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둑' 국회의원 추적 ⑮ 백재현, 유령단체 4곳에 국회예산 1억 몰아줘
2019년 02월 20일 08시 32분
해마다 수많은 공직자들이 해외 공무출장을 간다. 국회 교섭단체 정당 당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출장 경비로 1인당 수백만 원씩의 세금이 들어간다. 하지만 정부 출장과는 달리 정당 당직자들의 출장보고서는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었다. |
해외 출장지가 출장 목적에 맞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남은 예산에 맞춰 방문 국가를 정한다. 출장 목적인 자료 조사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해외 기관 방문과 관계자 면담은커녕 ‘건물 구경’만 하기 일쑤다. 출장자 스스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출장보고서는 다른 자료를 ‘복붙(복사·붙여넣기)’해 제출하면 그만이다. 주요 정당들이 연말에 이렇게 국민 세금을 허비하고 있다.
연말에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일단 해외로 나가고 보자는 이른바 ‘묻지마’ 해외 출장이 교섭단체 정당 당직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타파와 YTN이 공동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다.
공동 취재팀이 이번에 확보한 국회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자료조사 국외출장 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보면, 민주당 정책위 소속 당직자 2명은 2017년 12월 20일(수)부터 24일(일)까지 4박 5일 동안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왔다. 약 210만 원의 국회예산을 지원받았다.
국회 예산을 신청하며 민주당 당직자가 내세운 출장 목적은 "싱가포르의 의회 및 지방의회 등 정치제도를 파악하고, 한국의 의회제도와 비교해 민주주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방문 기관은 세 곳. △싱가포르 부패방지기관 CPIB(Corruption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탐오조사국) 방문 및 관계자 면담(12월 22일) △싱가포르 주택정책 현장 방문 및 국회 견학(12월 23일) 등이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국회 내 논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정책 대응 역량의 강화”를 위해 싱가포르 CPIB를 방문해 관계자를 면담하겠다”고 밝혔다. 출장 후 결과보고서에도 CPIB 관계자를 면담했다고 분명히 명시해놨다.
출장 결과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 취재 결과, CPIB 부패조사 관련 담당자와의 면담은 없었다. 출장자는 CPIB 건물 구경만 하고 온 것으로 확인됐다. 1층 로비까지만 들어가 건물 관리하는 직원을 만난 게 전부였다. 싱가포르 국회의사당도 마찬가지였다. 관계자 면담은 없었다. 건물 로비만 구경했을 뿐이다. 관광객 수준의 관람이나 견학에 그친 것이다.
당시 출장자 중 한 명인 류 모 씨는 국회의사당이나 CPIB 모두 “로비까지밖에 못 들어갔다"고 말했다. 류 씨는 “급하게 출장을 갔다"며 "(연락을 해도) 면담을 받아주는 기관도 없었다. (해당 기관에서) 그냥 견학하시라고 하기에 일반인 견학처럼 다녀왔다. 기관 담당자를 만나지 않았고 견학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기관을 방문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류 씨는 취재진에게 "출장을 가기 몇주 전인 12월 초에 출장을 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이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남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출장을) 갈 수 있냐고 당 총무국에서 묻기에, 예산에 맞춰 급하게 준비해 갔다"고 출장 경위를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결과보고서 작성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제출한 보고서는 사진과 표지를 제외하면 모두 4장에 불과했다. 대부분 다른 자료를 짜깁기했다. 싱가포르 부패행위조사국에 대한 설명 5줄은 한 시민단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조사 일부만 빼고 베낀 내용으로 드러났다.
싱가포르 주택정책 관련 내용은 2013년 국토연구원의 자료집과 거의 비슷하다. 도표는 이 자료집에서 그대로 따왔다. 류 씨는 "보고서도 (국회 사무처에서) 연내에 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다녀오자마자 급하게 써서 냈다"고 말했다.
2017년에 이어 지난해 12월에도 민주당 정책위 소속 당직자 이 모 씨가 태국 출장을 떠났다.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국회 예산 120여만 원을 지원받았다.
출장의 명목은 "태국 국회와 지방의회 등을 방문해 정치 제도와 지방 분권 상황을 학습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방문 기관으로 태국 의회, 방콕시청, 왕립 경찰본부 등을 적었다.
이 당직자는 당초 출장 목적대로 태국을 다녀왔을까? 취재진은 해당 기관에 이메일 질의서를 보내고 태국 탐사보도 기자의 도움을 얻어 출장자 이 씨가 실제 태국 국회 등을 방문했는지 왔다면 누구를 만났는지 확인했다.
태국 국회와 방콕 시청 방문. 출장자 이 씨는 출장 둘째 날 두 기관을 방문했다고 출장보고서에 기재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해당 기관에서 이 씨의 공식 방문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씨를 만나 물었다. 그는 “해당 기관을 가긴 갔지만, 기관 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고 만나 주지도 않았다. 견학 수준이었다.”고 답했다.
출장 넷째 날도 마찬가지. 이 씨는 왕립 경찰본부를 방문했다고 했지만 확인해보니 가지 않았다. 출장 보고서에는 태국에 있는 다른 경찰서 사진을 올리고 ‘경찰서 방문’이라고 적어놨다. 결과 보고서를 허위로 기재한 것이다. 이 씨는 취재진에게 "일정상 왕립 경찰본부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경찰서라도 찍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출장 결과보고서도 확인했다. 태국 의회와 정치 상황, 총선일정 등 기본 정보를 정리한 게 전부였다. 굳이 현지에 가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상당부분 연합뉴스와 태국 교민잡지 등에 실린 기사를 베꼈다.
이 씨는 태국 출장을 다녀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꼭 태국을 가야해서 간 상황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사실은 예산에 맞춰서 간 거다. 남는 돈이 있었고, 그 예산 안에서 갈 수 있는 나라를 선택해서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출장을 통해 어떤 조사 연구를 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씨는 "그냥 다 비슷하게 가지 않느냐, 3박 5일 동안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느냐. 자료 조사나 연구라기보다는 견학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는 2016년부터 국회 교섭단체 정당의 원할한 의정 및 정책 활동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매년 정당 당직자들의 해외출장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출장의 적정성 심사는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2017년 싱가포르 자료조사 국외출장 계획서 원문
・더불어민주당 2017년 싱가포르 자료조사 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원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2018년 태국 자료조사 국외출장 계획서 원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2018년 태국 자료조사 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원문
공동취재 | 뉴스타파(강혜인, 임보영, 박중석) YTN(홍성욱, 한동오, 고한석, 이정미) |
공동기획 | 뉴스타파, YTN,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 |
촬영 | 신영철 오준식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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