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회 낙하산, 공공예산으로 이승만·박정희 미화

2021년 09월 01일 16시 30분

뉴스타파는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공공 감시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기관 낙하산 임원들이 지연과 학연 같은 이해관계로 얽힌 단체에 기부·후원 예산을 몰아주며 예산 집행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 6월 전체 공공기관 350곳 중 73곳을 검증 보도한 이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고 현재 예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뉴스타파는 나머지 기관에 대한 보도를 이어간다. 이번 검증 대상은 184곳이다. - 편집자 설명

1천 번의 기부 중 눈에 띄는 하나 : 이화장

뉴스타파가 정보공개 청구로 받아 낸 한국수출입은행의 6년간(2015년∼2020년) 기부 후원 예산의 집행 건수는 모두 1,223건이다. 한 달 평균 17건으로 적지 않은 횟수다. 금액으론 347억 원이다. 장애 시설과 노인 복지시설 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 등 구호·공적 부조 성격이 주를 이룬다.
천 번이 넘는 기부·후원 중에서 취재진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2016년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후원이다. 금액은 1,500만 원이다. 후원 사유는 ‘문화유적 이화장 홍보물(안내책자) 제작'이다. 수출입은행의 이화장 후원은 이때가 유일하다. 이화장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머물렀던 사저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다. 금융 공기업인 수출입은행이 어떤 계기로 문화 유적지 이화장에 기부·후원을 한 걸까? 이번 취재는 이렇게 시작했다.
대통령과 모교(母校)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명박 정부에선 고려대, 현 정부에선 경희대가 그렇다. 박근혜 정부 때는 ‘서금회’가 그랬다. 서금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전자공학과 70학번)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의 금융인 모임 즉 ‘서강금융인회’를 뜻한다. 몇몇 인사들은 승승장구하며 금융 공기업 낙하산으로 영전했다. 이덕훈(한국수출입은행장, 수학과 67학번), 홍기택(KDB금융 회장 겸 산업은행장, 경제학과 71학번), 이광구(우리은행장, 경영학과 76학번)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서금회 출신 금융기관 수장들은 어디에 예산을 썼나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을 한국수출입은행장(2014∼2017)에 임명했다. 수출입은행은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이 씨는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서금회 멤버다. 임명 당시 서강대 경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있었다. 그는 “저는 친박(이다.)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친박’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2014∼2017)
이덕훈 행장이 취임하고 이듬해인 2015년 1월, 수출입은행은 서강대 산학협력단에 연구 용역을 준다. 예산 1억 8,600만 원이 투입됐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5명 등 8명이 연구자로 참여했다. 용역 주제는 ‘한국의 빈곤 극복 경험 연구'였다. 연구진 스스로 밝힌 목적은 “빈곤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이며 그 점에 있어서 한국의 지도자들이 리더십 측면에서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해 경제 성장의 동력과 연관성을 찾는 내용이다. 연구 보고서는 모두 433쪽 분량으로 서론과 결론을 빼고 8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연구는 대통령 두 사람에게만 집중돼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다. 나머지 대통령은 언급이 아예 없거나 극히 적다. 433쪽 전체 보고서에서 각주를 포함해 대통령 이름을 검색했다. 이승만 214번, 박정희 415번 나왔다. 박정희는 연구 보고서 전반에 걸쳐 고루 나온다. 별도의 장(4장 경제발전에서 금융의 역할: 박정희 정부의 업적 평가)까지 할애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반면, 나머지 대통령은 언급이 매우 인색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각각 5번 등장했다. 김영삼의 경우, 단 한 번의 언급도 없다. 이렇게 드문드문 등장하는 언급조차 이승만과 박정희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현실 정치의 평생 라이벌 관계였던 김대중이 박정희의 공적을 뒤늦게 인정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무현이 이승만의 토지 개혁 치적을 높이 평가한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보고서 6장 한국경제 발전과 대통령의 리더십 224쪽)
연구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에게만 집중돼 있다.
내용은 더 심각하다. 이승만을 “신생 대한민국의 행운”으로 치켜세우고 박정희는 경제성장을 이끈 지도자로 미화하고 있다. 독재자로서 두 사람의 과오에 대해선 따로 언급이 없다. 독재 비판을 ‘감정적인 비난’으로 일축한다. 
이승만처럼 국제 관계에 대한 전문적 안목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예외적인 인물이 초대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신생 대한민국의 앞날에 행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장 한국경제 발전과 대통령의 리더십 (238쪽)
포병 출신인 박정희는 독도법에도 능해, 혼자 지도를 봐가면서 고속도로의 노선 결정을 비롯해 토지 수용 문제에까지 직접 지휘했다. ... 포항제철과 함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대통령 박정희의 결심과 추진력 없이는 도저히 성사될 수 없는 사업이었다.

6장 한국경제 발전과 대통령의 리더십 (263쪽)
박정희 정부의 경제적 성과를 입증하는 엄연한 사실들과 수치들 앞에서 단순히 반독재주의에 뿌리를 둔 감정적인 비난은 무색해진다.

4장 경제발전에서 금융의 역할: 박정희 정부의 업적 평가(1961-79) (152쪽)
연구 용역에 참여한 서강대 조장옥 교수는 서강대 산학협력단이 용역을 맡게 된 경위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조 교수는 연구가 시작된 배경에 이덕훈 행장이 있음을 암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덕훈 행장이 수출입은행에 가기 전에 서강대학교에서 무슨 겸임교수를 하고 계셨어요. 그때 내가 무슨 연구소 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소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거를 한 번 하자” 그래서 하려고 했는데, 연구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중간에 멈췄는데, 이 양반(이덕훈)이 수출입은행장 가면서 그런 용역을 만들어서 발주를 한 거지.

조장옥 서강대 교수(용역 연구진)
수출입은행은 “해당 연구용역은 나라장터 공개 입찰로 진행됐고, 절차에 따라 결정됐다”고 밝혔다. 특히 대상 기관을 미리 선정하는 등 서강대 측에 특혜를 준 것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덕훈 전 행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빈곤 극복과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 두 대통령의 공(功)을 강조한 연구라는 것이다.
근데 이제 지도자들이 그만큼 또 노력한 거를 좀 높이 평가하는 생각도 좀 해야지. 그리고 제발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지난 거는 좀 많이들 좀. 우리가 정말 이렇게 잘 살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정말 큰 행운이 있어서 이만큼 삽니다.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수출입은행 기부금으로 만든 ‘이승만 찬양 홍보물’

이덕훈 행장 시절, 수출입은행의 전직 대통령 관련한 예산 집행은 더 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후원이다. 2016년 2월 17일 1,500만 원을 기부했다. 수출입은행이 이승만기념사업회에 후원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후원 명목은 이화장 홍보물 제작이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1번지에 이승만의 사저, 이화장.
이화장(사적 제497호)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다.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지난해 국가지정 문화재가 됐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사무실도 이곳에 있다.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대문은 잠겨 있지만 이승만 동상이 대문 위로 솟아 있다. 2023년 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팸플릿.
이승만기념사업회는 이 돈으로 홍보 전단지 2만 부를 제작했다. 홍보물은 주로 추도식이나 행사에 배포했다고 한다. 어떤 내용의 홍보였을까? 당시 제작 배포한 홍보물을 찾아 확인했다. 모두 8쪽짜리였다. 앞면엔 ‘후원 한국수출입은행’ 글귀가 선명하다.
그런데 제목부터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당초 후원 목적과 달리 이화장을 알리는 홍보가 아니었다. 문화 사적으로서 이화장을 소개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8쪽 전체가 이승만의 찬양·미화로 가득했다. 거주공간을 거기 살았던 인물과 따로 떼 놓긴 힘들다 해도, 이런 식의 홍보물 제작에 공공 예산이 들어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변화하는 시대에 앞장선 구국운동가', '세계 속에 대한독립을 외친 국적없는 독립운동가' 등 찬양·미화로 가득하다.
급변하는 19세기 국제정세 속에서 한학을 배우시고 배재학당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자유, 평등, 인권 등 근대적 정치이념과 민주주의를 배운 이승만 대통령의 구국을 향한 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선교사의 권유로 미국에 남아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YMCA에서 강연과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치셨다.

변화하는 시대에 앞장선 구국 운동가 <건국대통령 이승만>
어떤 연구나 홍보든 사비로 한다면 문제 삼긴 어렵다. 하지만 공직자의 이념에 맞춘 특정 연구와 홍보에 공공 예산을 투입하는 거라면 경우가 달라진다. 자칫 예산의 사유화로 이어지고 예산 집행의 공적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덕훈 전 행장은 이 같은 기부 후원에 대해 전체 수출입은행 예산 중 극히 일부 지출이라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몇십 년 전에 돌아가신 대통령(이승만)을 다룬 거를 갖고. 무슨 수출입은행 예산에 절대 금액이 왔다 갔다 했다면 모르는데, 그게 무슨 안 해야 될 거를 했다거나, 엄청난 금액을 투입을 했다거나, 그런 거로 지금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박근혜 싱크탱크 출신 낙하산이 친정 단체에 쏜 기부금

이덕훈 씨가 수출입은행장에 오르기 11개월 전, 홍기택 교수가 KDB금융 회장 겸 산업은행장에 임명됐다. 홍 교수도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서금회 출신이다. 또 2010년 설립한 ‘국가미래연구원’ 창립 멤버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홍 교수는 18대 대선 이후 2013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쳐 같은 해 4월 KDB금융 회장 겸 산업은행장(2013∼2016년)에 올랐다. 산업은행은 1954년 세워진 국책은행이다. 홍 전 회장은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낙하산으로 규정하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낙하산이 맞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2013∼2016년)
이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5월 22일, 산업은행은 홍 회장이 몸담았던  ‘국가미래연구원’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당시 국가미래연구원이 주최한 ‘기업구조조정 세미나’를 후원한다는 명목이었다. 산업은행이 국가미래연구원에 후원한 것은 홍기택 회장 시절인 이때가 유일하다. 홍 회장 퇴임 후로 더 이상 후원은 없다. 창립에 참여하고 핵심 간사로 활동했던 ‘친정 단체’에 공기업 예산으로 셀프 후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산업은행은 홍 전 회장이 “국가미래연구원 200명 회원 중 한 명에 불과하고, 임원 등 주요 직책을 맡은 바 없어” 기관 후원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해당 후원은 위법하지 않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으며 통상적인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내부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진행했는지 공개해 달라는 뉴스타파의 요청에 대해선 ‘영업 비밀’이라며 답변을 거절했다.
국가미래연구원 측은 공공 예산의 사유화라는 비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연구자들이 나중에 국가 (요직)에 가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자기가 속해 있던 단체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되는 거냐?”라고 반문했다. 뉴스타파는 홍기택 전 회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지만 만나거나 통화하지 못했다.
제작진
촬영최형석 신영철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편집김은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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