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적'을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2015년 01월 07일 15시 35분

2차 대전 후 서독은 과거 정당을 탄압했던 나치를 거울삼아 독일 기본법에 정당설립의 자유를 명시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당설립의 자유라는 법적 제도를 이용하여 나치와 같은 정당이 다시 등장할 것을 우려하여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하에 위헌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 조항 역시 포함시킨다.

목적이나 추종자의 행태에 있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 또는 폐제하려 하거나 독일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려고 하는 정당은 위헌이다. 위헌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연방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독일기본법 제21조 2항)

이를 근거로 1951년 나치즘을 계승한 사회주의제국당(SRP)이 해산된다. 동시에 서독 정부는 독일공산당(KPD)의 해산을 헌재에 요청한다. 사회주의제국당 해산의 경우엔 이견이 없었으나 독일공산당 해산에 대해서는 논란이 발생한다. 독일 공산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행동이나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구호가 과격했을 뿐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헌재는 독일공산당의 정강에 명시된 ‘마르크스 레닌 노선’을 근거로 독일공산당을 해산시킨다. 비록 당장의 계획, 행동은 없으나 그러한 ‘의도를 표방한 것’이 정당 해산의 근거가 된 셈으로 이 판결은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왜 이토록 무리한 판결을 한 것일까? 더구나 당시 독일공산당은 냉전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 확산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서독 국민들에 의해 선거로 심판받은 상황이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서독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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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집권 중이던 아데나워 정권은 소위 ‘독일 재무장’을 추진 중에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던 이들이 독일공산당이었다. 비록 의회 내에서의 힘은 미약했으나 ‘반전, 평화 운동’에 있어서는 독일공산당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독일공산당의 해산은 ‘반전, 평화 운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나아가 독일 재무장에 반대하는 수많은 인사들에 대한 정보기관의 무차별 사찰도 진행된다. 애초에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겠다며 시행한 독일공산당의 해산이 역설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경직시키는 결과로 귀착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해산된 독일공산당은 이후 끊임없이 재창당 시도를 감행한다. 정당은 해산되었으나 ‘사상’은 해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은 것은 정당 금지를 통해 특정 사상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경험이었다. - 볼프강 호프만림, 전 연방헌재 재판관 -

1968년 독일공산당은 DKP라는 이름으로 다시 창당한다. 과거의 이름이었던 KPD와 사실상 거의 같은 이름이었고 정당의 가치나 방향성 역시 흡사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 중이던 빌리 브란트 정권은 아데나워 정권과는 달리 DKP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이 역시 당시 독일을 둘러싼 정치 지형과 관련이 있다. 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1970년대, 미국 핵무기의 서독 반입 가능성 등이 언급되면서 자칫 독일이 냉전의 화약고로 전락할 위험이 커지던 시기였다.

이 때 빌리브란트는 공산국가들과 각을 세우는 방식을 구사했던 지난 정권과 달리 적극적 화해 정책을 구사한다. 소위 ‘동방정책’으로 불리는 화해 평화 정책의 틀 속에서 DKP의 재창당이 인정된 것으로, 이는 공산국가들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이자 동독의 자연스러운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시장경제 기반의 민주주의’가 ‘일당독재로 전락한 공산주의’를 압도한 ‘현실적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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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DKP는 꾸준히 존재감을 상실해 2013년 총선에서 1% 미만의 지지율에 그치게 된다. ‘합법화 된 독일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소멸해 버린 셈이다. 반면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1990년 통일 독일을 이루는 초석이 된다. 진보, 보수 정권을 뛰어넘어 일관되게 추진된 통일 정책이 맺은 소중한 결과였다.

한편 나치즘을 계승했던 신나치당 역시 해산된 지 10여년 후에 독일민족민주당(NPD)으로 부활한다. 독일공산당과 달리 해산에 별 이견이 없던 신나치당. 실제로 2002년에 이어 2013년에도 헌재에 해산 요청이 접수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최근 독일 정부는 신나치당 해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강제해산 추진이 의회세력으로는 미미한 신나치당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 -독일 내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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