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의

대북 '휴민트'는 엉터리...증거조작에 5천만원 지급도 확인

2014년 09월 16일 22시 31분

유우성 씨 간첩조작 사건 증거위조에 관여했다는 국정원의 이른바 ‘대북 휴민트’가 그 실체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증거위조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여당과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잇달아 ‘휴민트’ 붕괴를 우려하며 국정원 감싸기에 나섰지만, 실상은 사법체계 근간을 흔든 초유의 사태를 최대한 막아보려는 방편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원 불분명 공안국 내 ‘휴민트’에 책임 떠넘겨... 결국 ‘미궁’ 노리나?

지난 15일 유 씨 관련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명석(중국명 ‘찐밍시’, 60) 씨는 자신이 피고인인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김우수 부장판사)에 증인으로 나와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을 왕 모 전 단둥시 공안국 국장으로부터 전달받았을 뿐 자신은 위조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주장대로라면 왕 씨는 중국 관공서 내부의 국정원 협력자로 대북 인적 정보망, 이른바 ‘휴민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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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협조자 김명석 씨는 왕 모 전 단둥시 공안국 국장에게 위조문건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인신문 과정에서 김 씨는 왕 씨에 대한 정확한 인적사항조차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왕 씨가 현직 단둥시 공안국 간부라고 말했지만 이후 전직 간부라고 말을 바꿨다가 법정에서는 북한과 단둥을 오가며 수산물 장사를 하는 인물이라고 진술했다. 또 왕 씨의 이름과 직책, 연락처 등의 신상정보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을 뿐 직접 물어 확인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사실상 실체가 없는 셈이다.

김 씨와 위조를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보현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은 심지어 김 씨가 수차례 소개해줬다고 하는 왕 씨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증거조작 수사팀 역시 국정원 측이 주장하는 공안국 내 협조자가 실체가 없고, 위조 역시 허룽시에는 가보지도 않고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위조 문서에 기재된 해당 부서의 명칭이나 기록 형식, 관인 등은 모두 진본과 확연히 다른데 이같은 점을 두고 볼 때 중국 공안국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이 위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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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둥시 공안국은 왕 모 씨가 근무한 적 없다고 답변했다.

<뉴스타파>는 먼저 단둥시 공안국에 전현직 직원 중에 왕 모 씨가 근무한 사실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왕 씨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근무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 정보기관 일로 처벌이나 재판을 받은 이도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결국 출입경기록 위조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의 협조자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그 협조자는 다시 실체가 불분명한 공안국 내 협조자로 책임을 떠넘긴 꼴이어서 결국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과장, 위조 의혹 제기되자 김명석 씨에게 허위진술서 작성 요구

김 씨는 자신이 지난해 12월 21일에 작성한 자필 진술서가 김보현 과장이 준비해온 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허위진술서라고 밝혔다. 김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 과장이 다 죽게 되었다면서 준비된 서류를 주고 그대로 베껴 쓰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진술서에는 출입경기록과 또다른 위조 문건인 ‘사실확인서’ 입수를 도와준 화룡시 공안국 내부의 협조자 리 모 과장이 언급돼 있다. 김보현 과장의 검찰 진술내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김 씨는 리 과장은 알지 못하는 인물이고 ‘사실확인서’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화룡시 공안국에 리 과장이 한국 정보기관에 협력한 혐의로 처벌받은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같은 사실은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리 국장이 국정원의 협력자라면 ‘증거위조’ 사태가 불거진 이후 모종의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 과장이 내세운 또다른 ‘휴민트’ 리 과장이라는 인물의 존재 역시 진위가 불분명한 것이다. 한중 사법공조 과정에서도 중국 공안국 내 협조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성 검사-위조 협조자 면담도 재판에서 확인

이날 공판에서 김 씨는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18일 유 씨 공판 담당검사인 이문성 검사와 검사실에서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8월 7일 이 같은 사실을 앞서 보도한 바 있다. 김 씨는 ‘난리가 났다’는 김 과장의 요청을 받고 지난해 12월 17일 입국해 일주일 간 그와 동행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은 김 씨의 입국을 위해 주 선양 한국영사관 이인철 영사를 통해 비자를 확보하고 항공료까지 부담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 관련기사 : [단독] 유우성 사건 담당 검사, ‘증거 위조’ 국정원 협조자 만났다

검찰, 법정에서 국정원 협조자에 뿌린 비용 내역 공개… “확인된 것만 5천만원"

국정원이 유 씨의 공판에 사용할 증거 입수를 위해 수천만원의 경비를 협조자들에게 지급했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법정에서 국정원이 협조자들에게 전달한 지출 내역을 공개했다. 출입경기록을 입수한 김 씨의 경우, 지난해 9월 26일부터 3개월간 6차례에 걸쳐 총 2200만원을 국정원으로부터 받았다.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과 관련해 1200만원, 허룽시 공안국 회신 공문과 관련해 1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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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이 위조문건 입수를 위해 협조자에게 지급한 돈은 오천만원에 달한다.

또 다른 위조문건인 ‘삼합변방검사참 답변서’를 만들어 온 김원하 씨 등에게 지급된 돈까지 포함하면 국정원이 유 씨 사건과 관련해 협조자들에게 준 돈은 확인된 것만 오천만 원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국정원이 비용 문제로 위조 문서 입수를 망설이자 이문성 검사가 ‘5천만 원이 들더라도 추진하라’며 지시했던 액수와 거의 일치한다.

※ 관련기사 : [단독]국정원 증인 “검사가 오천만 원 들더라도 유우성 기록 입수 추진 지시” 진술

게다가 국정원은 협조자 김 씨에게 돈을 지급하며 불법 환전 계좌, 이른바 ‘환치기’ 계좌를 이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간첩죄에 대해 항소심 무죄를 선고받은 유 씨에게 다시 불법 송금 혐의를 씌운 바 있는 국정원이 정작 위조 문서의 대가를 지급하며 불법외환거래까지 동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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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하 씨는 뉴스타파에 보낸 편지에서 ‘국정원이 김명석과 범죄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하 서면 인터뷰 “국정원이 김명석과 위험한 범죄 계속하고 있어”

한편 이미 위조 사실을 시인한 바 있는 또 다른 국정원 협조자 김원하 씨는 <뉴스타파>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했던 방식으로 김명석 씨도 국정원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왕 씨에 속았다는 김명석 씨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그가 국정원과 모의해 위험한 공작 범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입국해 검찰조사를 받는 중 ‘국정원에게 속았다’며 자살을 기도했던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바 있다.

김명석, 먼저 구속된 김원하 씨 가족과 접촉 시도 이유는?

김원하 씨는 김명석 씨의 입국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보현 과장의 회유에 따라 김명석 씨가 입국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김 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사업차 입국했으며 체포될지는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김 씨는 입국 전 김원하 씨의 아들에게 연락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원하 씨는 김명석 씨가 수차례 아들을 찾아오려 했지만 또 다른 국정원의 공작이 있을 것을 우려해 아들에게 만나지 않도록 당부했고 결국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명석 씨가 입국 전 국정원과 모종의 협의를 거쳤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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