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작권 환수’ 공약은 거짓?...대선 전부터 사실상 중단

2014년 11월 04일 21시 06분

국방부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부터 2015년 전작권(전시작전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준비를 사실상 중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내놓았던 ‘전작권 환수’ 공약은 여론과 표심을 의식한 ‘거짓 공약’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 한미 국방장관 기자회견
▲ 한미 국방장관 기자회견

사실상 무기한 연기...언제부터 결심했나?

지난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2015년으로 예정돼 있던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이른바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2012년 4월 넘겨받기로 했던 전작권이 MB 정부에서 2015년 12월로 한 차례 연기된 데 이어 다시 재연기가 결정된 것이다.

한미 양국이 제시한 ‘조건’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킬체인’과 ‘KAMD’ 등 한국군의 대응 능력, 전작권 환수 뒤 연합방위를 이끌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진전 등 역내 안보 환경이다.

이번 합의의 특징은 ‘시기’가 아닌 ‘조건’이다. 전작권 환수 시기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2020년대까지 ‘킬체인’과 ‘KAMD’ 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말만 있었을 뿐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움직임을 정밀 수집해 30분 이내에 원점을 타격한다는 킬체인 체제, 그리고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 같은 시스템은 미국조차 지난 30년 간 추진만 하고 있는 체제다. 이것을 2020년까지 한국이 갖추는 것, 게다가 역내 안보 환경이라는 주관적 변수까지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것은 사실상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안보공약 발표 장면
▲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안보공약 발표 장면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지난 2012년 대선을 2달여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외교안보통일 공약을 발표하면서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차질없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표현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인수위 보고서와 취임 직후인 4월 국정과제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전작권 전환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은 미묘하게 바뀌어 간다. 2013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2015년’이라는 시점 없이 전작권 환수 추진을 언급한데 이어, 같은 달 말 직접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국정과제 추진계획에서도 시기에 대한 말은 없이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던 중 2013년 7월,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전작권 재연기를 공식 요청했다는 사실을 미국 국방장관이 언급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즉각 사실임을 확인하고 5월 초부터 미국 측에 전작권 재연기 요청을 전달했다고 실토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2013년 2월 3차 핵실험, 3월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 잇따른 북한의 위협에 따라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광진, 안규백 의원실 대면보고 문건
▲김광진, 안규백 의원실 대면보고 문건

국방부, 2012년 대선 이전부터 전작권 환수 추진율 61%서 ‘스톱’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결과 정부가 밝힌 북한의 위협 이전에도 이미 우리 군의 전작권 환수 추진 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족이다. 뉴스타파는 2015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환수를 위한 군의 준비가 그동안 제대로 진행돼 왔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17명을 상대로 최근까지 군의 대면보고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군은 2010년 10월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채택된 ‘전략동맹 2015’ 지침에 따라 계획과 편성, 능력/체계, 연습/검증, 전략문서 등 5개 분야에서 115개 세부과제를 정해 2015년 말까지 연도 별, 일자 별로 계획된 로드맵을 그려놓고 전작권 환수를 준비하며 수시로 추진상황을 체크해 왔다.

그런데 국방부는 2012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 대면보고에서 당시 전작권 전환 추진율이 약 60%이며 계획대로 정상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한 달여 뒤인 10월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도 양국 합참의장이 ‘61% 추진’을 상호 확인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7개월이 더 지난 2013년 5월, 국방부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에게도 추진율이 61%이며 역시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6개월이 더 지난 올해 1월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도 추진율은 역시 61%였다. 지난 대선이 치러지기 이전 시점부터 거의 1년 반 가까운 기간 동안 2015년 전환을 위한 군의 준비가 제자리였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추진율이 61%에서 멎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당초엔 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준비 과제들을 추진하다가, 2012년 10월 한미안보협의회 결과에 따라 기존의 한미연합사 체제를 ‘연합전구사령부’라는 명칭으로 유지하고 한국군이 사령관을, 미국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구조로 재설계하는 실무가 진행되면서 기존 과제들에 대한 추진이 보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작권 환수 추진 과제를 멈춘 것은 맞지만, 다른 차원에서 전작권 환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국방 전문가들은 국방부 설명대로라면 전작권 전환 추진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졌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합참과 미 한국사령부로 조직을 이원화하는 것보다 사실상 기존의 체제를 유지한 채 한국과 미국 군이 업무만 바꾸는 것이 훨씬 간소하고 효율적인 추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전작권 환수 과정에 깊이 개입했던 한 인사는 국방부가 전작권 환수 추진율을 61%에서 묶어둔 것은 최고위층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작권 전환에 대한 진척이 쉽지 않고 군의 준비가 덜 되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재연기의 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앞으로도 추진율은 또 떨어지거나 적절한 수준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관리될 것이고, 정치적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100%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미연합훈련 장면
▲ 한미연합훈련 장면

전작권 전환의 논리?...“군 능력 아닌 정치적 판단”

이 같은 취재 결과와 분석을 종합해 보면 현 정권의 전작권 전환에 대한 입장이 우리 군의 작전수행 능력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미리 결정돼 있었던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 전작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놓긴 했지만 속내는 애초부터 딴판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을 2달여 앞둔 10월 초,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던 유기준 의원은 “박 후보 캠프에서 전작권 재연기를 공약으로 만드는 것을 고민하면서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작권 재연기는 극우보수 지지세력 결집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공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당시 전작권 환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제로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주간동아>가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 ‘전작권을 최대한 빨리 전환해야 한다’(45.9%)는 여론이 ‘재연기 해야 한다’(34.8%)와 ‘아예 백지화해야 한다’(6.0%)를 합친 것보다 우세했던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당시 박빙의 선거 국면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이 같은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비단 국방 문제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여타 분야에서도 면밀한 여론조사를 통해 다수 표를 획득할 수 있는 공약을 만들어 냈다. 막상 선거나 끝나고 당선이 되자 대부분의 공약들이 무너진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 문제 역시 정권 출범과 동시에 지지 세력인 보수층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전작권 전환 연기 방침은 애초부터 기정사실이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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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본국에 보낸 서한(위)과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보고서(아래)에 나온 한국군 지휘관 평가내용
▲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본국에 보낸 서한(위)과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보고서(아래)에 나온 한국군 지휘관 평가내용

주한미군이 인정한 한국군 작전능력...대통령과 군 수뇌부만 부정

그렇다면 우리 군의 실제 작전지휘 능력은 어떤 수준일까. 우리 군과 함께 훈련하며 지근거리에서 우리 군을 관찰한 주한미군 사령관들보다 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06년부터 2년 반 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버웰 벨이 재직 중 본국에 보낸 서한이 최근 기밀에서 해제됐다. 이 서한에서 벨 전 사령관은 “한국군 지휘관들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지금 당장 독자적으로 자기 나라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벨에 이어 2011년까지 3년 간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월터 샤프가 지난해 말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게재한 보고서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국군 지휘관들은 전문적이고 현대적이며 잘 훈련되어 있다”면서 “전시에도 국가 방어를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 군에 대한 이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우리 군의 능력이 여러 모로 부족하다고 설파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올 기회를 두 차례나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기회는 언제 다시 찾아올 지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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