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고 이예람 중사와 특검, 그리고 418호 법정

2023년 08월 11일 17시 00분

법정에는 물병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빈 페트병도 마찬가지다. 법관에게 물병을 던져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법정 출입구에 있는 보안 검색대에는 온갖 종류의 텀블러와 페트병이 흰색 바구니에 놓여 있고, 법원 안에는 정수기와 종이컵이 있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재판을 가면, 정수기 앞이나 법정 입구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군 사망사건 유족들이었다. 군 내 의료과실로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예람 중사 재판 방청을 온다고 했다. 총기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고 박세원 수경의 어머니는 법정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이 중사 어머니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곤 했다.
2023년 4월 21일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 씨와 아버지 이주완 씨가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정문을 지나고 있다.  
고 이예람 중사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비)의 부사관이었다. 2021년 3월 2일,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두 달 뒤 부대 내 관사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2차 가해와 부실 수사로 인한 증상 악화가 사망 원인으로 지목됐다. 성추행 사건 직후 이 중사는 급성 스트레스반응, 불안장애, 불면증 진단을 받았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국방부는 이 사건을 공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해 수사했다. 성추행 가해자를 포함한 관련자 14명이 기소됐다. 하지만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됐고, 특검이 출범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룬, 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첫 특검이었다. 특검은 관련자 8명을 추가로 기소했다.

군은 고 이예람 중사를 보호할 의지가 없었다

10개월 동안 특검 재판을 지켜봤다.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을 40번 이상 드나들었다. 피고인 8명, 증인 30여 명의 진술을 들었다. 공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자료 등 각종 보고서, 국방부 보도자료, 판결문, 증인과 참고인들의 진술조서 등 그동안 읽은 자료도 분량이 꽤 됐다. 고 이예람 중사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재판을 보고 자료를 읽으면서 한 사람의 죽음 뒤에 감춰져 있던 우리 군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은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의지가 없었다.
특검팀은 공판마다 PPT 자료를 준비해 법정 화면에 띄웠다. 밑줄 표시된 증거 자료와 진술 조서가 화면에 나오면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받아 적었다. 피고인과 증인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나 통화 내용이 나올 때면 방청석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나왔다. 사건을 은폐하고 2차 가해를 한 흔적들이었다. 이런 증거들이 나올 때 피고인들의 태도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피고인은 고개를 숙인 채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고, 몇몇 피고인은 얼굴만 붉힌 채 가만히 있었다.
재판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행태도 그때그때 달랐다. 기자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공판이 있는가 하면 노트북 타이핑 소리 때문에 판사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공판도 있었다.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법정에 출석한 날은 항상 방청석이 꽉 찼다. 전 씨에 대한 선고가 있던 날에는 자리가 없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좌석 옆 공간에 서서 판결을 들었다.
재판을 따라가면서, 법원에 출석한 모든 이들의 진술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애썼다.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본인의 입장을 소명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고 이예람 중사를 성추행한 장 모 중사의 진술만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검은 장 중사를 고 이예람 중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장 중사는 성추행 사건 직후 부대 내 동료 군인과 직속상관에게 “별일 아닌데 신고를 당했다”, “선배님들도 여군 조심하라”, “받아주니까 (추행)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과 재판부는 이 발언이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봤다. 지난 1월 9일 열린 2차 공판에서 정진아 재판장(부장판사)과 배예선 주심판사가 장 중사를 신문하면서 물었다. “여군 조심하라는 건 무슨 뜻인가? 직접 설명을 듣고 싶다.”, “받아주니까 했다는 말은 피해자가 정말 받아줬다고 생각해서 말한 건가?” 질문과 답변 사이 긴 정적이 흘렀다. 장 중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별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문에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발언이 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되는지 자세히 적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통상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주된 증거가 된다. 따라서 피해자의 성정이나 행동을 왜곡하여 퍼뜨리는 행위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여 성추행 신고내용을 신뢰할 수 없게 하고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으로서 피해자에 대하여 치명적이고도 직접적인 2차 가해가 된다.

- 장 모 중사 명예훼손 혐의 1심 판결문 중
이 대목을 읽으면서, 성폭력 사건에서 통상 벌어지는 명예훼손 범죄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설명한 교본 같다고 느꼈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특검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오랜 시간 특검 재판을 방청하면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 책임자가 없다는 점이 그랬다. 
특검은 작년 9월 발표한 수사결과 보고서에서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 고위급 인물이 피해자에 대한 군인등강제추행치상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하거나 수사를 무마하였다는 의혹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론에 따라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수사 무마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특검은 전 씨를 ‘군검사에 대한 위력 행사’ 혐의만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현행법으로는 전 씨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이유였다. 선고가 있던 날, 재판부는 전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전 씨의 행동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피고인(전익수)의 위 행동(군검사에게 전화해 수사 내용이 잘못됐다고 따진 것)은 외관상으로 수사 중인 군검사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로 비춰지기 충분하고, 그로 인하여 수사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에도 상당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1심 판결문 중
특검은 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이 부실 수사의 원인이라고 봤다. 초동수사를 맡은 20비 군사경찰의 참고보고 문서가 중요한 단서가 됐다. 20비 군사경찰은 가해자 조사를 하기도 전에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적었다. 공군 성범죄 처리지침에 명시된 '모든 성범죄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이 20비 군검찰로 넘어간 뒤에도 '불구속 수사' 방침은 유지됐다. 20비 군검사가 '구속 수사'를 검토하지 않은 사유가 특검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 되기도 했다. 공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하나같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부실 수사의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자는 없었다. 20비 군검사는 ‘급성 스트레스’, ‘불안장애’ 등이 기재된 이 중사의 정신과 진단서를 전달받고, 가해자 장 중사의 2차 가해 정황을 보고 받았지만 구속 수사를 검토하지 않았다. 특검 수사 결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기소된 군검사 박 모 씨는 법정에서 “통상적으로 먼저 수사를 한 군사경찰의 의견에 따라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공군본부 법무실은 20비 군검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법무실 측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공군본부 법무실 보통검찰부장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예하 부대(20비) 수사에 대한 지휘 책임이 없다”고 진술했다. 
고 이예람 중사 사건 특검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14일에도 20비 군검사의 직무유기 등 혐의에 대한 증거 조사가 예정돼 있다. 특검이 기소한 8명의 피고인 중 누구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지만 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었다. 증인 신문 과정에서 “이 중사가 사망하기 전까지 이 사건(성추행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었다”고 말한 변호인도 있었다. 방청석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재판장이 증인에게 “이 사건은 이 중사 사망과 관련 없이 추행의 정도가 중한,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건에서 군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가해자의 편의를 봐주고, 피해자는 고립시켰다. 국방부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가해자는 구속됐다. 수사를 통해 관련자 20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사건의 실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군은 나아질 수 있을까. 앞으로는 성폭력 피해자가 군에 남을 수 있을까.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고 이예람 중사의 명복을 빈다.
제작진
취재김주형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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