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멋대로 하도급 대금 삭감'...대우조선 대외비 문건 무더기 입수

2022년 10월 12일 10시 00분

2022년 10월 12일 10시 00분

공적자금 약 12조 원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재벌기업 한화에 단돈 2조 원에 팔리게 됐다. 20여 년 만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품을 떠나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만 경영, 부실 경영의 희생양이 된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들이 받아 온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 폐업한 120개가 넘는 하청업체, 30% 이상 삭감된 하청 노동자 임금과 관련된 문제다. 뉴스타파는 2018년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자료,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관련된 각종 판결문을 입수해, 대우조선해양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세계 1위 조선기업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이다. <편집자 주>
① '임원이 멋대로 하도급 대금 삭감'...대우조선 대외비 문건 무더기 입수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이 지난 수년간 하도급 대금을 주먹구구식으로 집행해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우조선 내부 문건을 뉴스타파가 무더기로 확보했다.
아무 근거나 원칙 없이 '하도급 대금을 깎아 지급하라’는 임원의 부당 지시가 직원들에게 전달됐고, 실제 작업량과 상관없이 하도급 대금이 결정된 사실이 문서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대우조선 내부 문서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2018년 대우조선을 상대로 하도급법 위반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로 2만 쪽이 넘는 분량이다. 대우조선 하청업체 27개 사가 공정위에 불법 하도급 문제로 대우조선을 신고하고, 공정위가 현장 조사와 포렌식 등을 통해 자료를 복구하고 확인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 중에는 대우조선이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따로 내면서 법원에 제출한 문서와 이에 대한 공정위의 입장을 담은 문서 등도 포함돼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대우조선 내부 문서 일부.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 대우조선을 상대로 하도급법 위반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공정위는 이렇게 확보된 자료를 토대로 2019년 2월 대우조선에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 등의 혐의를 적용해 1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대우조선은 이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6월 시작된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은 원청인 대우조선이 저가 수주, 구조조정 등에 따른 경영 위기 부담을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한 것이 원인이었다. 하청노조는 “조선업 불황기에 부당하게 삭감된 월급을 올려 달라”고 주장했고, 하청업체들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주는 하도급 대금이 올라가지 않는 이상 하청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줄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은 “하도급 대금을 합리적 산정방식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확보한 문서들은 이런 대우조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취재 중 만난 대우조선 전 하청업체 대표들은 하나같이 “실제로 하도급 대금이 별다른 기준 없이 지급됐고, 원청이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도 일삼았다”, “턱없이 부족한 대금을 받는 바람에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파업으로까지 불거진 하청 노동자 저임금 문제의 원인은 원청인 대우조선의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전경

대우조선 임원이 아무 근거 없이 ‘하도급 대금 삭감’ 지시

2016년 1월 작성된 ‘2016년 목표시수 조정 배량 요청’이란 제목의 대우조선 사내 이메일(아래 사진 참조). 이 이메일에는 ‘하도급 대금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삭감하라’는 지시가 대우조선 임원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적혀 있다. 메일을 작성한 사람은 대우조선 해양배관설계1부에서 근무하던 이OO 차장이었다.
이 차장이 작성한 이메일에는 “상무님 지시사항”이라는 내용과 함께 “협력사(하청업체) 시수를 최소 20% 이상 제외하고 월별로 배량하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협력사의 시수, 즉 하청업체가 위탁받은 물량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깎아 하청업체에 지급할 하도급 대금을 줄이라는 내용이다.
보통 원청은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결정할 때 이 ‘시수’에 작업장 난이도 등을 반영해 만든 수치인 ‘목표시수’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차장의 이메일에는 그런 내용은 없이 ‘시수를 깍아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줄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차장은 2016년 1월 이런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9명의 부서장에게 보내고 회신을 요청한 걸로 나온다.
2016년 1월 작성된 대우조선 사내 메일.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는 시수를 최소 20% 깎아 결정하라는 지시가 상무로부터 내려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제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시수’가 깍였다는 사실을 하청업체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데 있다. 원청인 대우조선과 하청계약을 한 업체 입장에서는 시수가 얼마나 인정됐는지 알아야 원청으로부터 받을 하도급 대금을 가늠할 수 있는데, 이를 몰라 깜깜이 대금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시수가 제대로 책정됐는지, 하도급 대금이 정당하게 집행됐는지를 따져볼 수도 없었다.
이 이메일 내용은 “합리적 기준에 따라 하도급 대금을 지급해왔다”고 했던 대우조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대우조선은 2019년 12월 공정위와 행정소송을 벌이던 중 제출한 준비서면에서도 "합리적 산정방식에 따라 수급사업자(하청업체)와의 실질적 합의를 통해 하도급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래는 대우조선이 낸 준비서면 내용 중 일부.
수급사업자(하청업체)와의 충분한 정보교환 및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산정기준에 의거하여 하도급 대금을 결정, 지급했습니다. 원고(대우조선)는 수정 추가공사에 관하여 수급사업자가 수행한 객관적인 공사량을 정해진 산정 기준에 따라 평가한 후 얼마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 수급사업자의 추가적인 요청을 반영하여 최종적으로 지급되는 대금을 조정했습니다. 

- 2019년 12월 10일 대우조선해양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일부
뉴스타파는 해당 이메일을 9명의 부서장에게 보냈던 이 모 차장에게 연락해 ‘어떤 이유로 하청업체의 시수를 삭감하고, 이를 비공개하게 된 것인지’ 등을 물었다. 이 씨는 "당시 회사에서는 조선업계 사정이 어려워 시수의 가성비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걸로 기억한다. 회사 사정에 따라 시수를 조정하는 일은 자주 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에 시수 삭감 사실을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우조선 예산 상황에 따라 결정된 하도급 대금

대우조선이 하청업체의 실제 작업량에 따라 하도급 대금을 지급한 것이 아니라, 내부 예산 사정에 따라 대금을 멋대로 지급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외비 문건도 여럿 발견됐다.
2018년 3월 대우조선 협력사지원담당 사내협력사지원부가 작성한 ‘발판공종 물량단가 계약 추진(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아래 사진 참조) “동일한 환경/작업량 시수 예산의 문제로 계약금의 차이 발생”이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작업을 해도 원청인 대우조선의 예산 문제로 하청업체에 지급되는 금액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상 하도급 대금이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된 사실을 대우조선이 시인하고 있는 내용이다.
심지어 대우조선은 해당 보고서에서 “이상과 같은 사유로 협력사(하청업체)가 인력 운영, 자율 경영이 어려워져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적고 있다. 멋대로 하도급 대금을 정하는 행위가 이후 어떤 파장을 가져올 것인지를 원청인 대우조선이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2018년 3월 대우조선해양 협력사지원담당 사내협력사지원부가 작성한 ‘발판공종 물량단가 계약 추진(안)’ 보고서.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더라도 예산문제로 하청업체에 지급되는 금액이 차이가 나고 있다고 적혀 있다.
2014년 12월 대우조선 내부에서 작성된 ‘사내 생산 협력사 경쟁력 향상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아래 사진 참조) 역시 마찬가지. 이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대우조선) 직영 공정 관리자는 추가 작업에 대한 하청업체의 요청 시수가 다소 합리적이라고 판단. (하지만) 보상은 15~20% 수준으로 구두 조사되어 고질적 현상으로 고착화.

- 2014년 12월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 작성된 ‘사내 생산 협력사 경쟁력 향상 방안’보고서 일부 
이 문서에는 이어 "예산 부족으로 보상은 미흡"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하청업체가 추가 작업을 해 시수가 조정되면 당연히 하도급 대금이 늘어나야 하지만, 예산이 없어 보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14년 12월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사내 생산 협력사 경쟁력 향상 방안’ 보고서. ‘하청업체의 요청 시수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보상이 미흡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런 증거들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과징금 취소 소송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7월 “대우조선이 예산에 따라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 대우조선이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는 것을 전제로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청 노동자 저임금 문제, 낮은 하도급 대금 때문”

대우조선 하청업체 전 대표들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대외비 문건 내용처럼 하도급 대금 집행에 원칙과 기준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우조선이 내부적 기준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통보하고 집행했다”, “원청(대우조선)과 사이가 틀어지면 도산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대우조선이) 예산이 부족하다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금을 더 챙겨주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온데간데 사라졌습니다. 새벽 3시에도 대우조선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으며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건 엄청난 빚뿐이었습니다. 

- 대우조선해양 전 하청업체 A사 대표
대우조선이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 갑질을 벌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산하는 과정에서 합의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정산 합의가 다음 계약에 영향을 주는 데다 당장 대금을 받지 못하면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적은 대금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산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공사대금이 집행되지 않아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우조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우조선은 이 점을 악용해 적은 하도급 대금을 쥐주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으려 했습니다. 

- 대우조선 전 하청업체 B사 대표
하청업체 전 대표들은 파업으로 불거진 하청 노동자 임금 삭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우조선의 주먹구구식 하도급 대금 지급’에 있다고 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였던 C사 대표는 “원청이 턱없이 부족한 대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청 노동자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려면 원청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에 하도급 대금 산정 기준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대우조선 측은 "뉴스타파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지난 취재 시에도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할 게 없다"고 했다. 언론 담당 창구를 통해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연락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작진
취재이명선 홍여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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