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유통업자니, 임대업자니?

2014년 11월 18일 21시 54분

다음 주로 다가온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태평양 건너 미국 유통업체들의 할인 행사에 해외직구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에서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이 이처럼 해외 할인 행사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물론 가격 차이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를 ‘호갱님’으로 만드는 한국의 유통구조

‘블랙프라이데이’는 원래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성탄절을 다가오면서 신상품이 대거 들어오는 시기에 유통업체들이 1년 동안 가지고 있던 재고 상품들을 큰 폭의 할인을 통해 소진하기 위한 행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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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통업체들은 대부분 제조회사로부터 상품을 구매해 파는 ‘직매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백화점이나 아웃렛과 일부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부분 ‘특정매입’이란 방식을 쓴다. 이는 의류 제조회사가 유통업체의 대규모 점포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고 재고는 스스로 책임지는 방식이다. 판매 점원의 급여는 물론 인테리어 비용, 매장 관리 비용 등도 모두 입점업체가 부담한다. 대신 유통업체측은 상품 매출액에 일정한 비율의 판매 수수료를 책정해 수익을 올린다. 유통방식에 따라 수수료율이 다르지만 아웃렛이나 백화점의 판매수수료는 20%~40% 수준이다.

문제는 유통재벌이 독과점한 국내 유통시장

그러다보니 유통업체는 점점 더 높은 수수료와 각종 비용을 입점업체에 떠넘기고 있고 입점업체는 적정 수입을 갖기 위해 물건 값을 슬그머니 올리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유통업체들이 유통업의 본질인 상품 구매와 판매에 거의 관여를 안 하고 수수료란 이름으로 사실상 임대료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널리 퍼지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합리적 가격을 제공하기가 힘든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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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가 본격화 된 대형 복합쇼핑몰

지난 달 개장한 제2롯데월드는 백화점과 별도의 쇼핑몰(롯데월드몰), 식당, 영화관 등이 다 함께 있는 복합쇼핑몰이다. 뉴스타파는 이 곳에 입주한 한 패션업체의 임대계약서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확인한 롯데월드몰의 월 임대료는 대략 매출액의 20% 수준. 그런데 단서조항으로 최소임차료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매출이 오르면 정률제로 임대료를 받고, 매출이 저조하더라도 기본 임대료는 받겠다는 것이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쇼핑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는 복합쇼핑몰을 중심으로 이런 식의 불평등한 계약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상인 수익 내기 힘든 유통구조

대형유통기업들의 ‘특정매입’ 방식 유통구조가 확산되면서 중소상인들은 자영업자로서 기대 수익을 빼앗기고 사실상 점포 관리 직원 형태로 전락하게 된다. 대규모 점포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상권 침체로 외부에서 매장을 계속 운영하기 힘들어지면서 대기업 유통업체가 만든 시설에 입점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결정권이나 수익구조가 완벽하게 대형유통업체와 의류제조업체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이들 점주들은 철저한 ‘을’의 지위로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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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청과 롯데쇼핑의 상생협약의 일환으로 이천시 중앙통 상가에서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에 입점한 상인들이 입점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대부분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외부 대리점에서는 매출액의 30%~35%의 수익을 올렸던 대리점주들은 아웃렛에 들어오면서 10% 전후의 (롯데측 수수료는 20% 수준) 수수료를 받게 됐다. 여기에서 매장 관리비와 판매점원들의 급여를 주고 나면 대리점주(중간관리자)의 수익은 겨우 인건비를 건지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조철현 이천시 상인회장은 “몇몇 좋은 수수료 조건을 받고 들어가 수입이 난 대리점주들의 경우 1년이 도래하는 시점에서 수수료율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며 아웃렛에선 장사가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기대 이상의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중소상인, 의류회사 모두가 죽는 유통 생태계

유통 재벌들이 사실상 부동산 개발과 임대업 방식으로 사업을 하면서 유통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독과점 시장에서 과도한 수수료(임대료) 수입을 통해 대형유통업체들이 수익을 극대화하면 의류제조회사들은 적정 수입을 얻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을 기대하기도, 중소상인들이 노동의 대가를 받기도 힘들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형소매업체(유통업체)의 등장은 도매 등 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 가격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유통학의 원리였는데 독과점 현상이 심각한 한국 상황에서 대형유통업체들이 유통이 아닌 임대업 방식으로 받는 과도한 수수료(임대료)는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의 유통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도 오랫동안 임대업식 사업 방식을 고집하면서 스스로 ‘상품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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