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

2015년 05월 06일 18시 21분

대부분의 독재자가 군사 쿠데타를 통해 탄생했다면, 이번 미니다큐의 주인공인 살라자르는 ‘교수’라는 이색적인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독재 방식은 그 어느 독재 정권보다 치밀했고, 그 결과 무려 36년 장기집권이란 엄청난 성과(?)를 달성해 낸다. 그의 영악한 통치 방식은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군사 정권의 집권 전략으로 차용될 만큼 탁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러한 통치 방식을 가능케 했던 당시 포르투갈 국민들의 정치 혐오였다. 수 십년간 지속된 포르투갈의 오랜 정쟁으로 인해 포르투갈 국민들은 정치에 신물이 난 상태였고 살라자르는 바로 이 점을 활용했다.

살라자르는 우선 총리직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영구 집권이 가능한 헌법 개정안을 국민 투표에 붙인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국민들에게 용납 받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살라자르는 자신 있게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파업과 공장 폐쇄 등 노동조합 활동 금지 모든 사회활동을 국가가 조정, 관리 집권당인 국민연합당에서만 국회의원을 선출하며 총리의 해임은 사실상 불가능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부결이 되어야 할 개정안이었지만, 실제 투표결과는 놀랍게도 과반의 찬성과 매우 미미한 반대, 그리고 절반에 육박하는 기권으로 나타난다. 즉 국민 중 극소수만이 상식적인 판단을 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은 아무 생각 없이 투표를 했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투표 자체를 외면해 버린 것이다. 살라자르는 기다렸다는 듯 기권표를 찬성표로 간주해 버린다.

찬성 580,379표반대 5,005표기권 427,686표

국민의 정치혐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합법적인 독재자’가 된 살라자르는 헌법 개정안 통과 후에는 아예 정치혐오를 대 놓고 부추긴다. 장기집권을 하려면 국민들의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이 지속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Futebol : ‘축구’Fatima : 성녀 파티마로 상징되는 ‘종교’Fado : 포르투갈인들이 사랑했던 음악 ‘파두’

이 세 가지에 'F'에 아낌없는 재정지원을 한 결과 국민들은 정치 대신 축구에 온 관심을 쏟고, 정치 대신 종교로 문제를 해결하고, 분노와 슬픔은 파두로 해소하는데 익숙해진다. 더불어 교육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물론 비판 능력마저 현저하게 떨어지고 만다.

물론 일부 국민들의 경우 살라자르 체제에 저항을 했지만 모든 독재 정권이 그러하듯 비밀경찰을 통해 격리, 구금함으로써 간단하게 제압한다. 결국 살라자르는 자신의 독재 비결인 ‘영악한 정치가와 무식한 국민의 구도’를 효과적으로 유지했고 살라자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무려 36년이란 세월 동안 절대 권력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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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명 ‘카네이션 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달성하지만, 36년 간의 세월 동안 포르투갈 국민들이 보여준 정치에 대한 태도는 그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살라자르가 펼친 ‘우민 통치’의 위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장기 독재를 허용한 건 결국 국민들 스스로였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 몰라서, 정치가 지겨워서라고 변명하기엔 그로 인해 돌아오는 결과가 국민들 스스로에게 너무 끔찍했다. 경제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정치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 스스로가 포르투갈을 떠났다. 포르투갈의 최대 수출 상품은 포르투갈인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 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중이 떠난다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국민들이 정치에 신물이 나도록 만드는 정치(정치인)는 노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로 정치 수준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당이나 직업 정치인들은 당연히 옳고 그름을 두고 다퉈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최소한 국민들이 정치 자체를 혐오하거나 지겨워 고개를 돌려버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가지 역설적인 건,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 살라자르가 측근들의 배려(?)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총리인 줄 알았다는 점이다. 측근들은 그가 충격을 받을까 우려하여 무려 2년 동안이나 그가 총리로 등장하는 가짜 신문을 만들어 보여주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 그의 사인을 받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이길 그토록 바랐던 살라자르는 자기 자신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총리가 되어 삶을 마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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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가 남긴 가장 찬란한 업적(?)인 ‘3F’ 정책은 이후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길 바라는 거의 모든 독재자들에게 핵심 참고 자료가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차용된다. 3S는 sex, screen, sports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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