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가 2021년 <논문공장의 영업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연속 보도했던 관광 분야 학술단체들의 ‘학술지 평가 조작 의혹’이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연구재단은 지난해 관광경영학회 등 뉴스타파가 보도한 4개 학술단체의 학술지 평가 조작 의혹을 사실로 확인하고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자격을 박탈한 바 있다. 이어 연구재단은 뉴스타파 보도에 나오지 않은 관광 분야 학회들에 대해서도 실태 점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4곳의 학회에서 논문 게재율 조작 등의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 연구재단은 최근 이들 학회에도 등재 취소와 등재 후보지 등급 하락 처분을 통보했다. 등재 취소 처분을 받은 곳은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와 대한관광경영학회, 등급 하락 처분을 받은 곳은 한국관광연구학회와 한국호텔리조트학회다.
KCI 등재 취소 처분은 연구재단이 학술단체를 상대로 내리는 행정 처분 중 가장 강력한 조치다. 등재 취소된 학회는 앞으로 3년간 등재 학술지 평가를 받을 수 없고, 학술단체 지원금도 신청할 수 없다. 등재지에서 등재 후보지로 등급이 하락한 학술지는 1년간 학술지 평가와 지원금 신청이 제한된다.
2021년 뉴스타파가 보도한 <논문공장의 영업비밀> 중. 한국연구재단이 관리하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로 인정받기 위해 논문 게재율 등 학술지 평가 지표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된 관광 분야 4개 학술지 사진.
뉴스타파가 보도한 학회들이 학술지 평가 자료를 조작한 수법은 이랬다. 학회를 운영하는 교수들이 심사위원의 명의를 도용해 논문 심사를 허위로 진행해 놓고, 실제 심사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그렇게 허위 심사로 부실 논문들을 무더기 통과시킨 뒤, 관광 분야의 다른 학회에 투고된 논문을 저자 동의 없이 얻어와 자신들의 ‘탈락용’ 논문으로 사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학술지 평가 지표 중 하나인 논문 게재율을 조작했다.
논문 게재율은 학술지 평가 지표 중 하나로, 학술지에 투고된 전체 논문 중 게재된 논문의 비율이다. 연구재단은 투고 논문 대비 게재된 논문이 적을수록 엄격하게 심사했다고 판단해 높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관광경영학회 등은 제대로 심사는 하지 않고, 서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논문 게재율 점수를 맞춰왔다. 뉴스타파는 두 학회가 연구재단에 제출한 평가 서류인 논문투고대장을 입수,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2021년 6월, 뉴스타파는 관광 분야 학술지들이 관광경영학회에 ‘탈락용’ 논문을 빌려주기만 한 게 아니라, 서로 논문을 주고 받으며 게재율 조작 품앗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은 연구재단 실태점검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뉴스타파에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학회들도 알고 보니
연구재단은 관광경영학회 등에 탈락용 논문을 빌려준 ‘한국관광레저학회’와 ‘동북아관광학회’에 대해서도 실태점검을 벌였다. 실태점검은 특별심의와 달리 연구재단이 매년 학술지 관리와 운영을 점검하기 하기 위해 전체 등재 학술지 중 10%를 무작위로 선정하거나 일부 제보를 받아 진행하는 정기조사다.
연구재단은 2021년 실태점검 결과, 이들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서도 논문 게재율이 조작된 정황을 확인하고 지난해 2월 등재 취소 처분했다. 하지만 두 학회 중 한국관광레저학회는 연구재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1년 가까이 논문을 투고 받았다.
한국관광레저학회는 2005년 등재지로 선정돼 20년 가까이 등재 자격을 유지해 온 역사가 오래된 학회다. 문제가 된 관광경영학회에 가장 많은 논문을 빌려준 곳이기도 하다. 관광레저학회 관계자는 2년 전 뉴스타파 취재 과정에서 “우리는 논문 게재율 조작과 관계가 없으며, 관광경영학회에 논문을 도용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보도 이후 국회 강민정 의원실로부터 관광레저학회의 3년 치 논문투고대장(2017년~2019년)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약 350건의 탈락 논문 가운데 200건 가량이 다른 학회에 게재됐거나 아예 투고된 적이 없는 논문으로 확인됐다. 역사가 오래된 레저학회마저도 관광경영학회와 똑같은 방식으로 논문 게재율을 조작했던 것이다.
지난 3월 30일, 레저학회는 연구재단을 상대로 낸 ‘행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 패소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레저학회는 연구재단이 문제로 삼은 3년 치 탈락 논문과 논문 심사서에 대한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보도에 나온 논문게재율 의혹에 대해서도 소명하지 못했다. 1심 패소 후 레저학회는 항소를 포기했고, 2023년 5월 등재 취소 처분이 확정됐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이 한국관광레저학회를 실태점검한 뒤 등재 취소를 통보한 공문. 관광경영학회에 ‘탈락용’ 논문을 빌려줬던 관광레저학회 역시 같은 방식으로 관광경영학회의 탈락 논문을 빌려와 자신들의 논문게재율을 맞추는 데 사용한 사실이 연구재단 실태 점검에서 확인됐다.
관광 학술지 절반 '논문게재율' 조작...‘등재 자격’ 박탈
그런데 뉴스타파가 보도한 4개 학회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국회 조승래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연구재단은 2022년 실태점검 결과로 올해에도 5개 학술지를 등재 취소 처분하거나 등재 후보지로 등급을 하락시켰는데, 이 중 4개 학술지가 관광 분야 학술지였다.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대한관광경영학회는 등재 취소를, 한국관광연구학회, 한국호텔리조트학회는 등급 하락 처분을 받았다.
대부분 뉴스타파가 확인한 ‘논문 게재율 조작’, ‘부실 심사’가 이유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과적으로 뉴스타파 보도 이후 관광학 분야에서만 총 8개에 달하는 학술지에서 논문게재율 조작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재단은 “해당 학술지들이 실태점검 결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비공개 요청해 자세한 내용은 답변할 수는 없지만, 관광경영 분야 학술지 4종에 투고된 논문과 심사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답했다. 등재 취소 등 해당 조치는 오는 7월부터 적용된다.
뉴스타파가 연구재단과 각 학회에 연락해 확인한 연구재단 행정 처분 결과. 연구재단은 위 학회들이 KCI 등재 학술지 평가를 받기 위해 연구재단에 제출한 2017~2019년 사이 서류를 점검해 이 같이 조치했다.
‘등재 취소’ 처분은 연구재단이 학회를 상대로 할 수 있는 행정 처분 중 가장 강력한 조치다. 보통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는 KCI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술지부터 연구 실적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등재지를 발간하지 않는 학회에는 연구자들이 논문을 투고하지 않아 존립 자체가 어렵다. 참고로, KCI 등재 학술지는 연구재단 평가 점수에 따라 등재 후보, 등재, 우수등재로 구분된다.
등재 취소 처분을 받은 학회는 앞으로 3년간 등재 학술지 평가를 받을 수 없고, 학술단체 지원금도 신청할 수 없다. 등재지에서 등재 후보지로 등급이 하락한 학술지는 1년간 학술지 평가와 지원금 신청이 제한된다.
한국연구재단 2022년도 학술지 실태점검 결과. 연구재단이 전체 등재 학술지 중 10%인 264종을 점검한 결과, 5종이 등재 취소(하락) 처분을 받았다. 이 중 4개가 관광 분야 학술지였다. (자료 :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실)
관광학 분야의 학술지의 무더기 등재 취소 소식에 학계 교수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관광학 분야의 한 교수는 “제가 가입한 학회 3곳이 모두 등재 취소 처분을 받아서 놀랐다. 워낙 역사가 오래된 학회들이니 계속 등재지로 유지될 줄 알고 학회당 40~50만 원의 평생 회비를 냈는데, 돌려받지도 못하고 황당하다. 논문 게재율을 속이는 게 관행이라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연구재단 행정 처분을 받은 학회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다. 등재 후보지로 등급이 하락한 학회 관계자는 “우리 학회는 작년과 올해 두 번이나 실태점검을 받았다. 그 결과 단 3건의 게재 불가 논문이 문제가 돼 등급 하락 조치를 받았다. 학술지 관리에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관광 쪽만 고강도 조사를 받은 것 같아 형평성 부분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등재 취소 처분을 받은 한 학회 임원은 “뉴스타파 보도로 그동안 관행으로 묵인됐던 문제들이 드러나 자성의 계기가 된 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관광 분야 학회의 문제가 보도됐다고 연구재단이 거기만 표적 삼아 조사한 것 같아 아쉽다. 학회도 자정해야 하지만 연구재단도 사실상 학회 관행을 방치해 온 것에 대한 반성, 부실한 학술지 평가로 등재 학술지를 남발해 온 건 아닌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재단 "학술지 평가 제도 지속적으로 보완할 것"
한국연구재단은 해마다 학술지 평가를 통해 100개가량의 등재 학술지를 새롭게 선정한다. 등재지로 선정한 후부터는 3년~6년 주기로 평가해 자격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2023년 기준, 2700종의 등재(후보) 학술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 학술지가 등재지로 선정된 후 제대로 관리, 운영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등재 학술지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연구재단은 해마다 등재지의 10%가량을 무작위로 선정하거나 제보를 받아 실태점검하는 방식으로 학술지를 관리한다.
점검 방식에도 허점이 있다. 연구재단이 실태점검을 하는 대상은 등재 학술지의 1~3년치 논문투고대장, 논문심사서 등 평가 서류 정도다. 논문 내용까지 보지는 않는다. 서류 관리만 잘하면 학술지 평가도, 실태점검도 통과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김건희 여사가 한글 제목을 영어로 그대로 옮겨 논란이 된 이른바 ‘member Yuji’ 논문을 발행한 등재 학술지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는 2022년 연구재단 실태점검을 높은 점수로 통과했다. 관광학계 한 교수는 “게재 불가된 논문까지 철저히 점검하는 연구재단이 정작 게재된 논문의 부정행위에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연구재단은 “학술지 실태점검은 학술지의 운영과 관리체계를 점검하는 것으로 개별 논문에 대해선 점검할 수 없다. 관광 분야 학회의 경우 뉴스타파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고, 여러 문제점들이 실제로 확인됐기 때문에 등재 취소 처분을 받은 것이지, 표적 조사를 받은 건 아니다. 개별 논문을 조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동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재단이 부실 등재 학술지를 남발해 왔다’는 지적에 대해선 “학술지 평가와 학술지 실태점검 제도에 대해선 매해 학계 등의 의견 수렴을 통해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