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부사관 이예람 중사가 2021년 5월 부대 내 관사에서 사망했다.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81일 간 조직 내에서 고립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추행 사건 직후 피해 사실을 신고했으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 즉각적인 사건 수사 및 가해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 사망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국방부 장관 명령으로 공군본부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사건이 이관돼 가해자 장OO 중사를 포함한 관련자 15명이 기소됐다. 이후 국방부 수사로도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는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특검에는 안미영 변호사가 임명됐다. 특검은 100일간의 수사를 거쳐 8명을 기소했고, 작년 10월 재판이 시작됐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 재판 과정을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주>
지난 6월 29일,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에게 법원이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전익수 전 실장은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관련,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중이던 군검사에게 전화해 위력을 행사(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면담강요)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제5조에 따르면,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은 “특가법 제5조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범죄 신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된 조항이다.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수사 중인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위력을 행사한 전 씨의 범행은 특가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전익수 전 실장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의심되는 상대방이 범죄 신고자나 증인이 아니라 수사 검사이기 때문에 해당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전 씨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 씨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했다. “피고인(전익수)은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수사 검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하여 수사 중인 내용을 알아내려고 하였는데, 이는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것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했다.
재판부는 전 씨 측이 제기한 특검의 공소장 일본주의(공소장에 혐의와 무관하게 법관에게 불필요한 예단을 심어줄 만한 사실을 적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 규칙) 위반, 위법수집 증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익수 전 실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뒤 고 이예람 중사 유족은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은 했는데 처벌 가능한 법이 없어서 무죄가 선고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면담강요 혐의를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전익수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지난 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죄질 매우 나쁘다” 공군 공보장교 징역 2년 선고
같은 날 1심 선고를 받은 고등군사법원 군무원 양 모 씨와 공군본부 공보장교 정 모 중령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됐다. 양 씨는 고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비공개 재판 정보 등을 전익수 전 실장에게 누설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를 받았다. 정 중령은 이 중사의 사망 원인과 관련된 허위사실을 기자들에게 퍼뜨려 이 중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이 중사 사건 관련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양 씨는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양 씨의 범죄 혐의 중 고 이예람 중사 사건과 관련 없는 재소자의 교도소 이송 예정 정보를 누설한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고 이예람 중사 사건 관련 재판 정보 유출 건은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씨의 재판 정보 유출 혐의와 관련 “양 씨가 전익수에게 전송한 재판 정보는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는 비공개 정보였고, 해당 정보가 직무상 비밀이라는 것을 알고도 유출했다는 고의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양 씨가 범행 이후 증거를 인멸한 점, 자신을 수사하거나 징계 처분한 담당자들을 고소하는 등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와 어머니 박순정 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허위사실을 퍼뜨려 고 이예람 중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정 모 중령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명예훼손죄를 비롯한 공무상비밀누설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 등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정 중령의 발언 내용이 단순 의견 표명이 아닌 사실 적시에 해당하며 발언의 고의성, 전파가능성 역시 모두 인정된다고 봤다.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으로 (고 이예람 중사의) 유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고, 사망의 원인을 개인적인 일로 축소시켜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일부 범행은 상관에게 보고한 후 범행을 한 것이어서 범행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