 같은 금액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8월 31일 이 같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 확보'를 예산안 편성 기조의 첫머리에 세웠다.
하지만 이번 밀 직불금 결정은 촌각을 다투는 식량안보 상황에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밀 생산농가들은 밀 생산량을 늘리고 국산 밀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밀 직불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직불금은 일종의 생산 장려금으로 생산비를 보조하는 성격의 지원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세계 곡물시장의 수급 불안으로 국제 밀거래 가격이 50% 넘게 폭등하는 등 밀에 대한 식량안보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이 같은 농민들의 주장이 탄력을 받았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분질미 활용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 발표 2022.6.8
이런 분위기 속에 윤석열 정부의 첫 농식품부 장관인 정황근 장관도 지난 6월 기자회견을 통해 밀 직불금 대폭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밀에는 현재 ㏊당 50만 원씩 직불제가 나가요. 우리 밀을 재배하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것은 별거 아니죠. 그래서 그것을 몇 배 올릴 거예요”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식품부도 대폭적인 직불금 인상을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농가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한 푼도 늘지 않은 제자리였다.

전략작물 중에서도 밀에 가장 적은 직불금

농식품부는 식량안보 문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전략작물직불 제도를 신설했다. 식량주권 확보에 도움이 되는 주요 작물에 대해 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명분은 그렇지만 내막은 딴판이다. 2020년 기준 밀 자급률은 0.8%, 콩 자급률은 30.3%다.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밀에 대한 자급률을 올리는 것이 시급한 문제지만, 실제 예산안에 반영된 직불금은 거꾸로다. 하계작물인 콩이나 가루쌀(분질미) 직불금은 ha당 100만 원, 동계작물인 밀은 ha당 50만 원이다. 
또 이 제도에 따르면, 콩이나 가루쌀을 밀과 같이 키우면 ha당 250만 원의 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반벼와 밀을 함께 재배하는 대신 콩이나 가루쌀과 밀을 함께 재배하면 농가에 지원되는 직불금을 대폭 늘리겠다는 취지다. 이 또한 밀에 대한 지원이라기보다는 일반벼와 같은 하계작물인 콩과 가루쌀에 대한 지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쌀 수급 문제를 조절하기 위해 쌀을 대체하는 작물인 콩과 가루쌀을 심을 경우 대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가루쌀(분질미)는 밀가루와 비슷한 성질을 갖는 쌀 품종으로 정황근 장관은 가루쌀로 수입밀을 대체하겠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관련기사 :식량안보시대, 쌀가루는 수입밀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국산 밀이 자급률 1%안팎에 수십년 째 머물러 있는 것은 수입산 밀과의 가격차이가 3-4배까지 차이가 나서 소비가 촉진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제기돼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밀 농업계에서는 밀 직불금을 대폭 올려 농가의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대신, 수매가를 낮춰서 국산 밀이 수입산 밀과 가격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밀 직불금을 ha당 5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올릴 경우, 현재 40kg당 3만 9천 원 수준인 수매가를 3만 원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때마침 국제 곡물가의 급등으로 국산 밀과 수입 밀의 가격차이가 2배 정도까지 좁혀져 정부의 정책만 뒷받침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 밀의 생산과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고 그만큼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밀 농가들의 기대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2023년 국내 밀 재배면적을 정부 계획대로 2만ha로 가정할 경우, 밀 직불금을 ha당 250만 원으로 올리면 필요한 예산은 5백억 원이 된다. 일본이 밀 자급률 17%를 기록했던 2019년, 밀 지원금으로 1ha 당 약 6백만 원을 책정하고, 총액으로는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한 액수라고 볼 수 없다.
농식품부의 발표에 대해 국산밀산업협회의 손주호 이사장은 “농식품부의 예산안 발표가 있고 난 후 회원 농가들의 항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라며 “농식품부가 최근 가격 폭락이 문제가 되고 있는 쌀의 재배면적을 줄이려는데 예산의 주안점을 둔 것에 대한 고충은 이해하지만 밀이 콩이나 가루쌀에 비해 소외됐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김보람 과장은 “밀을 배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전략작물직불 자체가 식량안보와 쌀수급 문제 완화 2가지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서 작부체계상 밀을 콩이나 가루쌀과 이모작하는 쪽에 직불금을 강화하게 됐다”면서 “밀 농가들이 최대한 이모작 직불금 혜택을 받도록 우선해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 농가 의욕꺾어 밀 자급률 향상에 오히려 악재

그러나 이번 농식품부의 발표가 오히려 밀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황근 장관이 전폭적으로 밀고 있는 가루쌀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가루쌀 재배를 원하는 농가에 종자를 다 나눠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콩도 재배 토양의 특성상 모든 농가가 재배하기 힘들다. 밀 농업계에서는 밀 농가의 10-20% 정도가 콩이나 가루쌀 이모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손 이사장은 “2017년 4만 2천 원에서 3만 9천 원으로 깎인 밀 수매가가 7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비료값 등 원자재값이 폭등한 상태에서 과연 이모작을 할 수 없는 밀 농가들이 생산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수매가와 직불금 수입으로 밀 농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국산 밀 관련 시민단체인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의 송동흠 운영위원도 “밀가루 대체 효과가 극히 제한적인 가루쌀에 ha당 100만 원의 직불금이 지불되는데 비해 국산밀에 그보다 적은 50만 원이라는 직불금이 책정된 것은 생산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면서도 밀 농사를 이어온 농가에 큰 박탈감을 안기고 생산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국내 밀 재배면적은 8,259ha이다. 밀 생산량은 ha당 4톤으로 가정할 경우 3만 톤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도 2만ha에 8만 톤 생산, 자급률 3.3%를 목표로 설정했다. 현재와 같은 밀 직불금 정책으로는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제작진
그래픽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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