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활비 자체 지침 ‘전문’ 확인… 부실한 지침으론 세금 오남용 못 막아
2024년 09월 02일 16시 00분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국회 특정업무경비 사용 실태를 최초 공개된 가운데, 5년 전인 지난 2013년 국회사무처가 이미 관련 예산 운영 지침 위반으로 감사원의 ‘주의’ 권고를 받았는데도 지금까지 이 예산을 영수증 없이 집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은 특정업무경비 오남용 실태가 드러난만큼 제도 개선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3년 11월 감사원은 12개 국가기관을 상대로 ‘특정업무경비 집행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도 감사대상이었다. 감사 결과 국회는 상임위원회 간사활동비 1억 8300만 원 등 모두 27억 원을 지출 증빙 없이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결과 보고서에서 “국회가 지출 증빙 없이 특정업무경비를 운영해 경비 집행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국회사무처에서 실비 명목으로 현금 5억 6700만 원이 집행됐지만, 국회의 자료 제출 거부로 더 이상 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같은 감사결과를 내놓으며, 국회사무총장에게 “구체적인 증빙도 없이 불명확한 지출내역만 작성한 채 특정업무경비를 지급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라”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감사원 관계자는 “(주의처분은) 말 그대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라며 “문제가 발견된 부분에 대해선 당연히 시정 조치를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감사원으로부터 ‘특정업무경비 집행실태’ 감사를 받았던 대부분의 다른 국가 기관은 기존 감사원 지적 사항을 수용하거나 특정업무경비를 사용할 때 정부 예산 지침에 따라 구체적인 지출 증빙을 남기고 있었다. 사용증빙 없이 특정업무경비를 집행하다가 적발된 기관은 국회와 헌법재판소, 대법원뿐이다. 이들 기관과 함께 감사를 받은 국세청과 법무부, 검찰청, 소방방재청 등 9개 기관은 모두 지출증빙을 첨부하고 있었다.(단 경찰청의 경우 특정업무경비 실비 지급 과정에서 지침 일부 위반)
기획재정부가 매년 작성해 각 국가기관에 통보하는 ‘예산 및 기금운용 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정부구매카드, 즉 국가가 지급하는 체크카드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지출 증빙 없이 부득이하게 현금을 지급할 때도 월 30만 원 이상은 개인에게 지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인에게 실비 보전 명목으로 지급되는 현금 외에는 모두 지출 증빙을 남기도록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거의 모든 기관이 특정업무경비를 사용하고 증빙서류를 남긴다”며 “특수활동비와는 달리 특정업무경비는 비밀 유지성이 없어 증빙서류가 있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즉 특정업무경비는 특수활동비처럼 영수증 없이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감사원 지적에도 불구하고 특정업무경비를 특수활동비처럼 집행했다. 뉴스타파가 행정소송을 통해 최근 입수한 ‘2016년 6월~2017년 5월 특정업무경비 집행내역 및 지출증빙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지출된 윤리특위를 포함해 18개 국회 상임위 간사들에게 지급된 간사활동비 2억 8000만 원 가운데 영수증이 있는 집행금액은 1990만 원에 불과했다.
또 특정업무경비 중 예비금 항목으로 집행된 5억 2900만 원은 국회에 파견된 경호 경찰들의 회식비 470만 원을 제외하곤 단 1장의 영수증도 제출되지 않았다. 모두 ‘국회특수업무활동비’ 명목으로 영수증 없이 집행됐다. 역시 현금으로 집행된 ‘국회 운영 지원비’, ‘협의비’, ‘조정비’, ‘대책비’ 등도 영수증은 제출되지 않았다.
이처럼 ‘깜깜이 집행’된 예산 규모는 9억 원에 이른다. 누가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고 어떤 명목인지도 불분명한 돈이 현금지급 또는 계좌이체 방식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감사원이 분명히 지출 증빙을 제대로 붙여야 된다고 했는데, (감사원 감사 이후) 5년 동안 전혀 개선된 게 없고, 대부분 지출 증빙 없이 특정업무경비가 사용됐기 때문에 국회가 감사, 감시의 사각지대라는 게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일각에선 이 돈을 국회의장단 또는 원내대표 등이 나눠가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행정실 한 직원은 “(우리는) ‘운영협의비’ 이런 게 들어오면 (운영위원장 혹은 각당 원내대표에게) 토스(전달)를 한다”며 “현금성 경비를 국회사무처에서 내려 받으면 매번 동일하게 의원들에게 전달만 했고, 위원장에게 직접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과거 원내대표를 지냈던 한 의원실 보좌관은 “원내대표가 특정업무경비 수백만 원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전체 규모는 모른다”며 “관례적으로 직원, 또는 전문위원 경비 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금액 전체를 다 수령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이 ‘꼬리표’ 없는 돈을 지급받은 대다수 의원실은 정부 예산 지침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국회사무처가 따로 영수증 요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별도 증빙 없이 이 돈을 썼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혀 영수증 제출 의무가 있는 걸 몰랐어요
아니, 그 자체를,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 자체를 몰랐지. 정확히
이렇게 돈이 온 거에 대해선 사무처의 어떤 규정, 이런 거에 대해선 사무처가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정부 예산을 다루고 법을 만드는 국회가 특정업무경비 집행 지침을 몰랐다는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으로 후보자가 검찰 고발되고, 각 기관에 대한 감사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국회가 이를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실제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국회의원들도 정부 예산 지침과 특정업무경비의 성격, 특히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반드시 공적 업무 추진 시에만 집행하도록 돼 있고 영수증을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고. 누구한테 줬을 때는 현금으로 미리 지급한 경우에도 집행 내용 확인서를 갖춰서 공무 관련성을 명확히 해라. 이건 국회도 지적했고 감사원도 지적했고 기재부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정업무경비는 업무추진비로도 전용할 수가 없는 돈입니다. 특정업무경비는 특정한 업무와 관련해서 지급해야 됩니다. 특정업무경비는 반드시 증빙을 갖추라고 하는 돈입니다. 단, 예외가 있습니다. 30만 원 이하의 경상비의 경우에는 예외로 돼 있습니다.
정말 너무 답답해서, 제가 보기 안쓰러워서 그래요. 그것을 소명해 내지 못하면 민주당 위원님들이 지금 문제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본 위원도 동의할 수밖에 없어요.
특정업무경비가 왜 문제가 됐느냐? 이것을 재판관 개인에게 수표나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를 사용하게끔 했으면 아무런 오해가 없을 거예요. 어떻습니까? 특정업무경비 현금 지급이, 수표를 포함한 현금 지급이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특정업무경비와 관련한 각종 문제점과 의혹에 대해 유인태 국회사무총장은 지난 18일 뉴스타파 기자와 만났다. 그는 취재진에게 투명한 예산 공개와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일종의 잘못된 관행이었지만 이제 다 어쩔 수 없다, 의원들한테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제 모든 걸 공개하겠다’, ‘발가벗고 사는 시대가 왔는데 어쩔거냐’,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부적으로는 아직 주저하는 분위기도 있는데 그걸 안 밝힐 수는 없다. 나는 투명하게 그걸(특정업무경비 공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감사원 역시 국회에 대한 감사가 쉽지 않지만, 국민의 목소리가 있고 문제가 확인되면 감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부터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국회의원 의정활동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20대 국회의원 예산사용 내역 자료 공개 특별 페이지(링크)
※ 20대 국회 특수활동비 지급 내역 최초공개
취재 : 강현석, 김새봄, 문준영, 박중석
데이터 : 최윤원
데이터 시각화 : 임송이
촬영 : 최형석, 김남범, 오준식, 신영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자료조사 신재용, 신동욱, 전현주
공동기획 :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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