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11, 북 군사력 압도적 우세?...수십년 레파토리

2015년 03월 02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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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리티지 재단의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 중 남북군사력 비교표. 장갑차와 헬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에서 북한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 헤리티지 재단의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 중 남북군사력 비교표. 장갑차와 헬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에서 북한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장갑차와 헬기 보유대수에서만 북한에 우세할 뿐 다른 11개 항목에서는 북한에 뒤지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헤리티지는 이 표에 ‘남한 군사력이 북한보다 매우 열세’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습니다.

상당수 국내 언론들은 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자료의 소스가 어디인지 봤더니 표 하단에 2012년 한국 국방부 국방백서 p.353를 근거로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입수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3년 전 국방백서를 참고해 보고서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 헤리티지 보고서의 이번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게 됩니다.

더군다나 국방부는 위 도표보다 업데이트된 2014년판 국방백서를 이미 올해 초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2014 국방백서를 봐도 남북 군사력 비교에 있어서 헤리티지 재단이 예를 든 13개 항목을 보면 역시 2대 11로 북한 우세입니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국방백서를 확인해보니 2010년에도 2008년에도 심지어 1999년에도 북한이 장갑차와 헬기를 제외한 11개 항목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옵니다.

▲ 1999년 국방백서 부록9 . 2014 국방백서와 같이 장갑차와, 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에 수적으로 열세다.

▲ 1999년 국방백서 부록9 . 2014 국방백서와 같이 장갑차와, 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에 수적으로 열세다.

장갑차의 숫자에서도 1999년 이전에는 오히려 한국이 북한보다 열세였습니다. 1988년 국방백서를 보면 장갑차 보유대수가 한국이 1550대 북한이 1960대입니다. (당시에는 헬기를 별로도 집계하지 않아 모든 항목에서 북한이 앞서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헤리티지 보고서의 기준으로 보자면 1988년 보다는 지금이 군사력 차이가 줄어든 것입니다.

▲ 1988년 국방백서 178 페이지 중 육상장비 남북비교. 장갑차 보유대수에서도 북한이 앞선다. 1988년 국방백서는 1968년 이후 20년 만에 발간된 국방백서다.

▲ 1988년 국방백서 178 페이지 중 육상장비 남북비교. 장갑차 보유대수에서도 북한이 앞선다. 1988년 국방백서는 1968년 이후 20년 만에 발간된 국방백서다.

결국 2대 11이란 숫자는 지난 27년 동안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돼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재래식 군사력에서는 줄곧 북한이 한국에 비해 우세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대 11이란 숫자가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북한이 군사력 우위’라는 보고서가 작성되고 언론이 이를 무작정 인용 보도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유 무기 숫자뿐만 아니라 무기체계의 우수성, 성능은 물론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경제력도 전쟁수행능력에 포함됩니다.

※ 참고로 국제 안보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이미 1975년 당시 우리 국방 예산이 12억 8600만 달러로 북한(8억 7800만 달러)을 앞서기 시작했고 그 격차는 현재 수십 배로 벌어졌으며 북한이 핵무기 같은 비대칭전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것도 재래식 전력에서 한국에 크게 뒤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세계 군사력 순위를 발표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F) 역시 2014년 한국은 세계 9위 북한은 35위라고 발표했습니다.

헤리티지 보고서가 인용한 우리나라의 2012년 국방백서의 영문판 군사력 비교 표에도 이 점은 분명히 언급이 돼 있습니다.

▲ 미 헤리티지 재단이 인용한 한국 2012년 국방백서 영문판 부록 중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

▲ 미 헤리티지 재단이 인용한 한국 2012년 국방백서 영문판 부록 중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

‘질적 평가 표현이 제한되므로 공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양적 평가를 실시한 결과임’(The table above is a result of quantitative comparisons for public descretion as qualitative assessments are limied)이라고 하단에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이 돼 있습니다.

국방부의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의 경우 2차대전 때 사용했던 무기까지 전력으로 보유하고 있다면서 "아주 오래된 무기체계까지 그냥 계산만 단순 숫자 비교해서 한 것은 아주 오래된 방식의 기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은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의 분석"이라며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안보전문가인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 역시 “각 무기체계의 전투지수를 무시한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안보학에서는 사라진 방법인데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 사용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헤리티지 보고서는 무리하게 군사력 비교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했고, 왜 우리나라 언론은 아무 생각없이 수십년째 같은 내용을 새로운 것인양 앞다퉈 쓰고 있을까요?

혹시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공포를 증가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이득을 보게 되는 집단은 어느 쪽일까요?

미국의 국방력 강화는 군수업체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라는 이런 주장은 오랫동안 국방 예산 증액과 각종 무기 수입, 전시작전권 환수 불가의 근거가 돼 왔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 마지막 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국내외에서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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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재단의 이사장은 공화당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보수로 불리는 정치조직, 티파티의 좌장격인 짐 드민트 전 공화당 의원이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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