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감시

1년 전 정국의 블랙홀 ‘이석기’사건… “RO 실체 불인정, 내란음모 무죄"

2014년 08월 12일 0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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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해 8월. 이석기 의원실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정국은 블랙홀처럼 국정원발 ‘내란음모’ 사건에 빨려 들어갔다. 국정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해 9월 2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한다’, △’주체사상을 연구, 전파, 보급한다’, △’남한 사회의 자주, 민주, 통일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의 강령을 가진 지하혁명조직 RO를 결성해 국가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내란을 모의했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아 항소심 재판부는 문제의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자체가 미지수이며 검찰이 내놓은 증거들로는 이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발표를 뒤집은 선고 결과에 공소를 유지해온 검찰과 진보정당에 대한 공세를 벌이던 정치권은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석기, 항소심 징역 9년...1심보다 3년 감형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11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여죄만을 적용해 징역 9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 1심에 비해 3년 감형된 형량이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흥열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 이상호 수원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은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그리고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한동근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이 각각 선고되면서 형량이 1심보다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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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폭력 논의 비난 마땅하지만 내란음모 증거 부족”

재판부는 내란 음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내란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명백한 준비 행위와 내란 행위의 실질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해 3월과 5월 광주시 곤지암 청소년수련원과 합정동 마리스타 수녀원에서 있었던 두 차례 회합에서는 내란 행위에 대한 이 의원의 일방적인 결심이 전달됐을 뿐 내란 행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만일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을 일으키기로 합의했다면 이후 당연히 있어야 할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의 폭력적인 방안까지 논의한 것은 대한민국의 존립,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형법에서 정한 내란음모의 구성요건인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하혁명조직 RO 조직 체계는 제보자 개인적 추측에 불과"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존재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로는 RO의 결성 시기와 과정, 조직 체계, 회합 참석자 130 여명의 가입 여부 등의 활동 내역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RO가 존재하고 이 의원 등이 그 구성원이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검찰 공소사실의 핵심증거인 제보자 이 모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이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말단 세포원이었던 이 씨가 조직의 다른 구성원이나 체계는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회합 참석자들이 RO의 구성원이라는 이 씨의 진술, 그리고 RO의 성격, 구성원 및 조직 체계 등에 대한 설명은 개인적인 의견 내지 추측에 불과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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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재판부는 회합 당시 이 의원의 발언은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선동한 것이라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현저히 일탈한 내란 선동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혁명동지가’, ‘적기가’ 제창과 이적표현물 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역시 1심 판결 그대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비록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선동한 대로 진행됐다면 극심한 사회 혼란과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며 “국가 지원을 받는 공적인 정당 모임에서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등에서 그 죄질이 무겁고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크게 당혹해하는 검찰과 여당 “상고심 지켜보겠다"

1년 동안 대대적인 수사와 재판을 진행해 왔던 국정원과 검찰은 크게 당혹해하고 있다.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검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항소심 재판부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에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진보 정당에 대한 공세를 벌여온 여당도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을 꾀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려 한 사건의 충격적 전모를 고려하면 이번 판결은 의아스럽다”며 “대법원 최종심이 남아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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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판결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합진보당에 이른바 'RO'라는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하며 130여 명의 당원들이 내란을 음모하였다는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색깔론, 말살론은 공중분해되었음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 단장인 김칠준 변호사는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의 4가지 주요 근거인 △RO의 존재, △사전 준비회의, △회합 당시가 전쟁임박한 시기였다는 것, △내란음모의 합의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부정했다며 “그럼에도 재판부가 내란선동을 유지한 것은 현 시기의 정치적 중압감의 표현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 미칠 듯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와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이번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청구한 법무부는 이석기 의원과 RO가 진보당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의 내란음모 행위는 당 차원의 활동으로 해산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통합진보당 측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반국가단체 활동으로 대한민국 전복을 일으킬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던 핵심 논리가 RO 실체 여부였는데 이번 항소심 판결로 무너졌다”며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 유리하게 작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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