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13년 집회방해와 검은 옷 청년들

Aug. 03, 2023, 08:00 PM.

며칠째 퍼붓던 장맛비가 그쳤다. 땡볕 아래 열기를 품은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엉긴다. 지난달 19일 오후 2시경, 서울의 기온은 32도까지 치솟았다. 현대차와 기아차 로고가 꼭대기에 박힌 쌍둥이 빌딩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서른 명 가까이 줄지어 섰다. 어깨띠를 두르고 ‘노사관계 선진화로 기업경쟁력 강화’, ‘새로운 노사문화 글로벌 최고기업’ 같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었다. 
청년들의 얼굴은 앳되다. 20대 초반, 많아도 중반 정도로 보인다. 이들은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 본사를 둘러싼 인도 위에 대략 2~3m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어떤 청년들은 가로수 그늘 밑을 차지한다. 가끔 텀블러나 생수병을 들어 목을 축인다. 가로수가 없는 구간에 선 청년들은 모두 똑같은 장우산을 받쳐들고 있다. 어디선가 막 지급받은 듯, 상표도 포장 비닐도 그대로인 새것이다. 현대차그룹 본사 앞 염곡사거리 모퉁이에서 ‘검은 옷 청년들’이 뉴스타파 취재진의 카메라를 노려 봤다.
주민들에게 이 청년들의 모습은 익숙하다. 한 지역 주민이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입을 열었다. 
“현대자동차에 데모하는 것 같은데, 그것밖에는 몰라요. 한 1년, 2년 전에도 (청년들이)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조용히 서 있고 ‘정의선 회장 썩었다, 어쨌다’ 막 그런 거 쓰여 있는 것만 봤어요.”
이 주민은 ‘검은 옷 청년들’이 현대차에 부당함을 호소한다고 생각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거리로 나왔을까, 그런 생각만 해요. 뒷이야기는 모르죠.”
검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불법집회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 인도에 줄지어 서 있다.

현대차 사옥 앞 집회 저격하는 의문의 기사들

6월 28일자 서울경제신문 사회면에 ‘현대차 사옥 앞에 있던 시위자의 불법 천막이 10년 만에 철거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주민 일상회복 10년이나 걸렸다”는 제목을 걸었다. 
이 기사가 나오기 2주 전의 일이다. 서울 서초구청은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가 현대차그룹 본사 주변에 설치한 현수막과 천막 등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서울경제는 6월 28일자 기사에서 행정대집행을 칭찬하는 주민의 글이 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고 소개했다. “난잡한 현수막과 텐트 등이 들어서 무법천지처럼 보였다. 구청의 원칙을 지킨 행정처분에 구민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적었다는 것이다.
6월 28일자 서울경제신문에 ‘현대차 사옥 앞에 있던 시위자의 불법 천막이 10년 만에 철거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이 내용은 공교롭게도 서울경제 지면 기사가 나오기 바로 전날인 6월 27일 매일경제, 뉴스1 등 10여 개 매체의 온라인 기사 안에도 복사해 붙인 듯 똑같이 등장한다.
하지만 구청 홈페이지 게시판을 다 뒤져도, 기사 속 주민이 썼다는 글은 검색되지 않았다. 홈페이지 관리를 담당하는 서초구청 홍보담당 직원도 못 찾았다. 구청 직원은 “저희(홈페이지에)가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이 몇 개 없다. 민원 글을 올리셨을 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걸 비공개로 올리셨을 수도 있다. 비공개로 하셨으면 당연히 못 보여드린다”고 말했다.
결국 기자도, 구청 담당자도 찾지 못한 홈페이지 게시글을 십여 개 매체 기자들이 동시에 판박이처럼 인용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경제 6월 28일자 기사에는 또 다른 익명의 서초구 주민도 등장한다. 기사 속 주민이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한 현수막과 볼썽사나운 천막 등 어지럽게 널려 있던 시위 설치물이 정리되니 주변이 달라졌다. 시끄러운 소음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됐다”고 말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주민의 발언 역시 같은 날 나온 다른 매체, 다른 기자가 쓴 기사에 똑같이 인용됐다. 이런 말을 한 주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기사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여러 기자들이 토씨까지 같은 말을 하는 주민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 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같은 서울경제 기사는 익명의 법조계 전문가 발언도 실었는데, 이 발언 역시 같은 날 출판된 매일경제, 뉴스1, 이데일리 등 다른 매체 기사에 그대로 실렸다.

도로로 밀려난 기사 속 ‘불법 천막’의 주인

현대차그룹 본사 앞은 현대차 또는 기아차와 분쟁하는 사람들이 집회·시위를 하러 가장 먼저 달려오는 곳이다. 주류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비난한 ‘현대차 앞 불법 천막’의 주인, 박미희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2013년 봄, 기아차 대리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박 씨는 대리점의 부당판매 비리를 내부고발한 뒤 해고됐다. 그리고 그 해 10월부터 10년째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하며 원직 복직을 외치고 있다. 관할 구청인 서초구청은 박 씨의 시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행정대집행에 앞서 박 씨는 서초구청으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다. ‘현대차 본사 주변 인도에 설치한 천막 때문에 통행에 지장이 생기고 민원 신고가 많으니 천막을 자진철거하라’는 내용이 적힌 계고장이었다.
박 씨는 구청의 경고를 납득하지 못했다. 박 씨는 “이곳은 IC랑 연결되는 곳이라서 24시간 있어도 통행하는 사람이 30명 정도다. 인도를 충분히 확보하고 누구보다 깔끔하게 날마다 주변을 청소했다”고 말했다.
해가 갈수록 박 씨의 분노는 커져 간다. 정체불명의 ‘검은 옷 청년들’ 때문에 현대차그룹 본사 주변에서 집회를 열 공간을 좀처럼 확보하지 못해서다. ‘검은 옷 청년들’은 주변 인도를 장악하고 박미희 씨 같은 사람들이 집회·시위 할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본사 정문 앞과 주변 인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박 씨는 매주 수요일 도로 한복판 안전지대에서 집회를 연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안전하지 않다. 박 씨와 동료들이 서 있는 그곳은 차량들이 사거리와 고속도로 IC를 오가는 위험한 공간이다.
기아자동차 대리점 해고자 박미희 씨가 7월 19일 저녁 현대차그룹 앞 사거리 안전지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현대차의 집회 장소 독점과 ‘검은 옷 청년들’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7월 4일 밤 9시경,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선 비바람이 모로 내리쳤다. 해고노동자의 집회 선전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옆으로 ‘검은 옷 청년들’이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빗물을 흠뻑 먹어 힘없이 늘어진 현수막을 남녀 두 명이 붙잡았다. ‘불법집회 OUT 정당한 집회를 보장하고 집시법을 준수하라’는 구호가 겨우 읽혔다. 현수막이 늘어지거나 말거나 ‘검은 옷 청년들’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꽂혀 있다.
7월 4일 밤, 검은 옷을 입은 남녀 두 명이 현대차 본사 옆 인도에서 비를 맞으며 '불법집회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오전 7시 50분경, 현대차그룹 직원들이 사옥 안으로 휩쓸리듯 들어갔다. 짙게 그을린 얼굴의 ‘검은 옷 청년들’은 계속 팻말을 들고 있었다. 출근길 직원들은 이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청년은 먼산만 보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또 한 무리의 ‘검은 옷 청년들’이 나타나 어깨띠와 팻말을 넘겨 받았다. 임무 교대 시간이었다.  
‘검은 옷 청년들’은 대체 왜 밤낮 없이 현대차 사옥 앞을 지키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서울 서초경찰서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올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7개월간 현대차그룹 본사 인근 지역의 집회 신고 내역을 확인해 봤다. 
서초경찰서 집회 신고 내역을 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가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대회’라는 이름의 집회를 매일 열고 있다. ‘검은 옷 청년들’이 들고 있던 현수막 내용과 같은 이름이다. 현대차는 매일 99명 규모로 1건의 집회를, 기아차는 매일 70명과 99명 규모인 2건의 집회를 본사 주변에서 개최한다고 신고해 왔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신고한 집회 장소는 모두 6구간으로,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 주변 전체가 포함된다. 기아차 내부고발자 박미희 씨가 집회를 하던 곳과 천막을 설치했던 자리도 모두 현대차가 장악했다. 현대차그룹이 조직적으로 집회를 기획하고, 수십 명씩 ‘검은 옷 청년들’을 동원해 장소를 독점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서초경찰서에 신고한 ‘국가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대회’ 집회 장소 목록.
현대차그룹이 '검은 옷 청년들'을 동원해 집회하는 장소는 본사 사옥을 둘러싼 인도 전역이다.
가짜 집회를 여는 현대차그룹의 목적은 법원 판결문으로 확인된다. 박미희 씨가 ‘현대차 측이 벌이는 집회 방해를 금지해 달라’고 지난 2016년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 결정문이다. 법원은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결정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현대차그룹) 소속 직원 또는 제3자로 하여금 차량, 몸, 피켓으로 이를 가로막으면 안 된다.

서울중앙지법 / 2016.6.3
이 같은 법원의 결정은 현대차그룹 본사 정문 왼편 인도 10m 구간에 적용되는 명령이다. 여기서만큼은 박 씨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시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정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 구간에도 현대차그룹이 매일 ‘검은 옷 청년들’을 세워두기 때문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이 정한 “각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경찰의 책임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신청된 집회라면, 참가자 수가 많은 집회에 우선권을 주는 관행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경찰행정 관행을 이용한다. 박 씨의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 집회 참가자 수를 270명 가량으로 부풀려 신고해 왔다.
박미희 씨는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관할인 서초경찰서를 상대로 중복 신고된 집회가 모두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인권위는 경찰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 이렇게 적었다. 
(경찰은) 박미희 씨 측이 집회를 방해받지 않고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하여야 했으며, 현대차 측 집회 참여자들의 위법한 자력구제 행위에 대해 엄격히 지도하고 제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관들은 중복집회에 관한 사항이라 경찰의 업무 범위 밖이라며 적극적인 조치를 보이지 않았다. 현대차 측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상 보장하는 박 씨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

- 인권위 결정문 (2022.11)
인권위는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에게 직무 교육을 실시하라고도 권고했다. 하지만 서초경찰서는 인권위의 판단과 권고를 전면 무시하고, ‘권고 수용 거절’을 통보했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6월부터 거의 두 달간 다양한 시간대에 현대차그룹 본사 앞을 찾아가 ‘검은 옷 청년들’, 정확히 말해 ‘현대차그룹이 동원한 집회 용역’의 실제 운용 인원을 확인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10여 명, 많게는 30명 가까운 청년들이 본사 건물 앞 인도에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서초경찰서에 신고한 일일 집회 참가자 수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현대차그룹이 ‘집회 우선권’을 주장하기 위해 집회 참가자 수를 작게는 9배, 많게는 20배 이상 부풀려 허위 신고했던 것이다.

‘오타’까지 같은 ‘판박이 기사’들, 시위 비난 한목소리

앞서 살펴본 일부 언론의 ‘판박이 기사’들은 기아차 내부고발자 박미희 씨 같은 대기업 앞 시위자들을 비난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현대차그룹이 ‘청년 용역’을 동원해 조직하는 집회의 실체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지난 5월 10일에도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 십여 개 매체가 일제히 같은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박미희 씨 등 대기업 앞 시위자들이 욕설과 혐오 표현이 포함된 현수막을 내걸고 집회·시위를 벌이고 있어 기업과 시민이 피해를 본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아래는 지난 5월 10일 하루 동안 나온 해당 기사들 목록이다.   
지난 5월 10일 10여 개 언론매체가 현대차 사옥 앞 집회·시위를 비판하는 '판박이' 기사를 동시에 출판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무성의하고 단순하다. 누군가가 만든, 기사체 문장으로 구성된 자료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관계자나 전문가 발언 내용까지 똑같은 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해당 기사들 속에는 “수 년째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대기업 관계자가 한 명 등장한다. 그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시위가 있다. 현행법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 익명의 관계자 발언은 같은 날 뉴스1, 문화일보,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에 토씨만 조금씩 바뀌어 동시다발적으로 실렸다. 
심지어 이들 기사들은 오타까지 똑같았다. 누군가가 만든 자료를 복사해 붙였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아래는 오타까지 똑같은 각 매체의 기사 내용 중 일부다. 표준어 ‘시달리고’를 ‘시달라고’로 잘못 쓴 사례다. 
  • 수년째 시위에 시달라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내세워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억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 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 2023.5.10)
  • 수년째 시위에 시달라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 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머니투데이)
  • 수년째 시위에 시달라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 상에서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이데일리)
뉴스타파가 확인한 5월 10일자 기사들에는 익명의 ‘법조계 관계자’도 등장한다. 그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집회·시위권을 부정하는 듯한 위험한 발언이지만, 검증이나 반론은 없었다.   
  •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스1 / 2023.5.10)
  •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 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법원 “현대차, 집회 신고 남용…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방해”

‘검은 옷 청년들’에게는 근무 중에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없는 듯 보였다. 어깨띠, 팻말, 현수막에 적힌 구호를 외치는 청년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침묵’ 지침이 내려져 있었다. 기자가 "무슨 일로 나와 있는지" 등을 묻는 질문을 아무리 던져도 "가세요. 가세요", "잘 모릅니다. 그냥 하루 오라고 해서" 같은 답만 할 뿐이었다. 보통의 시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7월 19일 오후, 박미희 씨가 정기집회를 열기 위해 도로 위 안전지대에 나타났다. 박 씨와 동료들은 안전지대로 집회물품을 나르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검은 옷 청년들’이 분주해졌다. 현대차그룹 측 집회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돌아다니며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포진해 있던 청년들이 순식간에 현대차그룹 본사 앞 염곡사거리 모퉁이로 몰려왔다. 박 씨가 서 있는 안전지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잠시 후, 경찰차 두 대가 도착했다. 경찰 두 명이 안전지대로 다가가 박 씨에게 말을 걸었다. 경찰들은 “현대차 측 집회가 ‘선순위 집회’라 어쩔 수 없다. 우리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들은 박 씨를 인도로 데려온 뒤 폴리스라인을 두르고 현장을 떠났다.
오후 6시 50분경, 박 씨가 마이크를 잡고 집회 시작을 알렸다. 반대편에서는 소음 측정 마이크가 등장했다. 현대차그룹 측 카메라 두 대가 박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집회 내내 촬영했다. 박 씨가 ‘검은 옷 청년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쓸데없는 짓에 고객들의 차량 가격이 올라갑니다. 현대(차)에서 저 많은 애들, 쟤네한테 돈 주는 거 아깝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노동자로서 땀 흘려서 일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면 우리도 마음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검은 옷 청년들’은 박 씨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7월 19일 오후, 박미희 씨가 정기집회를 준비하자 현대차 측이 집회 용역들이 주변으로 집중 배치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그룹이 매일 조직하는 용역 집회를 ‘알박기 집회’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현대차가 타인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실제 집회를 개최할 의사 없이 오로지 다른 집회의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장소를 선점할 목적으로 옥외집회에 대한 신고제도를 남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과 집시법이 보장하는 집회를 실질적으로 방해하는 것…(중략)...현대자동차 측의 선행 신고로 인해 현대자동차와 관련이 있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현대자동차 정문 앞 등을 집회장소로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라고 보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 2018.1.25
재판부는 또 현대차가 사옥 경비를 집회인 것처럼 눈속임하고 있다고 봤다.
현대자동차 측에서 신고한 일련의 집회가 신고한 집회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면, 그것은 당해 집회가 헌법과 집시법상의 집회라기보다는 현대자동차의 경비업무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 2018.1.25
사옥 경비에 불과한 현대차의 가짜 집회는 13년 전인 2010년부터 시작됐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도, 푹푹 찌는 한낮에도 ‘검은 옷 청년들’을 동원해 집회·시위자로부터 현대차그룹 본사를 지킨다. 현대차그룹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이런 맥빠지는 답변을 보내왔다.
검은 상하의 복장의 집회 참여자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헌법과 법률에 의거,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집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타인의 집회를 방해할 목적은 없다.” (현대자동차그룹 답변서 / 2023.7.18)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검은 옷 청년들’이 종일 땡볕에 서 있는 대가로 받는 일당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여만 원 수준으로 확인됐다. 매일 약 30명의 용역 청년들이 2시간마다 교대하며 24시간 현대차 사옥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일당 10만 원씩만 받는다고 가정하면, 현대차그룹은 가짜 집회를 열기 위해 인건비로만 한 해 10억 원이 넘는 돈을 쓴다는 계산이 나온다. 민간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지급하는 전체 용역수수료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은 매일 30명 규모의 '검은 옷 청년'들을 '가짜 집회'에 동원하기 위해 매년 10억 원이 넘는 비용을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집회 규제’ 사설·칼럼까지 광고주 현대차에 헌정

뉴스타파는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의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박 씨의 집회로 인근 시민과 현대차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사들이 올해 얼마나 나왔는지도 조사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뉴스 검색 제휴 매체를 기준으로 올해 1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8개월간 온라인으로 발행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검색 키워드는 ‘현대차 집회’, ‘양재동 시위’, ‘불법 천막’ 등이다. 검색된 결과 가운데 ▲동일한 기사 구성과 논지 ▲동일한 익명의 시민·전문가 인터뷰 발언 ▲동일 해외 사례를 갖춘 기사만 선별해 집계했다. 총 155건의 ‘판박이 기사’가 확인됐다. 일반 기사 뿐 아니라 사설, 칼럼을 포함한 수치다. 
집계된 ‘판박이 기사’의 제목과 본문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주제와 소재를 부각하는 기사들이 같은 날 또는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무더기로 보도된 사실이 확인됐다. 예컨대 4월 둘째 주에는 두 차례(10~11일, 13일)에 걸쳐 ▲현대차 사옥 앞 천막 농성의 불법성 ▲장송곡 따라 부르는 아이들 같은 소재를 제목과 기사 본문에 똑같이 앞세웠다. 4월 셋째 주에는 18~23일 엿새간 집중적으로 ▲대기업 앞 집회의 소음 문제 ▲집회 물품의 위험성 등을 부각하며 집시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소재만 바꿔가며 대기업 앞 집회를 공격하고 집시법 개정을 종용하는 기사들은 이후에도 매주 쏟아졌다. 5월에는 둘째 주(10일)와 셋째 주(15일), 넷째 주(22일)에 각각 하루씩 비슷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온라인에 등장했다. 6월에도 첫째 주(1~2일)와 둘째 주(5일), 셋째 주(12~13일), 넷째 주(22~23일), 다섯째 주(27일)까지 한 주도 빠짐없이 비슷한 논지의 기사들이 동시에 나왔다. ‘집중 출판 시기’에는 적게는 8곳, 많게는 20곳의 언론사가 같은 날, 같은 내용의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 서울신문,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은 문제의 기사들을 지면에도 실었다. 서울신문, 디지털타임스는 다른 대기업 앞 집회 사례를 추가해 신문 한 면 전체를 채우는 기획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사설과 칼럼까지 실었다. 역시 현대차가 바라는, 현대차그룹 본사 앞 집회를 비판하고 집회·시위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판박이 기사 쓴 기자들 “내부에서 받은 자료…정무적인 이유로”

뉴스타파는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연락해 '왜 현대차의 입맛에만 맞는 판박이 기사를 쓰게 됐는지' 물었다. 중앙 일간지 소속 A 기자는 “직접 알아보셔야지, 내가 직접 답변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지 소속 B 기자는 “불법 천막, 그 이슈가 계속 있었다. 제보를 받고 쓴 기사”라고 말했다. 
독자 제보로 기사를 썼다고 해명한 B 기자는 박미희 씨가 실질적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도 집회 참가자를 20명으로 부풀려 신고해 ‘꼼수 집회’를 한다는 기사를 지난 6월 1일에도 쓴 바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확인한 것처럼, 똑같은 현장에서 매일 수백명씩 집회 참가자를 부풀려 신고한 것은 박 씨가 아닌 현대차그룹이었다.
몇몇 기자는 내막을 털어놨다. 경제지 소속 C 기자는 현대차에서 직접 받은 보도자료는 아니라면서도 “(자료를) 누군가 뿌려준 것 같다. 회사 내에서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온라인 매체 소속 D 기자는 “그냥 현대차에서… 뻔한 것이지 않냐, 같은 사진 같은 내용에…”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발제하거나 (자료가 직접) 나한테 온 것은 아니고 여러 정무적인 이유로 쓰게 됐다. 회사 내부에서 기획 자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D 기자는 본인의 기사에 ‘독자 제공’이라고 표기한 현장 사진에 대해서도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자들의 솔직한 증언을 정리하면 ▲소속 매체 안에서 현대차와 관련된 특정 자료를 전달받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기사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각 매체 간부 또는 데스크가 해당 기자에게 기사 작성을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와 통화한 기자들은 모두 현대차 출입 기자다. 그리고 현대차그룹은 이들이 속한 매체의 핵심 광고주다.

‘검은 옷 청년’, 뉴스타파를 찾아오다

7월이 끝나가던 어느 날, 취재팀에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뉴스타파 기자들이 현대차그룹 본사 앞을 계속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은 옷 청년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할 말이 많다”고 했고, 뉴스타파를 직접 찾아와 카메라 앞에 앉았다. 원래 직업은 경호원이라고 했다.
그는 “자괴감이 많이 든다. 진짜 거기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이) 집회 신고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집회 업무는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진짜 어떤 걸 위해서 집회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말 그대로 그 사람들(시위자)을 막으려고 회사를 경호하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저희가 시위하고 집회하려고 경호원이 된 건 아니잖아요. 경호원 중에 일반인들도 많이 있지만, 옛날에 안 좋게 표현하면 ‘건달’이었던 친구들도 좀 바르게 살고 싶어서 경호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런 시위 현장을 보내버리면 저희가 옛날에 살던 거랑 다를 게 뭔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거죠.

-현대차 가짜집회 참가 경비용역
그리고 이 ‘검은 옷 청년’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증언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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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지윤 홍우람
영상취재김기철 이상찬 정형민 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