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달 11일, 국회의원 명의의 정책자료집을 허위로 발간해 국회 예산인 ‘입법 및 정책개발비’ 818만 원을 빼돌린 혐의(사기)로 기소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전직 보좌관 서 모 씨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서 씨는 정책자료집 발간 명목으로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타 낸 뒤 자료집 인쇄업자로부터 발간비를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세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국회의원 보좌관인 피고인이 (정책)자료집 발행 부수를 부풀려 (국회사무처로부터) 정책개발비를 청구·수령하여 편취한 사안”이라며, “피해자(대한민국)를 기망해 재물(세금)을 교부받았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사실은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가 공동기획한 <국회 세금도둑 추적> 보도에서 드러난 바 있다.
유동수 의원 보좌관 출신 서 모 씨, 정책개발비 허위 청구로 6년 만에 벌금형
2016년 12월 유동수 의원실은 ‘정책자료집 2,000부를 발간하겠다’는 내용의 지급청구서를 국회사무처에 제출했다. 국회사무처는 유동수 의원실이 지정한 인쇄업체로 정책자료집 발간비 980만 원을 송금했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을 대신해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출 업무를 맡고 있다. 개별 의원실이 지급청구서에 비용과 업체 등 견적을 작성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하면, 그 비용을 처리해 주는 형태로 국회 예산인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쓰인다.
그러나 인쇄업체는 발주받은 정책자료집 2,000부 가운데 4부만 인쇄하고, 세금 등을 제외한 818만 원을 유동수 의원실 인턴 명의 은행 계좌로 돌려보냈다. 해당 계좌는 인턴 A씨가 당시 유동수 의원실 보좌관이었던 서 씨의 지시를 받아 개설한 ‘공용’ 계좌였다. 사회초년생이었던 A씨는 2016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유동수 의원실의 행정 인턴으로 일했다. A씨는 돌려받은 818만 원을 전액 현금으로 인출해 서 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뉴스타파 보도로 국회 예산 횡령 의혹이 불거진 이후에도, 서 씨는 자신의 세금 유용 혐의를 벗기 위해 “A씨가 자신도 모르게 818만 원을 인출해갔다”고 주장했다. 유동수 의원 역시, 서씨와 함께 A씨를 고발하는 데 동조했다. 지난 2019년 유동수 의원실의 고발로 경찰 수사를 받은 A씨는 곧 경찰의 무혐의 처분에 이어,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누명을 씻었다. (기사 링크: https://newstapa.org/article/3A5cw)
유동수 의원실, 사회초년생 인턴에게 ‘횡령’ 누명 씌워
서 씨는 이후 이어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A씨가 의원실 공금을 횡령한 것 같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서 씨와 A씨가 국회 정책개발비를 주제로 나눈 대화 녹취록 ▲유동수 의원실 출신 직원(B씨)의 진술 ▲인쇄업체 직원의 진술 ▲공용 계좌 입·출금 내역 등을 근거로 서 씨 주장을 배척했다. 법원은 “서 씨가 행정 인턴에 불과한 A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며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취했고, A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변소하는 등 진정으로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책개발비 ‘의원실마다 배당된 예산을 모두 찾아 먹는 개념으로 운영’ 실토
특히 법원은 서 씨가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에 주목했다. 서 씨는 이 사건의 피의자 조사에서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비에 대해 “의원실마다 배당된 예산을 모두 찾아 먹는 개념으로 운영돼 왔다”며 “980만 원을 청구했어도 실제 집행은 일부만 했고, 나머지 차액은 업체로부터 돌려받아 의원실 운영비로 사용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서 씨의 동료 국회 직원이었던 B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서 씨가 국회에서 20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실에 배정된 예산 내역과 청구 방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형식적으로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하여 배정된 예산을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진술했다. 국회의원들의 수준 높은 의정활동을 위해 배정된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허투루 쓰이고 있다는 국회 내부 증언에 다름 없다.
더구나 서 씨는 A씨가 개설한 공용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수시로 보고받거나 점검하기까지 했다. 이를 종합하면, 서 씨 몰래 인턴 직원이 수백만 원을 한꺼번에 인출해 그대로 횡령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앞서 A씨는 지난 2020년 뉴스타파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이 사건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했다. 2019년 유동수 의원실의 고발로 이뤄진 경찰 수사가 끝났지만, 사건 처분은 계속 미뤄졌고, 검찰에 빠른 종결 처리를 호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초 보도 이후 3년이 지난 2021년 12월에야 유동수 의원을 제외하고 서 씨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로부터 다시 햇수로 3년이 지나서야 1심 판결이 나왔다. 현재 서 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