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지출한 업무추진비 정부구매카드 지출 내역 중에서 ‘가맹점 상호(식당)’, ‘업종구분’, 지출을 맡은 ‘출납공무원’의 이름과 직위를 먹칠로 가려서는 안 되며, 모두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 4월 30일,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무부 전 부서가 쓴 업무추진비 정부구매카드 세부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음식점 상호’, ‘업종구분’, ‘출납공무원’의 정보는 정보공개법상 보호받는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닌 만큼, 모두 공개하라며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의 전부 승소로 판결했다.
업무추진비 카드사용 내역 중 ‘가맹점 상호’ 등 까맣게 가린 법무부 행위에 법원 제동
이에 따라 법무부는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모든 부서가 쓴 업무추진비 정부구매카드 세부 내역 중 먹칠로 가린 3가지 정보(출납공무원, 가맹점 상호, 업종구분)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소송을 제기한 지 약 8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이번 판결로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쓴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돼, 이들이 세금을 적절하게 집행했는지 검증의 길이 열렸다.
특히 이번 판결로 그동안 식당 정보 등을 까맣게 가린 ‘반쪽짜리’ 업무추진비 자료를 내놨던 검찰의 행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검찰청과 전국 67개 지방검찰청은 업무추진비 자료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는데도, 업무추진비 지출증빙자료에서 식당 이름과 결제 시간을 먹칠로 가리고 공개해 주권자의 알권리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관련 기사 : 검찰, '윤석열 식당' 이름·결제 시간 가린 ‘백지 영수증’ 줬다.)
이번 행정소송은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2년 전 2022년 10월, 그해 1월부터 9월까지 법무부 전체 부서가 업무추진비로 쓴 정부구매카드와 관련해 카드사로부터 받은 사용내역 또는 청구서’의 공개를 청구하면서 비롯했다. 당시 법무부는 ‘형 집행 등 직무에 영향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비공개했고, 이에 맞서 하 변호사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냈다.
이후 중앙행정심판위는 지난해 5월, 법무부의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하고, “법무부가 정보의 공개 여부를 다시 결정하라”고 재결했다. 하 변호사의 손을 들어 준 결정이었다. (관련 기사 : 중앙행정심판위, "법무부 업추비 카드 내역 비공개는 위법·부당”)
이에 따라 하 변호사는 지난해 6월, 법무부에 관련 정보의 공개를 다시 청구했다. 법무부는 업무추진비로 쓴 정부구매카드의 내역을 공개했지만, ‘카드번호’, ‘승인번호’는 물론, ‘출납공무원’, ‘음식점 상호’, ‘업종구분’ 정보를 가렸다. 이 상태로는 업무추진비를 제대로 썼는지 검증하기 어렵다. 이에 지난해 9월,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법무부의 먹칠 공개’는 알권리 침해라며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기사 : 검찰에 이어 법무부도 ‘음식점 상호’ 지우고 업추비 공개... 뉴스타파·시민단체 행정소송 제기)
▲ 법무부가 지난해, 가맹점 상호와 업종구분, 출납공무원의 이름 등을 먹지로 까맣게 가린 채 업무추진비 '정부구매카드 내역'을 공개했다.
법원 “식당 이름 등 공개한다고 수사 등에 장애 줄 개연성 존재 어려워”
이번 행정소송의 쟁점은 단순했다. 법무부가 업무추진비로 쓴 정부구매카드 내역을 공개하면서 5가지 정보를 먹칠로 가렸는데, 그중 카드번호와 승인번호를 뺀 3가지 정보(출납공무원, 가맹점 상호, 업종 구분)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로 보호받는 대상 정보이냐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의 판단은 분명했고 단호했다. 법무부가 주장한 ‘수사와 형 집행 등 직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비공개해도 된다’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4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수활동비와 달리, 업무추진비는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이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수사 등에 관한 직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법무부 소속의 모든 공무원이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 처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없다”며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해당 업무의 전부가 기밀 유지가 필요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가맹점(식당) 공개되면, 식당 영업에 방해된다’는 법무부의 주장 기각
이번 소송에서 법무부는 업무추진비를 쓴 장소(식당)의 공개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법무부는 “가맹점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해당 가맹점에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고, 일반인들이 그 가맹점 이용을 꺼리고 영업을 방해함으로써 가맹점의 영업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법무부는 “가맹점 정보가 공개될 경우 기자들, 유튜버 등이 취재의 대상이 되는 대상자를 쫓아다니거나 해당 장소에서 대기하면서 비공개 대화를 엿듣고 이를 보도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법무부 공무원들이 이용한 해당 음식점은) 일반 사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는 공개된 장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렇다면 (법무부 공무원들이) 그러한 장소에서 기밀 유지가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그러한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공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재판 마지막까지 “식당 첫 글자만 공개한 사례 참작해달라”고 주장
재판부는 또한 법무부 공무원들이 식당에서 기밀 수사를 논의했더라도, 식당을 공개하는 데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업무협의, 당정협의, 언론인·직원 간담회 등에서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내용이 공유된다”고 해도, “공식 행사와 관련하여 지출한 내역의 출납공무원, 사용처 등 만을 알 수 있을 뿐이고, 구체적인 범죄 관련 정보, 수사방법 등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법무부 공무원이 세금으로 어디서 술·밥을 먹었는지가 공개될 뿐, 거기서 나눈 대화 내용까지 노출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법무부는 선고 보름 전인 4월 15일, ‘가맹점 상호(식당)의 첫 글자 부분에 한하여 공개한 사례를 참작해달라’는 취지의 참고서면까지 재판부에 내며, 법무부 공무원들이 업무추진비로 먹고 마신 식당 정보의 공개를 끝까지 막으려 했다.
법무부가 주장한 대로, 업무추진비로 수사 등의 업무를 진행하면서 기밀 유지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당 정보만 가리고 부분 공개로 처리하면 될 뿐, 모든 정보를 다 가릴 필요는 없다. 재판부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재판부는 “피고(법무부 장관)로서는 그러한(비공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해당 부분만을 분리하여 비공개 정보 대상에 해당함을 주장·증명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고는 이를 구체적으로 분리하지 않은 채 막연히 개괄적인 이유만을 들어 전부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업추비 출납공무원의 이름과 직위도 공개하라”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출납공무원의 경우에도 업무추진비 지출 관련 직무를 수행한 것인 만큼,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출납공무원의 성명과 직위를 모두 공개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법무부라고 해서 정보공개의 예외일 수는 없으며, 법무부 소속 공직자가 어디에서 밥을 먹었는지 공개한다고 해서, 업무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될 일도 없다”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은 뭔가 감출 것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또 “지금이라도 항소를 포기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법무부가 항소한다면 그 자체로 여론의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1심 판결이 있던 지난 4월 30일, 재판정에 나왔던 법무부 모 직원은 항소할지를 묻는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항소는 판결문이 송달된 날부터 2주 안에 낼 수 있다.